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봉지가 없는 나라가 있다

케냐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다

by 마포구타자기

지난 4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를 혼돈의 카오스로 빠뜨린 그 사건을 기억한다. 그간 전 세계의 각종 재활용 쓰레기를 수입해오던 중국이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돌연 재활용품 쓰레기 수입을 중단해버렸고, 그로 인해 중국에 재활용품 쓰레기 수출을 의존해오던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한국의 재활용 쓰레기 역시 중국에의 수출의존도가 상당했기에 한국이 겪는 혼돈의 카오스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준이었다. 정부와 지자체에서 서둘러 이런저런 해결책을 들고 나왔고 중국을 대체할 인도 등 다른 수출국을 논의하기도 했지만, 결국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재활용품 사용 자체를 멈춰야만 해결될 수 있는 그런 문제였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나는 비닐봉지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된 케냐에서 거주 중이었다. 한국 뉴스를 읽으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한국의 미래, 그러니까 일상 생활에서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한국의 미래에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것 같은, 그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이 글을 통해, 비닐봉지가 없는 일상은 어떠한 모습일지 잠시 한국의 미래를 들여다보고자 한다.



비닐봉지 없는 나라에서 살아갈 준비


케냐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내가 맞닥뜨린 수 많은 미션들 중 가장 고난도의 미션을 꼽자면, 그것은 단연 '비닐봉지 없이 1년치 짐싸기'일 것이다. 케냐에서는 지난 2017년 8월 28일을 기점으로 비닐봉지 사용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에, 케냐를 입국하거나 출국하는 모든 사람들은 (외국인 포함) 비닐봉지를 소지하거나 운반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참고: 케냐서 비닐봉지 사용땐 최대 징역 4년·벌금 4천만원(종합)]


덕분에 나는 난생 처음으로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고 1년 동안 생활할 짐을 꾸리게 되었다. 짐을 꾸리는 동안 봉착한 몇몇 난관들이 있었는데, 그 중 첫번째는 바로 '어디까지를 비닐봉지로 볼 것인가' 였다. 검정색 비닐봉지는 차치하더라도, 왠지 지퍼백은 비닐이 아닌 것 같은데, 건너건너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퍼백을 가져가서 벌금을 물었다는 사람이 있다. 그럼 추석 선물용 스팸세트의 포장가방은 비닐로 생각해야할까? 그 곳에 옷가지를 넣어갈 생각이었는데, 부직포 재질인 것 같지만 겉표면은 비닐인 것 같기도 하고... 또한 생리대의 비닐은 어떡할 것인가? 이 역시도 비닐로 고려할 것인가, 그럼 나는 이 모든 비닐을 다 뜯어서 가져갈 것인가!!!


혼돈의 카오스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비닐인지 아닌지 애매모호한 재질들에 맞닥뜨릴때면, 가족들을 모아 놓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 명씩 의견을 물었다. 비닐재질과 그렇지 않은 재질이 섞여있을 때면 가족들의 의견이 갈렸고, 괜찮을거야! 하고 무시하기엔 벌금이 너무 컸다. 결국은, 이렇게 헷갈릴 바에는 그냥 종이 쇼핑백을 이용하자! 하고 그간 이리저리 쳐박아두었던 종이 쇼핑백을 잔뜩 가져와 옷이며 속옷이며 이런저런 것들을 정리하는데에 써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왠지모르게 찝집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KakaoTalk_20180729_181818975.jpg 비닐 재질에 든 식품을 브라운 백에 옮겨서 가져온 똑똑이 내 룸메이트. 사진. 작은흑염소.


KakaoTalk_20180729_181832689.jpg 라면, 제가 참 좋아하는 데요. 사진. 작은흑염소.


이런 난관을 극복하고 나니, 이제는 '누가봐도 비닐임이 분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져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라면킬러인 본인 자신을 잘 알기에, 잔뜩 가져가려고 사두었던 신라면은 누가 보아도 비닐에 둘러싸여있다. 이건 어떻게 가져가야할까, 한참을 고민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내 룸메이트는 이를 하나씩 뜯어서 갈색 종이백에 스프와 함께 고이 담아온 극강의 정성을 보여주었다. 1년치 파운데이션의 리필용기 역시 모두 비닐재질로 포장되어 있었다. 화장품은 한 번 뜯으면 그 수명이 있기 때문에 이는 종이 백에 따로 가져갈 수가 없었다. 결국 옷의 군데군데에 고이 숨겨가지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KakaoTalk_20180729_181809032.jpg 통조림 님은 무사히 입국하실 수 있었습니다. 사진. 작은흑염소.


여기서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한) 공항 수색대와 충돌하지 않는 몇 가지 팁을 드리자면,

1) 새벽시간 대에는 수색대 분들이 좀 지쳐 보였었다. 비닐봉지 검사도 엄청 대충하시는 것 같았다. 새벽시간에 도착하는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수 있겠다. 실제로 내 룸메이트의 짐 몇 개를 검사하더니 동행인 나의 짐은 검사도 안하고 그냥 보내주셨다.

2) 자고로 다른 나라를 여행할 때, 공권력과의 충돌은 어떤 상황에서이건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수색대를 통과할 때는 열 시간이 넘는 비행으로 피곤에 쩔어있어도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좋겠다.

