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출근길
한 남자가 버스정류장에 서 있었다. 등은 살짝 굽고 어깨는 움츠린 모습이다. 영상의 날씨.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반듯하게 어깨를 펴고 있었다. 휴대전화를 보는 몇몇만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등이 굽지는 않았다. 남자가 등이 굽고 옹그린 것은 날씨 때문이 아니다. 시쳇말로 세월의 무게 때문일 까.
버스는 위쪽 사거리를 좌회전하며 나아갔다. 왼쪽으로 버스 천정에 가려진 하늘이 반절만 보였다. 청명한 하늘. 그 하늘 아래로 아파트가 어느새 성큼 올라가 있었다. 하늘 따먹기가 한창이다. 돌곶이역 버스 정류장에 내려 지하철 출입구로 걸어갔다. 지하철 출입구 너머 건물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불그스레했다. 새해 벽두에 보았던 해돋이처럼 금방이라도 붉은 태양이 솟아오를 것 같은 장면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올라오지 않는 해돋이가 그렇듯이 지하철 출입구로 가는 내내 가벼운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높게 치솟은 건물들과 거대한 내부순환로가 붉게 물든 하늘을 세로로 가로로 가르며 짱짱하게 긴장되게 하늘을 잡아먹고 있었다.
사람이 하늘을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생리인 건가. 먼 옛날 바벨탑을 쌓아 올린 노아의 후손들처럼. 땅에 모여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의 살아감은 하늘과 어울리기 어려울 듯하다. 오늘따라 하늘과 사람의 건축물이 만드는 경계가 더욱 서로를 경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은 붉은 대기로 지긋이 도시를 내리누르고 있다.
돌곶이역 대합실로 내려가니 걸음걸이가 어기적어기적 마치 똥 싼 아이가 걷는 것처럼 걷는 노인이 앞서가고 있었다. 진한 베이지색 트렌치코트를 입었는데 무릎아래까지 내려와 후줄근하게 흔들거렸다. 노인은 연한 베이지색 누런 바탕에 검고 회색의 줄들이 체크무늬로 그려진 목도리를 둘둘 감은 모습이었다.
대합실에는 오늘도 정치인이 인사를 하며 자신을 알리고 있었다.
"국회의원 후보자 ●●●입니다"
지난번과 다르게 이번에는 '후보자'였다. 후보자와 관련된 직원이 개찰구 바로 앞에서 얌전하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하는 사람은 달랐지만 지나가는 사람들은 지난번과 똑같다. 인사 없이 모른 체하며 스쳐 지나간다.
승강장에 내려가니 열차를 기다리며 서있는 노인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노인은 머리가 희끄무레하고 숱이 적어 속이 훤히 보였다. 고동색 뿔테 안경을 쓰고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있었다. 키는 160센티나 될 까. 마르지는 않았으나 등이 굽고 왜소하다. 신당역에 내려 계단을 오를 때에나 걸음을 걸을 때에는 오른팔을 휘척휘척 앞뒤로 흔들며 그 반동으로 나아갔다. 사공이 노를 기계적으로 젓듯이 팔을 흔들거렸다.
'이곳에서 가장 나이 든 모습 같아…'
가장 젊은 모습도 찾아보고 싶었다. 먼저 눈에 띄는 모습. 미색 후리스 점퍼를 입은 청년이 보였다. 슬랙스 바지를 입고 흰색 스니커즈를 신었다. 통통거리며 가볍게 걷는 모양새였다. 얼굴은 여드름이 군데군데 일어나 울퉁불퉁 선홍 빛을 비추었다.
둘러보니 젊은 모습은 많았다. 이단의 머리 모양으로 주변머리가 짧고 그 위로 윗 머리칼은 둥글게 덮어 앞이마까지 가린 모습은 영 젊게만 보였다. 검은색 항공점퍼를 입고 윤기 나고 각이 진 등가방을 메고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쓴 모습 또한 강건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보기 좋기는 한데…'
젊은 모습들 한 켠으로 도시 하늘이 노인의 어깨를 내리누른 것처럼 생생한 이들의 어깨마저 야금야금 눌리어 가는 환상이 눈앞에 어른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