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기차여행과 라오스 입국
날이 밝자마자 버스를 타고 태국의 서울역이라고 할 수 있는 후알람퐁 역으로 이동했다. 종종 잊기 쉽지만 태국은 면적만도 남한의 5배 정도 되는 큰 나라고(그런데도 동남아에선 면적으로 인도네시아, 미얀마 다음으로 3등이다), 기차도 한번 탔다 하면 몇 시간은 기본이다. 그런 태국 국유철도의 주요 간선 4개의 기점인 역이다보니, 후알람퐁 역의 아침은 출근하는 인파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그 와중에 5시에 매표소가 열기를 기다려 우본 라차타니Ubon Ratchathani라는 라오스와의 국경 도시로 이동하는 표를 손짓 발짓으로 소통해서 구입하고 나니 맥이 탁 풀렸다.
후알람퐁 역에서 생전 처음으로 화장실을 돈을 내고 이용해본 듯하다. 2바트를 내고 화장실로 들어갔는데 화장실 세면대에서 씻는 사람이 천지. 우본 라차타니까지 혼자서 기차를 10시간을 타고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화장실에서 정말 몸에 있는 수분을 모두 짜내는 기분으로 일을 보았다. 사실 후알람퐁 역은 방콕부터 싱가폴까지 운행하는 오리엔탈 익스프레스 철도의 시발점으로 유명하고 이탈리안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의 아름다운 역사에다 무려 프랑크푸르트 암마인 역을 모방해서 지은 건축적으로도 아름다운 역이지만, 그때는 생존과 안전을 걱정하느라 기차역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이후에 많은 태국인들과 이야기하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라마 5세 - 출라롱꼰 왕. 영화 '왕과 나'에 나오는 왕세자를 생각하면 쉽다 - 는 태국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엄청난 왕이다. 물론 태국 형법에는 왕실과 그 구성원에 대해서 비판을 가할 경우 최고 15년의 징역형을, 심지어 외국인에게도 영구적 입국금지를 내릴 수 있는 왕실모독죄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여러가지 버전의 '왕과 나' 역시 왕실을 희화화하였다는 이유로 태국 내에서 상영이 금지된 영화다) 국민들의 왕에 대한 반응을 전적으로 믿기는 어렵다. 이미 수많은 언론인들이 왕실과 군부를 비판하다가 이 조항으로 셀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바 있기도 하고.
하지만 지금까지 경험했던 바로는 태국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은 군주정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어떤 나라에 비할 바가 없었고, 특히나 노예제를 폐지하고 영국과 프랑스 두 열강의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한 라마 5세, 출라롱꼰 왕에 대한 감정은 남다르다고 한다. 2017년 서거한 라마 9세 - 언젠가 라마 9세 이야기는 따로 다뤄볼 생각이다 - 역시 살아있는 부처로 불릴 정도로 신망이 높았지만, 지금까지 만난 태국 친구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왕을 꼽으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라마 5세를 고르곤 했다. 멀리 갈 것 없이 태국 최고의 대학이자 보수 엘리트 양성의 요람으로 불리는 출라롱꼰 대학 역시 라마 5세가 설립한 기관으로 그의 이름을 땄다.
서쪽의 인도와 미얀마가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동쪽의 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격변의 20세기 초, 태국이 독립을 유지하면서 심지어 그 와중에 근대화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은 왕가의 실리주의 외교 덕분이라고 한다. 흔히 대나무 외교bamboo diplomacy 라고 불리는 이 전략은 '상황에 따라 바람이 불면 유연하게 굽히는' 것을 모토로 하는데, 결과적으로 약간의 영토를 내어주는 정도의 대가를 치르며 독립을 유지해왔다. 그 전략이 캄보디아나 라오스의 입장에서는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뿐만 아니라 크메르루즈에 이르기까지 많은 역사적인 비극의 씨앗이 되지만서도 하여튼 태국은 역사상 한 번도 외세에 굽혀본 적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했던 시대적인 상황 때문일까, 태국의 아름다운 근대 건물들을 보면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활약이 매우 돋보인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접경 출신으로 코스모폴리탄의 전형이자 라마 5세의 애정을 듬뿍 받았던 건축가 Joachim Grassi가 있었고, Grassi의 사무실에서 일하면서 후알람퐁 역을 지은 Mario Tamagno와 Annibale Rigotti 역시 다양한 유럽 건축양식들을 태국에 도입하면서도 태국의 더운 기후와 미감에 맞는 적절한 균형을 만들어냈다고 일컬어진다. 수상버스를 타고 차오프라야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유러피안 스타일 건물들에는 거지반 이들 이탈리아 건축가들의 영향이 배어있다고 보면 맞을 거다.
