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춥다"라고 하셨다.

성에 낀 안경과 날 선 말들

by 김유인

바람은 차가웠고 길은 어두웠다.
그 길을 나는 종종걸음으로 걷다가 문득 성에 낀 안경을 쓴 채로 들어오시던 아버지가 생각났다.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살을 에듯 차가운 바람이 머릿속과 옷 속을 파헤치는 겨울밤, 그 추위를 뚫고 들어오신 아버지의 귀와 코는 빨갛게 얼어 있었다. 검은 코트에 목도리와 장갑으로 무장하셨어도 온몸이 꽁꽁 얼어서 집으로 오신 아버지는 묵묵히 옷을 갈아입으시며 겨우 "춥다"는 짧은 한마디를 하셨다. 따뜻하게 데워진 국과 식사를 하시며 나에게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물으셨다.


우리를 위해 모진 추위를 견디며 고생하신 아버지는 이제 안 계시다. 나도 이제 예순이 되어 은퇴를 바라보며 아버지를 생각한다. 아버지는 무슨 생각으로 그 추운 겨울을 버티셨을까?


하지만 아버지의 마지막은 슬프고 외로웠다. 아버지는 늘 인자한 분은 아니셨기에 갈등이 많으셨다.
내가 한국을 떠나기 전까지 아버지와 한집에 살 때도 갈등이 많았었다.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아서 더 많이 부딪혔었다. 하지만 나는 강단 있는 쪽이 아니라, 그 서슬에 툭툭 부러지는 쪽이었다. 현관에 들어올 때는 "신발을 꼭 바깥으로 향하게 놔라, 엘리베이터는 꼭 1층에 돌아가게 해라." 신발을 똑바로 놓으면 되는데 왜 굳이 바깥쪽으로 놓으라고 하시는지, 그런 사소한 잔소리로 속상했었는데 지금은 그 소리도 그립다.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시는 아버지께서 점점 나이가 드시니 언니는 아버지를 자기가 사는 마산으로 모셨었다. 그 대쪽 같은 성격에 본인이 앞장서서 집안 대소사를 처리해야 하는데, 그 집은 형부와 언니의 집이라 본인의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셨다. 아버지의 겉도는 마음에 "이 집은 내 집이 아니라 돌아가겠다"라고 수차례 선언하셨고, 매사에 언니와 부딪혔다.


결국은 치매 증상까지 겹쳐서 언니가 당신의 통장에서 돈을 빼돌렸다고 생각하시면서 언니를 의심하셨다. 내가 마침 한국에 갔을 때 통장 잔고도 확인하고 일일이 손으로 짚으면서 얘기했다. 출금한 돈이 없다고 확인해 드려도 받아들이지 않으셨다. 꼼꼼한 성격과 메모광이었던 아버지의 기억에도 이제 구멍이 나면서 본인이 한 일을 기억 못 하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했던 일들이 뭐든지 현실이라고 생각하셨다. 그렇게 외출을 하시면 동네 사람들에게 사위와 딸이 섭섭하다고 얘기하고 다니셨다. 언니도 그런 아버지가 지겹고 형부한테 미안하니까 점점 아버지를 미워하게 된 것도 이해가 간다.


병원에 가서도 의사와 간호사한테 욕 한마디 안 하시고 그분들을 화나게 만드셨다. 의사한테 갑자기 "어느 대학 나왔소?"라고 묻는다든지, 치매 검사 할 때면 쉬운 질문이 기분 나빠 입을 다물어 버리신다든지.... 옆에서 같이 간 언니까지 죄인이 되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내가 같이 갈 때면 "대체 왜 그러세요?" 쏘아붙였던 내 말투에 아버지 마음은 또 얼마나 속이 상하셨을까! 그 추운 겨울 살을 에던 바람을 견디던 당신의 빨갛던 얼굴과 하얗게 성에 낀 안경이 생각난다. 그렇게 고생을 하셨는데 이해 못 해주는 딸들이 서운하셨을 거다.


이제는 아버지와 살던 집도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아버지를 떠올릴 유품도 거의 없는데 오늘 밤의 찬 바람이 그 집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도 그 집 현관에는 바깥쪽으로 향한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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