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서 Wifi가 없는 곳에 산다는 것은

후천성 진상이야기(1)

by 마포구타자기

최근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지인과 나눈 대화 중, 꽤나 인상깊은 구절이 있었다.


지인 R: 서비스업종에서 일하다 보면 소위 말하는 ‘진상’을 엄청나게 많이 만나는데, 사실은 진상에도 종류가 있어.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노답인 선천성 진상이 있는가 하면, 우리 측의 실수로 진상이 되어버린 후천성 진상이 있지.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후천성 진상은 실수에 대한 우리의 대처방법에 따라서 후천성 단골이 될 수도 있다는 거야.


이 말을 들으면서 얼마 전, Wifi 쟁취를 위해 약 2주간 자발적으로 후천성 진상이 되었던 나 자신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와 함께 후천성 단골이 된 현재의 나의 모습 역시 같이 떠올려보았다. 오늘은 Wifi가 없는 케냐의 이 작은 시골마을에서 Wifi를 설치하기 위해 후천성 진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그 지독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을 이곳에 풀어보려고 한다.



USB로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다?

케냐 시골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 그리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하루 이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따뜻한 물로 샤워를 못할 때도 있고 물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 기관이 전기세를 안내서 이틀 정도는 물이 안 나올 때도 있다(*수도 나이로비 및 다른 큰 도시들과는 매우 다른 상황임을 기억해주시면 감사하겠다). 하지만 정전이나 단수보다도 나에게 큰 스트레스와 괴로움을 주었던 것은 사실 Wifi, 무선인터넷의 부재였다.


초고속 무선인터넷의 천국이라는 한국에서 평생을 자라온 나에게 인터넷은 집의 일부같은 것이었다. 느즈막한 저녁,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가장 먼저 내가 하는 일은 스마트폰의 인터넷 설정을 이동식 데이터에서 와이파이로 바꾸는 일이었다. 하루의 피로를 녹이는 것과 함께 정보의 홍수 속을 데이터 부담 없이 마음껏 헤엄칠 수 있도록 Wifi를 켜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휴식의 공간’으로서의 집의 모습이었으며 Wifi는 그 휴식의 공간을 완성시켜주는 아주 핵심적인 요소였다.


물론 케냐에 가기로 결정한 후부터 어느정도 각오는 했던 것이 사실이다. 전임자분들과 계속 현지 상황이나 생활에 대해 연락을 주고받고 있던 상황이었기에 '인터넷이 존재한다'는 점은 알 수 있었고 단지 '인터넷이 느릴 수도 있겠지' 정도로 생각을 하고 케냐에 도착하였다. 그런데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이곳에 Date 무선인터넷은 존재하지만 노트북 등 핸드폰이 아닌 다른 전자기기로 인터넷을 이용하려면 USB 번들 시스템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IMG_3797.jpg 해당 USB 내부에 미리 충전한 칩을 넣고 노트북에 꽂으면 인터넷 연결 완료! 속도에 대해선 말하지 않겠다. 사진. 작은흑염소.


USB bundle system으로 말할 것 같으면, 미리 돈을 충전한 칩이 삽입된 USB를 인터넷을 쓰고자 할 때, 노트북 등의 전자기기에 꽂으면 바로 인터넷이 연결되는 시스템인데, 사실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우선은 노트북내에 USB 단자가 두개 밖에 없는 내 랩탑과 같은 경우는 인터넷이 필요할 때마다 외장하드나 마우스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사업자료가 많은 외장하드를 포기할 수는 없기에 결국 늘 마우스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또한 인터넷의 속도가 그렇게 빠른 편도 아니기 때문에 페이지 하나를 열려고 하면 5-10분정도의 대기시간은 기본이며 집안에서 인터넷이 잘 터지는 구역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떠돌아야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USB 인터넷 자체가 무제한이 아니기 때문에 충전한 양을 다 쓰게 되면 현지 로컬 폰으로 직접 충전해야 한다는 점은 정말 귀찮은 일이었다. 물론 현지폰으로 충전할 수 있는 것도 미리 개인의 M-Pesa 계정에 돈이 있다는 전제에서이다.


USB 인터넷을 쓴지 이주정도가 지났을까, 한국 본부와 자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는 이도저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득 한 달여전에 케냐에 막 도착했을 때의 나이로비 공항에서는 Wifi를 연결할 수 있었다는 점을 떠올렸고 '우리집에 Wifi가 없으면 그냥 하나 설치를 하면 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글링을 해보니 케냐에 와이파이가 없는 것도 아니었고 심지어 무제한 와이파이 월별플랜도 다 갖추어져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진작 이런 정보를 찾아보지 않은 자신을 자책하며 나는 당장 와이파이를 설치하기로 했다.