다시, 철도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관광객들이 보통 숙소가 있는 카오산에서 파타야나 푸켓으로 이동할 때 철도를 이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넓은 국토와 고속화되지 않은 철도의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자동차나 미니버스가 훨씬 쾌적해서다. 그렇지만 최근 태국 정부가 고속철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고, 중국의 자본이 대거 투입된 북동부 1단계 고속철이 이미 착공되어 공사중이고 2023년에 첫 운행 예정이며, 2025년에는 노선이 라오스의 비엔티안과 중국 곤명까지 연결될 예정이라고. 한편 방콕과 치앙마이를 연결하는 고속철 노선은 일본의 기술과 재정지원을 받아 진행중이었는데,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가 아주 안 좋게 나온 까닭에 성사가 불확실하다고 한다.
여행자의 입장에서야 방콕에서 라오스 비엔티안 목전의 농카이 국경까지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고속철 건설이 반가워야 마땅하겠으나, 중진국 함정을 탈피하고 아세안 내부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애쓰느라 중국에 의존하게 된 태국 정부와 일대일로 계획의 일부로 '아세안을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삼으려는' 중국의 야망이 합쳐진 고속철 계획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씁쓸한 느낌도 든다. 고속철도의 속도나 부채/차관의 조건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국의 결정권이 커지고, 표준이 정립되지 않은 아세안 타 국가들의 철도에의 영향력 역시 커질 것이라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고(채현정).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태국의 모습들이 머지 않은 시일 내에 많이 바뀌게 될 모양이다.
여하간 10년 전에는 고속철 같은 것이라곤 없었던지라 우리나라로 치면 무궁화호 정도 되는 기차를 10시간을 타고 가야 겨우 라오스와의 국경에 도착할 수 있었고, 골골 졸면서 기차에 실려가는 도중에 기차 승무원이 크로아상이 담긴 종이곽 도시락과 커피를 주었던 기억도 난다. 외국인 이용객이 많지 않은 노선이어설까, 졸다 깨면 나를 구경하다 후다닥 도망가는 어린이들도 더러 보였고.
여기서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일이 터졌었지. 종점인 우본 라차타니에서 기차를 내려서 승합차에 실려 태국 동부 국경에 도착했고, 걸어서 뿌듯하게 국경을 넘은 뒤 나를 도시로 데려다 줄 툭툭을 찾았지만 해진 밤중에 그런 것이 있을리가 없다. 멍청하기도 하지, 총멕Chong Mek 국경까지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 국경에서부터 라오스 남부의 거점도시 팍세Pakse까지 가는 방법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거다. 낮 시간에 국경을 넘었다면 버스에 탄 채로 국경까지 데려다주고, 국경 검문심사를 통과해 팍세까지 데려다주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었을텐데... 하여튼 잊지 말자, 국경은 해 떠 있을 때만 넘는거다. 특히나 말 안통하는 나라에선.
외진 국경 검문소 불빛 옆에서 망연자실해 서 있자니, 나같은 얼뜨기 여행자를 노리는 택시 운전수가 와서 100불이면 팍세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세상에. 수중에 남은 돈이 62만원인데 그 중에 100불이라니. 노숙을 시도해볼만한 지붕 비슷한 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달리 수가 없어 100불을 주고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나는 맘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앞으로 떠날 그 어떤 여행에서라도 교통수단과 시간만큼은 꼼꼼히 챙겨야겠다고. 웃기게도 그 운전기사는 친절하게 목적지를 물었고, 내가 돈이 없다며 제일 저렴한 호스텔에 데려다달라고 하니까 정말 싸고 좋은 호스텔에 데려다줬다.
Bibliography
채현정, 태국의 고속철도 건설: 이동과 연결의 인프라 정치학, Asian Regional Review Diverse Asia Vol.2. No.3 (2019) http://diverseasia.snu.ac.kr/wp-content/uploads/2019/10/%ED%95%9C-%EC%95%84%ED%83%9C%EA%B5%AD%EC%9D%98-%EA%B3%A0%EC%86%8D%EC%B2%A0%EB%8F%84-%EA%B1%B4%EC%84%A4.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