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서 다시 쓸 편지를 위하여
마침내 봄인가 했는데 아침부터 눈이 쏟아졌다. 이번 겨울은 매서운 추위도, 눈 소식도 없이 지나간다 싶었다. 그러더니 이른 아침 오락가락하던 가는 눈이 이제는 제법 굵은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모든 길에 하얗게 눈이 쌓여 사람도, 차도 움직임이 무거워 보인다.
나는 전면이 유리창인 실내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쓴다. 창을 통해 바라보는 하늘의 움직임이 시시각각 표정을 바꾸고, 바람의 결에 따라 눈발은 방향이 바뀌고 춤을 춘다. 하얗게 변하는 풍경 속에서 며칠 전부터 꽃망울이 올라오던 벚꽃을 바라본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눈물 같은 이슬을 머금고 추위를 견디는 나무를 보니, 문득 옛 모습이 떠오른다. 갓 입학해 어색한 교복 치마를 입고,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칼바람을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던 그 어린 날의 나를. 그때의 나는 그저 눈앞에 닥친 추위를 견디며 따뜻한 곳으로 들어가기만을 기다렸다면, 저 벚꽃은 다가올 봄날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눈발 속에 홀로 선 그 적막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며칠 전 잠이 안 와 뒤척이며 떠올렸던 유치환 시인의 <그리움> 한 구절이 다시금 머릿속을 스친다.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바람 센 오늘은 더욱 그리워." 그날은 바람이 유난히 불어서 깃발도 엄청 나부꼈을 테지만, 오늘은 창밖의 깃발이 조용히 서서 아우성 없이 그 눈을 다 맞고 있다.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모든 풍파를 받아내는 모습은, 인생의 고비마다 벌어지는 일들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고 할까.
창문 밖에는 여전히 눈이 내리고,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진다. 그들 각자 가슴에 저마다의 일거리를 품고 각자의 길을 서둘러 가고 있다. 일터로, 학교로, 혹은 집으로…….
내리는 눈처럼 세월은 흐르고, 이 눈이 다 쏟아지고 나면 봄은 다시 올 것이다. 나는 화려한 봄, 벚꽃이 흩날리는 나무 아래서 편지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