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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지우 Oct 09. 2019

보여줄 수 있는 상처

트레이시 에민, <나의 침대>

트레이시 에민 , <My bed> , 1998


선물 받았던 목도리 말라빠진 어깨에 두르고
늦은 밤 내내 못 자고 술이나 마시며 운 게 아니고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 


10cm의 1집 타이틀곡 '그게 아니고'의 일부분이다. 헤어진 연인이 그리워서 우는게 아니라 보일러가 고장나서 운다고 둘러대는 찌질함이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처의 원인을 자신이 아니라 제 3자의 탓으로 돌린다. 상처를 받은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직면하는 것은 세상 무엇보다 두렵고 사랑의 실패는 자존감을 저 깊은 바닥까지 추락시키기 때문이다. 애써 합리화시킨 거짓말은 이미 상처로 너덜해진 마음을 다시금 들쑤시고야 만다. 우리는 변명거리를 늘어놓을수록 구차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다. 변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패배했음을 인정하는 반증이므로.

그럼에도 자신의 어두운 상처를 어떤 변명 없이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가가 있다. 텐트 속 자신과 함께 잤던 102명의 사람들과 낙태한 아기의 이름을 새긴 <나와 함께 잤던 모든 사람들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자신이 실제 쓰던 침대를 고스란히 옮겨온 <나의 침대 My bed>로 현대미술계에 충격을 준 트레이시 에민(1963~). 성폭행을 당한 어린시절과 마약중독, 낙태와 같이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숨기고만 싶을 이야기를 가감없이 작품으로 표현했다. <나의 침대>는 그녀가 자살충동을 느꼈던 당시의 상황을 잘 보여주며, 쓰다만 콘돔, 널브러진 술병, 속옷은 얼굴한번 본 적 없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침대만큼 한 사람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물이 또 있을까. 관객은 이토록 평범한 침대에서 한 사람의 속마음을, 뼈아픈 외로움을, 뒤틀린 욕망을 발견한다.    

                

트레이시 에민, Everyone i have ever slept with


그녀는 구질구질하고 때론 천박해보이기까지 하는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구차한 변명으로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포장하지 않는다. 그저 보여주고, 느끼게 할 뿐이다. 평범한 것을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이 예술가의 의무라고 누군가는 말하지만, 그 아름다움에 진실성이 없다면 그것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적어도 그녀는 예술 앞에 솔직했으며, 자신의 모든것을 보여주었고, 그 지점에서 나아가 누군가는 자신의 상처를 되돌아보게 된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타인에게 자신을 공감시키는데엔 커다란 무언가가 필요한게 아니다. 그저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드러내는 것으로 충분하다. 참으로 두렵고 부끄러운 일이지만, 드러내놓고 나면 예상외로 아픔이 무겁지 않았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화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더이상 상처가 아니다." 라는 말이 있다. 타인의 깊은 이해를 얻은 아픔은 더 이상 개별적인 상처로 남지 않는다. 초라한 자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궁극적으로 그가 원했던것은 무엇일까. 그저 현대 미술계를 향한 일시적인 조롱이나 시각적 충격만은 아닐것이다. 그 이면엔 이토록 지저분하고 용납하기 힘든 자신의 일생을 단 한사람만이라도 인정해주고, 받아들여 주길 바라는 한 예술가의 처절한 염원이 깃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글 | 유지우 

*2015년 디아티스트매거진에 기고한 글을 일부 수정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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