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비자발적 고립을 맞이한 우리들의 자화상
회사 동료에게서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 주치의 앱 예약이 서툰 동료는, 병원에 갈 일이 생길 때마다 나를 찾는다. 바빠서 못 만날 때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하면, 개인정보를 알리기 싫다며 꼭 나를 만나는 걸 고집한다.
그녀는 60대 후반에도 은퇴를 안 하고 일을 한다. 하지만 일하는 환경은 30년 전과는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어르신들의 상태를 아이패드에 입력해야 하고, 회사 교육도 컴퓨터로 한다. 맥도널드에 가서도 그녀는 내 뒤에 서서 카드만 내 손에 들려준다. 키오스크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차근차근 가르쳐주며 시켜보아도, 화면 앞에서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손가락은 어디로 향할지 모르고 얼굴에는 어색한 웃음만 번진다.
나 역시 공항에서 체크인을 할 때는 약간 떨리는 마음이 된다. 지난번에는 조작이 잘못되어 헤매다 뒤를 돌아보니, 수많은 눈동자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쥐구멍을 찾고 싶었지만 뒤에 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겨우 넘어갈 수 있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관문이 나이 든 사람에게는 좁은 문이 된다. 그리고 그 문은 점점 견고해져서 맥도널드에서 점심조차 먹을 수 없게 됐다.
이런 노인들의 이야기는 마치 거대한 문명에 적응하지 못하고 온몸으로 맞아버린 신대륙이 생각난다. 유럽 강대국이 붙여준 '신대륙'이라는 이름은, 탈바꿈하지 못한 그들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유럽의 사냥터가 된 슬픈 이름이다. 조선 역시 16세기에 외부의 변화를 무시한 채 고립을 선택했다가 인구의 30%를 잃었고, 구한말에는 쇄국주의를 고집하다 나라를 내주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SNS를 안 하는 것을 '의식 있는 척' 자부심을 가졌지만, 사실은 나 스스로 사회적 고립을 택한 것이었다. 무조건 신문물은 싫다고, 조선말 기차가 뚫렸음에도 산길을 걸어 다닌 고집스러운 노인이 바로 나라는 걸 브런치를 하며 알게 됐다. 내가 비웃었던 과거의 쇄국정책을 스스로에게 강요하고 있었다.
세상은 이제 AI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물건을 배달시키는데, 정작 무거운 물건도 못 들고 운전도 못 하는 노인들은 인터넷 쇼핑을 못 해서 직접 쇼핑을 하고 무거운 물건을 힘겹게 옮긴다. 이것이 문명의 아이러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을 인간이 극복하는 데 100년이 걸렸다고 한다. 또 다른 산업혁명인 AI 시대를 극복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차가운 키오스크 화면 앞에서 갈 곳 잃은 손가락과 도움을 갈구하는 눈빛은 그 동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리적 고립이었던 신대륙과 자발적 고립이었던 조선의 역사를 지나, 이제 노인들은 비자발적인 고립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이 새로운 시대의 물결을 잘 넘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