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미국 월풀(Whirlpool) 사가 발명한 자동 세탁기는 인간의 가사 노동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그저 손빨래를 기계가 대신해 준 것 정도로 알고 있지만, 실은 사회학적으로 더 깊은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는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세탁기야 말로 인터넷보다 세상을 더 획기적으로 바꾼 발명품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주로 여성들의 몫이었던 빨래로부터 해방되면서 여성들이 사회 진출을 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여러 사회적 변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기업 경영 분야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바로 마케팅 기법의 발전이다. 키워드 마케팅, SNS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 바이럴 마케팅, 검색 엔진 최적화 (SEO) 마케팅 등 주로 온라인 상의 소비자 행동(Customer Behavior)들을 과학적이고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마케팅 기법들이 나날이 발전해 왔다. 모두 많은 수의 대중들에게 우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어필하는 방법들이다. 이로 인해 그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작아진 것이 바로 다름 아닌 ‘영업’이다. 많은 기업들이 오프라인 대응 인력을 줄이는 대신 온라인을 중시해왔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물론 이런 흐름은 거시적으로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미국의 인권운동가 겸 가수인 조안 베이즈(Joan Baez)의 말에 귀 기울여 보자. '인간관계에 있어서 수만 명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반대로 단 한 명과 관계를 맺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이다.' (The easiest kind of relationship is with ten thousand people, the hardiest is with one.)
평범한 마케터들은 수만 명의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훌륭한 영업 담당자는 고객을 한 명씩, 한 명씩 만난다. 그들은 매번 단 한 명의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 단 한 사람의 고객이 어떤 니즈를 갖고 있는지, 어떤 불만을 갖고 있는지 말이다. 평범한 마케터들은 20대 여성은 이렇다 40대 남성은 저렇다고 말하겠지만, 훌륭한 영업 담당자는 합정동에 사는 20대 여성인 김태희 고객님이 지난달에 승진에 밀려 자존심이 많이 상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현재 김태희 고객님은 마케터들이 분석하는 일반적인 20대 여성의 구매력과 행동 패턴을 갖고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힌트가 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고객들을 1대 N의 관계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면 고객은 여전히 우리를 1:1의 관계로 바라보고 있다. 고객인 나를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큰 실망을 하고 만다. 우리는 고객을 무조건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인맥'의 관점으로 바라보지만, 고객은 우리를 '인간관계'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여기서 괴리가 생긴다. 서로 바라보는 마음이 다른 것이다. 고객은 우리와 1:1의 관계를 원한다. 따라서 고객을 단순히 마케팅의 영역으로만 다뤄서는 안 된다. 고객을 마케팅의 관점으로만 바라본다면 그들은 매우 피로할 것이다.
이메일 계정의 받은 편지함을 한 번 보자. 영혼 없는 스팸 메일이 얼마나 많은가? 창립 5주년 기념 특별 프로모션! 지금 바로 자동차 보험료를 확인하세요! 신차 사전 예약 마감 임박! 영화 티켓 증정 이벤트! 받자마자 수신거부 버튼을 눌러 버릴 것이다. 자기네 창립 5주년이 대관절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내 자동차 보험 갱신은 10개월도 더 남았는데 지금 뭘 확인할 일이 있을까? 이런 것들은 모두 근본 없는 마케팅일뿐이다. 어쩌다 하나 걸리겠지 식으로 보낸다면 엄청 많은 고객들로부터 수신거부를 당할 것이다.
따라서 고객과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영업 담당자가 할 일이 많다. 많은 기업 담당자들이 신규 고객 창출에만 매달리다 보니 시간이 없어 기존 고객을 만나지 못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기존 고객을 만난 적이 없다면 조금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오래지 않아 우리를 떠날 것이다. 더 이상 힘들 게 구한 고객을 떠나보내지 말고, 고객 한 명과의 관계를 제대로 유지하도록 하자. 현재 고객사가 몇 개냐는 의미가 없다. 그건 영혼 없는 페이스북 친구 맺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 스타트업세일즈연구소 유장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