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는 다 더울 것이라는 착각
아침 5시 45분, 전날 맞춰 놓은 알람소리에 잠을 깬다. 아직 침대에는 전기장판의 온기가 남아있다. 약간은 쌀쌀한 아침 기온에 몸을 조금 웅크리고는 침대에서 서서히 기어나온다. 오늘은 어제보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많이 분다. 옷장에서 조금은 두꺼운 바람막이를 꺼내 입어야겠다. 이렇게 계속 비가 오고 안개가 끼면 조만간은 겨울용 양털잠바를 꺼내입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초겨울, 한국의 흔한 직장인이 아침을 준비하는 모습처럼 보이는가. 놀랍게도 이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하루를 시작하는 나의 아침에 대한 글이다.
케냐에 오고 난 지 한 달 정도가 지났을까. 미지의 세계(?)로 딸을 떠나보내고, 친구를 떠나보낸 이들이 많이 걱정해주고 안부를 물어왔다. 그러다가 가끔씩은 영상통화를 하곤 하는데, 핸드폰 화면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마자 그들이 보이는 몇 가지의 공통된 반응들이 있다. '어? 생각보다 하얗네...? 아직 그렇게 많이 안탔나봐?'라던가 '잉? 아프리카인데 왜 긴팔입고 있어? 안덥나!' 등의 놀람+의아함이 그것이다.
사실 이들의 반응이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 이곳에 오기 전의 나 역시도 '아프리카=이 세상의 더위+폭염의 끝' 이라고 생각했었고 실제로 짐을 쌀 때도 내가 가진 여름옷을 몽땅 집어 넣기도 했다 (케냐는 연중 가을날씨라는 전임자의 조언을 듣고는 의심반 걱정반으로 긴 옷으로 바꿔 챙기기는 했지만).
나와 나의 지인들이 그러했듯, 많은 한국사람들은 '무더운 날씨'를 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떠올리는 듯하다. 여름철만 되면 아프리카의 나라들과 대구의 낮 최고기온을 비교하면서 '아프리카 출신들도 대구 날씨는 못 견디겠어요!' 풍의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말이다. (참고: 매일신문, 아프리카 출신들도 "대구 날씨는 못 견디겠어요!" 혹은 인사이트, 아프리카 케냐 사람도 인정한 '대프리카' 찜통더위)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적도선을 관통하는 대륙...!'이라는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계지도를 보면 아프리카를 관통하는 적도선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지리시간에 적도 부근은 무지막지하게 덥다고 배웠기 때문에 세계지도에서 적도 부근에 있는 나라들을 발견할 때마다 저기서는 사람이 어떻게 살까, 하고 오지랖 넓은 걱정을 종종 하기도 한다.
물론 아프리카가 지리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한국과 거리가 먼 대륙이라서 많은 관심이 없었기 때문도 있었을 것이다. 설사 아프리카에 관심이 있다 하더라도 접근할 수 있는 콘텐츠나 정보 자체가 매우 한정적인 것이 현실이다. 한국 미디어에서 아프리카는 <걸어서 세계속으로> 다큐멘터리에서나 가끔 볼 수 있을 뿐이고 뉴스에 아프리카에 관한 소식이 들릴 때면 언제나 전쟁이나 시위, 테러소식처럼 아주 특별하고 자극적인 소식인 경우가 태반이다.
결국 아프리카라는 대륙, 그리고 그 속에 있는 50여개국의 나라들에 대해 '일반적'이고 '평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많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프리카의 다양한 모습과 이미지를 보여줄 수 있는 매체역시 없거나 잘 알려지지 않았었고 그런 매체에 기록될 수 있는 콘텐츠 역시 부재하거나 많이 전달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아프리카'라는 거대한 대륙이 다 똑같은 기후와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를 알 수 있다. 물론 사하라 사막일대처럼 숨막히게 더운 지역도 있지만 내가 있는 동아프리카의 케냐같은 고지대 국가들은 아무리 적도부근에 있다고 할지라도 연중 가을날씨를 보인다. 덥다고는 해도 선풍기 미풍과 약풍 딱 중간정도의 바람이 계속 불어 땀이 나더라도 금방 마르고 나무그늘 밑에 있으면 서늘하기까지 하다.
요즘과 같은 우기에는 그 정도가 더하다. 사실 서늘한 정도가 아니라 매우 춥고 바람도 많이, 강하게 분다. 가끔씩 케냐의 홈리스들은 얼어 죽을수도 있겠다, 걱정이 들 정도이다. 긴 팔에 긴 바지는 나의 평상복이 되었고 가끔씩은 털 가디건이나 한국에서 출국할 때 입었던 양털 잠바를 입기도 한다. 요즘은 한국에서 좀 더 겨울 옷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타운에 있는 중고 옷시장에서 열심히 겨울 옷을 스캔하는 중이다.
자기 전, 전기장판을 켜는 것은 이제 선택이나 기분에 따르는 사항이 아니다...! 밤새 정전이라도 되는 날에는 이불 속에서 새우자세로 잠을 자며 오들오들 떠는 지경이니 말이다. 실제로 비가 많이 왔던 주말 이후 출근을 했더니,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케냐 동료들은 벌써 두명이나 감기에 걸렸다. 우기 때는 감기몸살 겪는게 예삿일이라고.
결론적으로 매년 대구와 비교되는 더위의 대명사 아프리카, 그 중에서도 케냐에 살고있는 나는 요즘 하루하루 우기의 추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햇볕을 가리기 위해 썼던 밀집모자는 가끔씩 우산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어서 고마울 따름.
오늘의 이 글이 당신에게 아프리카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