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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에서 온 언니 Jun 01. 2022

나는 아빠가 없다

갑작스러운 이별

작년 8월 어느 날 아빠는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아주 건강체질은 아니셨지만 그래도 심혈관 질환도 없으셨는데 코로나 백신 접종의 후유증이었는지 뭔지 평소 다니던 병원 앞에서 한번 쓰러지시고 구급차를 타고 집에 오셨다가 그날 저녁 주무시다 돌아가셨다.


구급차는 왜 아빠를 집으로 모시고 왔을까... 고집쟁이 아빠는 왜 내일 병원을 간다고 하셨을까... 나는 그 소식을 듣고도 왜 바로 친정에 가보지 않은 걸까...

왜, 왜, 왜 그런 걸까...



어버이 살아 실제 섬기길 다하여라

지나간 뒤면 애닳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아빠가 없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이제 이 정철의 시조는 내 삶의 일부분이다.

아무리 많은 책과 글을 읽는다 해도 내가 몸소 겪어보지 않으면 그것은 온전한 내 것이 아니다.

이제야 40 평생 내 인생에 글 하나가 내 것이 된다.


결혼해서 두 아이를 키우는 지금까지 아니 아빠가 돌아가시던 작년 8월까지 나는 아빠가 참 미웠다.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것도 미웠고, 그 토끼 같은 손주들이 집에 와도 별 관심이 없는 무심함도 싫었고, 매일 무기력하게 방구석에 누워있는 꼴도 보기 싫었다. '저렇게 살면 뭐하나... 도대체 왜 저러고 살지' 싶어 아빠를 보면 화가 났다. 아마도 그 화는 속상함이었으리라....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참 신기하지.

"장인어른 돌아가셨데 지금 가봐야겠어." 라며 그 새벽에 신랑이 나를 깨웠을 때,

내가 처음으로 든 생각은 '올해 아빠 생일엔 전화도 안 했는데...'였다.

사람은 참 이기적이다. 그 순간에도 내가 잘못한 생각, 그래서 내가 평생 후회할 생각만 하다니 말이다.

다음날 아빠 모시고 병원 가려고 신랑이랑 아침에 친정에 갈 계획이었는데... 인생이란 바로 다음날도 단 몇 시간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야 마는 것이 인생이다.


하필, 정말 하필이면 그런 아빠가 너무 미워서 전화가 와도 귀찮아서 안 받고, 생일날은 그냥 알면서도 지나갔던 바로 그 첫해... 아빠가 유난히도 미웠던 그 해에 아빠는 돌아가셨다.


베트남에서 일하고 있는 남동생은 들어올 수도 없이 우리는 장례식을 치렀다. 코로나는 그렇게 우리 가족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사진 속의 아빠는 그저 웃고 있었다.


사람은 죽어도 그 사람의 삶이 남는다.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7살 무렵 나와 아빠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빠는 그때도 말랐고 손에도 살이 없었다. 막 머리를 감고 나온 나의 머리를 아빠가 말려주었는데 그때의 드라이기 소리, 그리고 아빠의 딱딱한 손의 느낌이 지금도 생각이 난다.

그때 아빠는 젊었고 힘이 있었다. 아빠도 나를 사랑했겠지? 내 아이의 머리를 말리면서 문득 떠올려본다.

오랜 세월 담배를 피워서 아빠 옆에 가면 큼큼한 냄새가 났고, 항상 가래 끓는 소리를 내던 기침소리... 이제는 다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슬프다.

아파트 단지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삐쩍 마른 할아버지를 만나면 나도 모르게 아빠 생각이 난다. 

아 나 아빠 없지... 그때마다 문득문득 서글프다.


유품을 정리하며 사진을 가져왔다. 모두 태워버려야 한다고 했는데 아빠 사진을 가지고 싶었다. 아주 예쁜 사진첩을 하나 샀다. 모두 정리해서 꽂아두었다. 그리고 이제 아빠의 기일에 꺼내보려고 한다.



아빠를 보내고 그 슬픔이 이제 정리가 된 건지 흐려진 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엄마가 더 건강하셔서 오래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계실 때 사진도 많이 찍고 추억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해서 엄마에게 더 효도하는 일은 없다. 똑같은 후회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리라...


동네 동생이 아빠랑 통화하다가 열 받아서 싸웠다고 하소연이다. 

"너는 전화로 싸울 아빠가 있어서 좋겠다. 그래 살아계실 때 많이 싸워~ 그것도 못한다."


내가 볼 때 가장 강한 자는 죽은 사람이다. 죽은 사람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살아서 한 번도 친해지지 못했던 나의 아빠는 이제야 조금 가까운 느낌이다.

하지만 이제 아빠는 말이 없다. 

아빠가 계신 곳은 편안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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