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2편. 내려놓음
임신 5개월 즈음일 것이다. 퇴근 길에 남편이 회사에서 만나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물론 나는 남편과 같이 퇴근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을 마무리 짓다 보니 내려간다는 시간보다 십 분이 늦게 되었다. 십 분 정도는 괜찮겠지 하고 남편이 기다리는 차에 탔는데, 남편이 왜 이렇게 늦었냐며 화를 내었다. 원래 화를 잘 안 내는 남편인데, 그날 따라 참 이상했다. 그렇게까지 화 낼 일이 아닌데 화를 내는 남편이 너무 야속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다투었다.
다투면서도 아이가 걱정되었다. 아이는 엄마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혹시 아이가 내 기분에 영향을 받아 성격이 예민하고, 잘 울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은 더 야속하게만 느껴지고, 감정 조절이 안되면서 자꾸 눈물만 났다. 집에 들어갈 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나는 집에 들어가 샤워를 하면서 마음을 진정했다. 뱃속의 아이에게도 엄마가 화내는 모습을 보여 미안하다고 이야기 했다. 저녁을 먹으며 우리는 서로의 감정을 추스르고, 바로 화해를 하였다. 남편도 뱃속의 아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며, 이제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짧은 사건이기는 했지만 그 일을 겪고 나서 괜한 걱정이 들었다. 내가 감정 조절을 제대로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이 성격에 안 좋은 영향이 갔을까 계속 노심초사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일을 잊고 밝고 긍정적으로 지내기는 했지만, 목에 가시가 걸린 듯 가끔씩 그 일이 떠오르고, 신경이 쓰였다.
몇 주 후, 존 가트너 박사의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이라는 책을 읽었다. 책에는 부부가 싸웠을 때, 아이 앞에서 바로 화해를 하고, 서로 안아주는 모습을 보이면 아이의 마음이 안정된다는 내용이 있었다. 비록 아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날 저녁 서로 화해하는 아빠와 엄마를 느끼면서 아이의 마음도 안정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아이를 갖은 후부터, 아이가 잘못 되면 안 된다는 마음이 엄마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으로 다가왔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아이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어깨는 더욱 무거웠다.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만큼, 책임감도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처음 남편과 다툰 후 내내 마음 졸였던 것처럼, 내가 실수를 하거나, 나 자신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해 아이가 울거나, 떼를 쓰면 마치 다 내 잘못인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이 너무 부족한 엄마라 느껴지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책감. 아이를 사랑하기에 느끼는 미안한 감정. 그 감정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내가 아이에게 무엇인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아이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미안한 마음에 아이에게 과잉으로 사랑을 표현하게 되고, 안 그런 척 했지만 엄마로서의 자신감도 떨어졌다. 이런 내가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지 자책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더 힘들게 했다. 아이를 그렇게 키우면 안 된다는 둥, 엄마가 왜 그러냐는 둥의 말들은 나의 자신감을 더 떨어뜨리고, 혼란스럽게만 했다. 나는 나름 애쓰고, 노력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그냥 말하는 사람들이 밉고, 또 마음과는 다르게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시간은 흘렀지만, 마음에 갇힌 묵직한 덩어리가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힘든 나를 다잡아 준 것은 남편이었다.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하는 나를 보고, 어느 날 남편은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 해주었다.
“혼자 모든 짐을 지려고 하지 말아. 아이는 혼자 키우는 것이 아니야. 나도 아이를 같이 키우고 있고, 아이는 엄마만 보고 크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보고, 경험하며 자라니까.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우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좋지만, 그렇다고 당신 손에 아이 인생까지 달라질 것이라고 너무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아이는 크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것이고, 다 잘 견디어 내며 커 갈 거야. 그러니 너무 큰 책임감에 힘들어하지 말아.”
남편은 또 말을 이었다.
“아이가 아픈 것, 아이가 우는 것, 아이가 슬픈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야. 이런 일들도 당신 때문에 그런 것인가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혹여 당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상처 주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일들 때문에 아이가 잘못 되지는 않아.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게 되어 있지만, 그 실수를 바로 잡을 기회도 누구나 가지고 있잖아. 아이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바로 잡을 시간은 충분히 있어. 그러니 걱정하고, 자책하지 말아. 그 어떤 것도 당신 잘못이 아니야. 당신은 아이를 사랑하니까, 아이도 분명 그 마음을 느낄거야.”
가슴 속 묵직한 덩어리가 공기 중으로 날아가 버리듯, 조금씩 마음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여보, 엄마로서 자신감을 가져봐. 당신이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되면, 아이도 그 감정을 느끼게 되고, 아이가 아무렇지 않게 수용할 수 있는 일도 무엇인가 잘못 된 것이 있는가 하고 받아들일 거야. 당신이 자신감 있고, 밝게 아이를 대할 때가 제일 멋있고, 행복해 보여. 그럴 때 아이도 함께 밝고, 행복해 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너무 흔들리지 말자. 우리 나름대로 같이 아이 어떻게 키울지 많이 생각해봤으니까, 그 생각대로 일관성 있게 해보자. 당신의 육아를 지지하고, 그 신념을 믿어. 자신감 있는 엄마 밑에서 아이도 씩씩하고, 자신감 있게 클 거야. 당신 그거 알아? 당신은 이미 멋진 엄마야.”
그의 말들이 큰 위로가 되었다. 그리고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했다. 자책감을 갖게 된 것도 내 욕심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점 하나 없는 사람이 없는데, 결점 하나 없는 아이로 키우려고 했던 것이다. 아이를 잘 키워야겠다는 마음만 너무 커서 내가 지쳐버렸었다. 누가 지워준 짐도 아닌데, 나 혼자 그 짐을 다 짊어진 듯 하고서는 힘들어했다.
조금씩 짐을 내려놓았다.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내려놓은 마음의 짐으로 나는 한결 여유로워졌다. 힘들 때는 아이에게 이해를 구했고, 아이는 엄마를 이해해 주었다. 이제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하며 미소 짓는다.
“환희야, 엄마를 이해해 주어서 고마워. 잘 자라 주어서 고마워.”
(Cover Image by Michael Fenton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