3) 짐을 쌀 때, 상단에는 누가 보아도 시비 걸지 못할 (비닐 재질이 아닌 통조림과 같은) 한국음식들을 배치해 놓는 것이 좋다. 알아듣지 못할 한국어로 적힌 음식들에 더 수색을 하려는 의지가 사라지시는 듯 보였다.



진짜 비닐봉지가 없는 나라, 케냐


그렇게 고생을 해서 들어온 케냐에는 정말 비닐봉지가 없었다. 슈퍼마켓을 가던, 약국을 가던, 시장을 가던, 어느 곳을 가건 간에, 그 흔하디 흔한 검정색 비닐봉지를 찾아 볼 수 없었다. 대신에 아래처럼 생긴 천 가방을 팔고 있었는데, 1개에 한국 돈으로 100원 정도였다. 이 가방은 한 번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 시장에 장을 보러 올 때, 다시 가져와서 쓸 수 있는, 그러니까 지속적으로 사용 가능한 장바구니이다.

The Guardian.jpg 비닐봉지 대신 지속 사용 가능한 천 가방을 파는 케냐 시골의 모습. 사진. The Guardian.


작은흑염소.jpg 비닐봉지 대신 파란색 천가방을 사용하는 일상. 사진. 작은흑염소.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불편했었다. 빈 손으로 딸랑딸랑 슈퍼마켓이나 시장에 가서 이것 저것 일주일 치 먹을 것을 잔뜩 사고나면 가져갈 장바구니를 놓고 왔다는 사실에 아차 싶었고, 결국 초반에 몇 번은 돈을 주고 매 번 새로운 장바구니를 샀다. 단순하게 100원 그 자체만 보면, 그리 큰 돈은 아니지만, 막상 매번 장볼 때마다 (집에 수두룩히 쌓여있는 장바구니를 쓰지않고) 또 새로운 장바구니를 산다고 생각하면 여간 아까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우리 집에 쌓인 것만 벌써 이정도가 되었다 (아래 사진). 마음먹고 장을 보러 가는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예기치 않게 다른 물건을 살 일이 있을 때에는 결국 새로운 가방을 사지 않고는 안되는 상황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변명이다!!!).


KakaoTalk_20180729_181841383.jpg 이렇게 쌓인 천가방만 하나, 둘, 셋, 넷,,,, (이하생략). 사진. 작은흑염소.

한국에서는 재활용품 사용 제제에 대한 이야기만 나와도 벌써 여론이 시끄러운데, 케냐에서는 사람들이 이런 법적조치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초기에 법이 제정될 때에는 어떠한 의견들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불편한 것과 더불어 이해가 안되는 점도 있었다. '비닐봉지' 그 자체는 그래, 없었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물이며 음료수를 담는 플라스틱은 아주 공공연하게 잘 사용되고 있었다. 게다가 폐차 직전의 수 많은 차들이 내뿜는 (정말 눈으로 볼 수 있는) 검은 매연들은 마시면 정말 폐가 문드러질 것 같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결국, 비닐봉지만 없을 뿐이지 전체적으로는 환경에 가해지는 여러 위협요소들이 전혀 통제되고 있지 않았었다. '비닐봉지'만 없엔다고 환경이 보존 될 수 있을까? 이 법적 금지 조치는 과연 얼마나 케냐의 환경을 보존하는데에 효과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케냐에서 한국의 미래를 보다


케냐의 비닐봉지 사용 금지에 대한 연합뉴스의 기사를 보면, 케냐 정부도 최종적으로 법을 제정하는 데까지 참 긴 협의의 과정이 있었던 것 같다. 무려 10년 동안 비닐봉지 사용 제정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두 번의 실패 끝에 작년에서야 최종적으로 법안이 발효될 수 있었다고 한다. 논의의 과정에서는 물론 비닐봉지 제조업자들과의 의견 충돌도 있었다. 실제로 비닐봉지 제조업자들이 법안의 효력을 중지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지만, 케냐의 법원은 '환경에 대한 우려가 상업적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결하며 이를 기각했다고 한다. (크으- 솔직히 좀 멋진듯)


같이 일하는 현지 동료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봤다. 솔직히 불편하지 않느냐고, 이렇게 금지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내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동료들은 만장일치로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는 법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보였다. 기존의 마을 모습을 보면, 슈퍼마켓 입구에 비닐봉지 꾸러미가 달려있어서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비닐봉지를 사용했다고 한다. 때문에 거리에도 비닐봉지가 널려있었고, 돌아다니면서 풀을 먹는 염소나 젖소들이 비닐봉지를 먹고 죽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일상에서 비닐봉지가 없어지면서,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게다가 지금은 법안이 발효되고 1년 정도가 지나서 사람들이 대부분 익숙해졌다고 한다.


1621257_0.jpg 천 장바구니를 팔고 있는 거리의 모습. 사진. The Star, Kenya.


결국 불편함은 잠깐일 뿐, 사람들은 다시 익숙해진다. 한국에서 내일부터 당장 비닐봉지 사용을 금지하는 법이 발효된다면, 엄청 불편할 것이다. 짜증도 날 것이다. 여러 이익단체로부터 반대의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사람들은 다시 익숙해질 것이다. 불편함은 잠깐이고, 그로 인한 환경에의 영향력은 영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곳 케냐에서 비닐봉지가 없는 일상에 익숙해졌던 것처럼, 비닐봉지가 없는 한국의 모습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오늘의 이 글이 당신에게 아프리카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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