“이 집에는 Wifi를 설치할 수 없습니다”

신나게 이것저것 조사를 한 뒤, 필요한 예산을 본부에 요청해 지원까지 받고 나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바로 타운 내에 있는 Safaricom 대리점으로 향했고 친하게 지내던 직원에게 내가 조사한 항목과 쓰고 싶은 월별플랜까지 모든 것을 다 말했다.


내 이야기를 쭉 듣고있던 그 직원은 Wifi설치를 할 수 있을지 여부를 알려면 우리집에 가서 조사를 해야한다며 나침판처럼 생긴 이상한 핸드폰 어플을 켜더니 이걸로 인터넷 신호가 잡히는지를 체크해야 한단다.


그림1.png 월별로 일정 금액을 내면 무제한 와이파이를 이용할 수 있는 Safaricom Home Fibre. 사진. Safaricom 공식 홈페이지.


open signal app.png Wifi의 Coverage 및 Speed 등 다양한 점을 체크할 수 있는 Open Signal 어플. 사진. Open Signal App.


약간 미심쩍은 마음을 뒤로하고 일단은 같이 집으로 향했다. 집 앞에 도착하니 그 대리점 직원은 아까의 그 이상한 나침반 어플을 켜더니 이리저리 신호를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났을까, 금세 지루해진 내가 어떻게 되어 가냐고 묻자, 조사를 거의 끝낸 듯한 그 직원으로부터 충격적인 답변이 들려왔다.


"너네집은 Wifi신호가 전혀 없어서 공유기를 설치할수도 없겠네. 아쉽지만 인터넷은 그냥 그 USB 계속 써야겠는데?"


그 엄청난 말을 듣고 집앞에서 망연자실한 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대리점 직원은 나에게 흥미로운 대안을 제시했다. 사실 Wifi가 없어도 쓸 수 있는 이동식 Wifi가 있단다. 내가 조사해간 무제한 와이파이 월별플랜은 나이로비같은 대도시들부터 차례대로 서비스가 진행중이라면서 여기같은 깡시골은 소도시는 아직 서비스가 지원되지 않으므로 이동식 Wifi 월별 정액제를 써보라고 하는 것이다…!


잠시 한 1초정도 고민했으나 이내 고민할 것도 없었다는 점을 깨달았다. 한 페이지 여는데 5분이 걸려서 시간도 버리고 데이터 소모량도 큰 그 USB인터넷을 쓰느니 그냥 핸드폰 데이터를 더 충전해서 핫스팟을 쓰는게 나으리라. 대리점 직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동식 와이파이를 이용해보기로 결정했다.



Wifi는 있으나 인터넷은 없음

IMG_3801.jpg 해당 Router는 USB 연결을 안해도 Wifi 연결이 가능하다 ㅠㅠㅠㅠ. 사진. 작은흑염소.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그 친구가 말한 이동식 와이파이는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KT EGG같은 것이었다. 다만 아프리카에 급격히 진출 중인 중국 기업들의 위상을 보여주듯 기계가 Huawei것이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 기본적인 시스템은 거의 같았다.


그렇게 기계+월별플랜을 세트로 구입하고 인터넷을 만끽한지 한 달정도 되었을까, 어김없이 문제는 찾아왔다. 새로운 달이 시작되어 인터넷을 충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인터넷이 연결이 안되는 것이었다…! 처음 한 두 번은 그냥 연결상태가 안좋은 것이겠거니 했는데, 한 일 주일 넘게 같은 현상이 반복되자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인터넷 모양 그림은 뚜렷하게 표시되어 있는데 노란색 느낌표와 함께 '인터넷은 있으나 연결할 수 없음' 메시지가 반복해서 뜨는 것이었다.


네이버 블로그 모기네...jpg 당시 내 상황과 아주 비슷한 연결상태. 사진. 네이버 블로그 모기네.


처음에는 네이버 및 구글의 문제해결사님들을 막 찾아다녔다. 무슨 자동으로 DNS 주소를 수집하도록 해놓은 설정을 수동으로 바꾸라느니, 뭘 껐다가 켜보라느니 시키는 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다- 해보았으나, 한번 끊어진 인터넷은 절대 다시 연결되지 않았다.


인터넷은 참 그런 존재이다. 있으면 그 존재가 있는지조차 몰랐다가, 없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강구해서라도, 얼만큼의 시간이 들더라도 꼭 되찾아오고 싶은 존재. 물론 인터넷이 있다가 예고도 없이 사라질 경우에는 더더욱 그러하다.


잃어버린 그 소중한 친구를 찾기 위해, 대리점 직원에게 다시 가서 문제를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몇 주째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상황을 설명하니, 이게 웬일? 그 친구도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가 우리로부터 돈을 받아 인터넷을 충전할 때에 Safaricom 전체적으로 내부 서비스 점검이 있었다고 한다. 그 점검시간에 충전을 해서 아마 인터넷이 제대로 충전되지 않았고 지금 우리 기계에는 충전된 데이터가 없다는 말이었다.


