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이 만들어지는 과정
어린시절, 특별히 잘 하는 것 없이 두루두루 모든 분야에서 평타를 쳤던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내가 남들보다 특별한 노력없이 잘 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단거리 달리기'였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으로부터 큰 키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턱에 나는 늘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를 유지해왔고, 덕분에 다리도 긴 편이었다. 물론 키가 크다고 해서 달리기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도 큰 키가 달리기에 유리하다는 것을 타인에 의해서 알게되었으니.
때는 초등학교 2학년 아침과제 시간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 아침 조회시간마다 일정한 과제가 있었는데, 아마 수요일이었던 그날은 '건강달리기'가 과제였던 것 같다. 아침부터 학교에와서 운동장을 돌고있자니 짜증이 났던 나는 친구들과 투덜대며 반은 걷고 반은 뛰고를 반복하며 어서 정해진 5바퀴가 지나가기를 바랬다.
그러던 중, 운동장 한켠에서 육상부 언니들을 지도하고 있던 육상부 코치님이 나를 부르셨다. 갑작스런 호출에 어리둥절했던 나는 영문도 모른채 코치님 앞으로 갔다. 코치님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 보시더니, 운동장 한바퀴를 전속력으로 한번 달려보라고 하셨다. 당시의 나는 일단 9살 애기(?)였고, 육상부 코치님도 무서웠기에 내가 뛸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운동장을 빠르게 돌고난 뒤, 육상부 코치님 앞에 섰다.
코치님은 흡족스러운 미소를 보이시더니, 육상부에 들어와서 다음날부터 육상부 훈련을 받지 않겠냐고 일종의 스카웃(?)제의를 하셨다. 당시의 나는 두 가지의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었는데, 하나는 '누군가에게 나의 능력이 인정받았다'는 묘한 뿌듯함과 동시에 '육상부 언니들이 너무 무섭다는 두려움'이었다.
나는 육상선수가 꿈도 아니었거니와, 학교 내에서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육상부 언니들이 너무 무서웠기에 코치님의 제안을 단번에 거절해버렸다. 코치님은 그 뒤에도 생긱이 바뀌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몇 번을 말씀하셨지만, 내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참 신기한 것은 뭐냐면, 그 뒤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의 학창시절 내내 거의 10년이상을 반 대표, 학년 대표로 계주선수를 했다는 것이다. 무엇 하나 특출난 능력이 없었지만 어떤 것 하나 처절하게 못하지도 않았던 나는 그냥그냥 평범한 한 명의 초등학생이었다. 그런데 어떤 분야의 전문가에게 딱 한번 능력을 인정받고 난 뒤에는 '아,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이런 것을 잘하는구나', '이 부분은 엄청나게 노력하지 않아도 내가 반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구나' 하고 나 자신에게 믿음을 줄 수 있었고, 그러한 믿음은 어김없이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최근에는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재능이라는건 사실 생각보다 쉽게 발견할 수 있다고.
'내 옆자리 친구보다 잘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찾고, 믿고, 앞으로 나아가 그 능력을 진짜 자신의 재능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어쩌면 내가 잘하는 것은 딱 옆자리 친구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 선생님이 잘한다고 칭찬해줬던 바로 그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