brunch

장미정원 벤치에 새겨진 비밀

하우스 씨(Mr. House)를 회상하며...

by 김유인

공원 벤치에 새겨진 그리움, 그리고 우이동 뒷산

나의 어린 시절엔 뒷산이 우이동 계곡이었다.

학교에서 집에서 바라보던 백운대와 인수봉의 웅장한 모습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남아 있고 아마 평생 그리워할 풍경이다.


캐나다의 특별한 추모방식 그리고 기증 벤치

캐나다는 골목 두세 개만 지나면 공원이 나오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운동도 하고 산책도 한다.

우리가 뒷산에 가듯이...

그 수많은 공원에 배치되어 있는 벤치는 모두 기증된 것이다.

그 공원을 이용하던 분이 돌아가시면 가족들이 고인을 기리기 위해

벤치 위에 이름과 생몰연도 그리고 마지막 가족들의 인사말을 새겨 놓는다.

그래서 난 벤치에 앉기 전 거기에 적힌 이름과 인사를 꼭 읽어보고 앉는다.


장미정원에서 피어난 특별한 인연

10년 전쯤에 내가 일하던 요양원에 할아버지 한 분이 새로 오셨다.

잘 생긴 얼굴만큼이나 인성도 좋으셔서 우리 모두 좋아하게 됐다.

어느 날, 할아버지와 얘기하다가 예전 사셨던 동네가 New Westminster라고 하셨다.

내가 그 동네 산다고 하자, Queen's Park에 자주 가냐고 물으셨다.

자주 간다고, 그곳 장미정원이 정말 아름답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할아버지께서 반가워하시며, 그 정원을 자신의 아버님이 만드셨다고 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몸이 점점 쇠약해져 더 이상 혼자 일어나실 수 없고,

그곳에 다시 가보고 싶지만 이제 더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할아버지께서는 장미정원을 통해 아버님을 느끼고 싶으셨나 보다.

나는 가끔 공원에 가서 할아버지 아버님이 이름이 새겨진

기념석과 장미 정원을 찍어서 보여 드렸다.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맺히곤 하셨다.

장미정원입구.jpg 장미정원 입구
장미정원 plaque.jpg 하우스 씨 아버님 HERB HOUSE씨를 기념해 THE HERB HOUSE ROSE GARDEN이라 명명함

코로나가 만든 이별과 뜻밖의 재회

그러다가 코로나가 발생했고, 정부에서는 요양원이나 병원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곳에서만 일할 것을 요구했다.

보통 이 직종의 근로자들은 두 곳 이상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러면 코로나가 옮기기 쉬워서 생긴 조치였다.

나도 집 근처 다른 요양원에서 가끔 일하고 있었는데

그 조치 이후 집 근처 요양원을 선택해 그곳에서 만 일하게 되었다.

그렇게 예전에 일하던 곳의 기억은 점점 희미해졌고, 할아버지도 서서히 잊혀 갔다.

그래도 가끔 공원에 갈 때면 그 할아버지 생각이 나곤 했다.

코로나가 거의 끝나갈 무렵, 공원에 새로운 벤치가 놓였다.

갓 다듬은 새 나무로 만들어져서 윤이 났고,

양쪽 끝에는 꽃을 꽂을 수 있는 작은 화병이 붙어있었다.

지나가다 문득 관심이 생겨 새겨져 있는 이름을 확인하곤 깜짝 놀랐다.

예전 요양원에서 만난 장미 정원을 그리워하던 할아버지와 먼저 돌아가신 할머니 이름,

그리고 고인을 향한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글을 읽고 나도 조용히 묵념을 드렸다.


아버지와 같은 해에 가셨다는 걸 알고, 마음이 아팠다.

벤치를 기증하더라도, 설치 장소는 공원 측에서 정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장미정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놓이게 된 듯하다.

그래도 생전에 가보시고 싶던 곳과 가까운 곳에 벤치가 놓여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아마도 이젠 자주 보실 수 있을 것 같았다.

20250713_101333~2.jpg 하우스 씨 가족이 기부한 퀸스공원에 놓인 벤치
1000059596.jpg 하우스 씨 부부의 추모 벤치 명패 (Memorial Plaque)

영원한 그리움, 그리고 나의 바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4~5년 전쯤,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에 다녀오고 싶어 하셨다.

나이가 드셔서 더는 산을 오르실 수 없었지만, 그곳에 꼭 가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다시 말씀하셔서 모시고 같이 갔었다.

하지만 산이 가팔라서 아버지는 밑에서 기다리시고, 나만 올라가서 성묘를 하고 돌아왔다.

그 후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 할머니 옆에 묻히셨다.

아버지께서 그토록 가보고 싶어 하시던 그곳에서, 이제 편히 쉬신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놓인다.


나도 우리 가족이 찾던 우이동 산에,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이 새겨진 벤치를 기증하고 싶다.

누군가 그 벤치에 앉아 잠시라도 편하게 쉰다면 아버지, 어머니도 기뻐하실 것이다.


1000059608.jpg 장미공원 안에 있는 흔들의자 장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까칠한 캐나다 노인, K - 드라마에 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