ㅇㅅㅇ? 그 말인 즉슨, Wifi 기계 및 내 랩탑은 아무런 문제가 없고 단지 인터넷이 제대로 충전되지 않아서 Wifi 연결이 안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설명을 듣고 나니 문제가 꽤 간단해 보였고 이제 공중에서 분해되어버린 내 인터넷을 돈으로 환불받아 다시 충전하면 될 것처럼 보였다.



케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땐, '빙그레 진상' 전략

그러나,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이곳은 불편한 서비스에 대해 단 몇 분만에 전화 한통으로 환불받고 심지어 통신사로부터 서비스 불편에 대한 사과인사까지 받을 수 있는 한국이 아니었다는 것을. Safaricom은 케냐 최대의 통신사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놈의 서비스 점검에 거의 이주일이라는 시간을 할애하며 환불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그냥 해주기 싫은 것이 아닌지…


물론 사비로 다시 인터넷을 충전하고 천천히 환불을 기다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은근슬쩍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끝까지 환불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Safaricom에서 서비스 점검을 이유로 환불을 해주지 않은 이주 동안, 나는 정말 매일같이 대리점을 방문하거나 일이 많아서 방문할 수 없는 날에는 대리점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후천성 진상으로서의 내 모습이 드러나는데, 나의 진상전략은 일명 ‘빙그레 진상’이다. 사실 매일 대리점을 찾아가거나 연락을 해도 들려오는 대답은 뻔하다. “오늘 오후 8시까지는 복구가 된다” 혹은 “내일 아침 9시까지는 점검이 끝날 것이다” 내가 대리점을 향할 때,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오늘 안에는 절대 Wifi를 되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걸. 그래도 일단 대리점에 들어서면 마치 어제의 그 말은 못들은 것처럼, 오늘 처음 찾아온 것처럼 밝고 뻔뻔하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 직원들도 밝게 인사를 받아주면서 웃는 얼굴로 다시 어제 했던 그 이야기, 어제 했던 그 실랑이를 또 반복하며 한시간 정도를 소모한다. 해결되지 않는 이야기를 매일 반복하지만 서로 웃는 얼굴이라 심하게 화낼 수도 없다.


물론 ‘빙그레 진상’전략을 취하기 전에는 숱하게 화도 냈었다. 소리도 지르고 씨알도 안 먹힐 협박도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대리점 직원들은 덩달아 화내는 것이 아니라, 웃으며 ‘케냐는 원래 그래. 너가 익숙해져야지’ 하는 대답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더 크게 화를 내는 것은 서로 기분만 상할 뿐,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빙그레 진상’ 전략은 그 모든 시행착오를 겪고 내가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다.


매일같이 아침 8시면 모닝콜(을 빙자한 압박전화)을 하고, 퇴근 길에는 대리점을 잠깐 들려 수다를 떨 듯 실랑이를 벌인지 2주 정도가 되었을까, 갑자기 일이 너무 바빠져서 한 이틀 동안은 아무런 전화도, 방문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자 대리점 직원으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자기가 봐도 Safaricom으로부터 환불받을 때까지는 억만년이 걸릴 것 같으니, 자기가 대신 개인돈으로 환불을 해주고 Safaricom으로부터 나중에 환불을 받으면 그 돈을 자기한테 다시 돌려주는게 어떻겠냐고. 너랑 그동안 친하게 지냈는데 Safaricom이 우리 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다며, 자기는 너랑 사이가 안좋아지는걸 원치 않는단다.


오 마이 갓. 솔직히 이 제안을 듣고 나는 기쁜 마음보다는 조금 놀란 마음이 더 앞섰다. 짧은 기간이지만 여기서 생활하면서 내가 충전한 Wifi의 금액이 이곳에서 상당한 정도임을 알 수 있었고, 아무리 Safaricom 소속이라고는 해도 그 역시 이 조그마한 마을 출신의 마을 사람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디쯤 있는지도 몰랐던 그 직원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한낱 외국인에게 부담이 될 정도의 금액을 자기 개인돈을 들여 환불해주려고 한다.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내가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는 그의 진심도, 고객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는 그의 마음도 조금은 느껴졌다.


그의 진심을 무시할 수 없으니, 그 제안에 단숨에 OK를 하고, 무사히 소중한 내 친구 Wifi를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한 3주쯤 더 지나서였을까, Safaricom으로부터도 무사히 환불을 받을 수 있었고 나는 그 돈을 대리점 직원 친구에게 돌려줄 수 있었다. 돈을 돌려주러 가는 길에 파인애플 아저씨가 있어서 파인애플 한 통을 구입해 돈과 함께 돌려주었더니 대리점 직원들 모두가 너무너무 좋아했다. 진심으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노력하고 자그마한 선물에도 기뻐해주는 그들에게 반해, 나는 그들의 후천성 단골이 되어버렸다.





오늘의 이 글이 당신에게 아프리카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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