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교일기) 내가 엄마가 된다면 - 2편. 내려놓음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아이 삶의 기름진 토양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아이를 갖고 난 후부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막막 했기에 육아 관련 책도 찾아서 읽고,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들도 열심히 읽어보면서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 공부하고, 상상했다.
사람마다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다르겠지만, 내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들을 정리해갔다. 자연출산, 완전 모유수유, 천 기저귀 사용, 감정 코칭 대화법 등은 꼭 실천하고 싶은 육아 방식이었다. 그리고 아이에게 모범이 될 수 있고,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하여 항상 밝고, 긍정적으로 지내며, 이전의 나 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자 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이미 아이를 낳은 엄마들이 힘들어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가 정말 계획한대로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다. 잘 안될 것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이전까지 전혀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고, 사람마다 다 다르게 나타나는 일이라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그 때 히프노버딩 카페에 올라오는 엄마들의 글이 위로가 되었다. 자연출산을 다짐했지만 마지막에 상황이 안 좋아져 결국 제왕절개를 해야 했던 산모가 있었다. 그 산모는 마지막까지 진통을 견디며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제왕절개를 통해서라도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해 했다. 그녀에게는 제왕절개도 자연스러운 출산의 과정이 된 것이다. 그녀가 제왕절개를 했다고 해서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친구 중에 모유수유를 하고 싶었지만 젖이 잘 나오지 않아 결국 분유를 먹인 경우도 있었다. 모유를 먹이기 위해 이곳 저곳 많이 알아봤는데도 잘 되지 않았다. 분유를 먹이면서 친구는 아기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나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 엄마를 보며 아기도 이해해 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 친구가 모유수유를 못했다는 이유로 좋은 엄마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좋은 엄마였다. 아이를 사랑했고,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 이야기를 접하면서 나는 좋은 엄마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했다. ‘결과가 아닌, 어떠한 과정으로 아이를 키우느냐가 더 중요하다. 엄마가 어떤 마음을 먹고 있고, 아이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아이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이 방식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 생각에 갇혀 버리면 엄마도, 아이도 힘들어진다.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엄마는 없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랑에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좋은 엄마다.’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 하지만 때때로 최선이라는 기준이 애매해서 지칠 때가 있었다. 부족한 수면, 쌓여있는 집안일, 반복되는 일상에 아이까지 내 마음대로 따라와 주지 않을 때는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럼에도 내가 엄마니까 해야한다는 생각이 나를 압박했다. 각자의 일에 바빠 도와주지 못하는 가족들에게도 괜히 화가 났다. 행복한가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시원하게 답하지 못했다. 다 행복하자고 사는 일인데, 혼자 힘들다고 스트레스 받고, 우울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숨구멍을 만들었다.
엄마 노릇이 힘들 때면 ‘엄마’라는 나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작은 ‘일탈’들을 시도했다. 설거지해야 할 그릇들이 싱크대에 쌓여도 신경 쓰지 않았고, 청소가 제대로 안되어 먼지가 좀 쌓여도 그냥 놔 두었다. 밥은 외식으로 해결했다. 주말 하루 남편과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고, 친구를 만나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어떤 날에는 남편과 아이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루 종일 잠을 잔 날도 있었다. 그렇게 집안 일들을 묻어두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기분이 다시 괜찮아졌다. 그리고 여전히 잘 있는 가족들을 보면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나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엄마’로 돌아갔다.
가슴을 뻥 뚫리게 하는 숨구멍 같은 시간들은 나를 다시 행복한 엄마로 만들어주었다. 완벽하게 집안일을 잘하고, 아이를 잘 돌보는 것도 좋지만, 행복한 엄마가 되는 것이 더 좋은 엄마가 되는 길이라 생각했다. 내가 행복해지고 나서야, 가족들에게 더 사랑을 줄 수 있었으니까. 가끔은 그렇게 삶에서의 일탈이 약이 되었다.
삶을 뒤돌아보며 ‘나는 진정 누구를 위해 좋은 엄마가 되려고 했던 것일까’ 물어본다. 나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이를 위한 것이었는지.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학교 공부처럼 성적이 나오는 것도, 등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누구에게 흠 잡힐까 두려워서 하는 일도 아니고, 잘했다고 칭찬받기 위해 하는 일도 아니다. 엄마라서, 그냥 살아있는 동안 아이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마음껏 주고 싶어서, 그것 자체로 너무 행복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남들이 말하는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해도 괜찮다.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는 그저 아이가 행복하게 잘 자라기만을 바랄 뿐이다.
(Cover Image by Liv Bruce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