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유재 Dec 17. 2024

잃어가는 것을 붙잡으려 애쓰다

12월 17일 출근길

  어제 열차에서 내 앞에 앉아 있는 한 중년 남자를 보게 됐다. 구릿빛 얼굴은 갸름하니 마르고 피부는 번지르르했다. 짧은 머리는 삼대 칠로 가르마를 탔다. 왁스를 듬뿍 바른 머리칼은 송곳처럼 삐죽삐죽 나와 방향성 있게 자리 잡았다. 윗머리 칠은 오른 이마 쪽으로, 나머지 삼은 왼쪽 귀를 향해. 극 단정한 머리 모양새였다. 갸름한 얼굴과 단정한 머리가 나이를 숨겨주지 못했지만 보는 눈을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꾸미지 않아도 보기 좋은 때가 있을 까. 어릴 때일 것이다. 그런 때가 금방 지나버린 후 자기 모습이 뭔가 아쉽다고 생각하면서도 딱히 가꾸려 하지 않는 시간마저 지나고 나면 하나 둘 신경이 쓰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잃어가는 것을 붙잡아 보려고 애쓰게 된다. 사그라드는 것은 점점 많아지고 결국 안분지족을 배우게 된다.


  ○○○번 버스를 타고 뒷자리에 앉았다. 내 앞으로 보이는 예닐곱 사람들의 뒷머리가 한결같이 똑같다. 부드러운 모발에 짧은 길이, 귀높이로 머리를 덮고 옆머리와 뒷머리 아래는 상고머리처럼 치올려 깎아 속이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머리끝 선은 귓바퀴 둘레로 일정한 간격으로 목으로 내려와 작은 반 호를 그리며 반대편과 만난다.

  '어떻게 이리도 비슷할까…?'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머리 모양새만 보면 우린 아직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 모두 상투를 틀었던 것처럼. 가끔 뒷머리 둘레선을 귓등에서 곧게 내려와 목 언저리에서 각이 지게 깎은 모습을 보았다. 깔끔하다고 보기에는 좀 어색한 모양새였다. 그런 모양을 드문드문 보았던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유행인 듯도 하다. 오늘 보는 뒷머리 모습은 그 정도로 노골적이지는 않았다.


  한 남자가 버스에 올랐다. 머리숱이 많다. 가볍게 제품을 바른 머리는 굵고 빽빽한 머리칼이 살짝 곡선을 만들며 풍성하게 부풀어 앞머리와 옆머리를 만들고 있었다.

  '우아한데…?'

  뒷머리도 정수리에서부터 둥글게 선을 만들며 부드럽게 내려왔다. 부티나는 모양새였다. ○○○번 버스에서 내렸다. 남자는 미색 코트에 코트 깃을 세워 멋을 더했다. 어깨는 넓고 상체가 다부져 보였다. 코트는 무릎까지 내려오고 그 아래로 폭이 좁은 바지가 울퉁불퉁하다. 종아리 알통 때문이다. 저벅저벅 큼지막하게 걷는 모습에 건강미가 보였다. 조금만 꾸며도 티가 나는 때다. 타고나기도 했겠지 만.


  열차를 탔다. 출입문 쪽에 한자리 잡고 서있는 늘그막 한 남자에게서 사그라드는 아쉬움을 잡아 보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베이지색 바탕에 옅은 고동색 체크무늬 재킷을 입었다. 아이보리색에 가까운 베이지색 등가방을 메고 목에는 스카프를 풍성하게 둘렀다. 한쪽 팔에 파카를 걸쳤는데 파카도 아이보리색이었다. 실내가 더운지 스카프를 벗어 아이보리색 파카 위에 얹었다. 얼굴은 마스크를 썼는데 마스크 위로 누런빛에 눈가에는 주름이 깊고 검버섯이 몇 개 보였다. 그래도 눈매가 깨끗하고 얼굴선이 단정했다.

  머리는 전체적으로 속이 훤했다. 숱이 적었다. 흰색 머리칼에 이마는 넓고 이마 양쪽 구석이 깊이 올라갔다. 이대 팔 가르마. 중간길이의 머리칼에 제품을 정성스레 발라 윗머리 앞쪽을 빗질로 둥글게 처마를 만들듯 돌려 내리고 옆머리는 그걸 이어받아 귀 뒤쪽으로 물결이 흘러가듯 넘겼다. 반대편도 가르마에서 아래로 내리며 귀 뒤로 원을 그리며 빗자국을 만들며 넘겼다. 잘 차려입고 잘 단장한 모습이었다.

  열차를 갈아타며 비슷하면서도 단출한 머리 모양을 봤다. 복장은 밋밋했다. 무난한 감색의 파카에 짙은 색깔의 바지와 운동화. 머리 정수리는 애기주먹만큼 훤했는데 그 주위로 얇은 모발이 정성스레 꾸며졌다. 숱이 적었지만 둥근 빗으로 머리를 말아 드라이기로 힘을 주어 둥글게 머리 모양을 만들었다. 뒷머리 모양만으로도 부드럽고 성실하면서 약간 까칠하리란 느낌이 들었다.


   화려하건 단백 하건 중후하건 단출하건, 스스로에게 잘 보이려는 애씀 같아 응원하는 마음이 일어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