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바르트 뭉크, 두 사람, 1899
파도가 치는 도시에 살았다. 어릴적부터 바람과 바다를 싫어한 그녀는, 그 도시의 대부분을 미워하며 시간을 보냈다. 파도는 즉흥적이고 내일을 몰랐다. 매사 조심성많고 신중한 기질의 그녀는 그 무자비와 대책없음이 갈수록 싫었다. 파도를 노려보고 있으면 망망한 세상의 끝에 홀로 버려진 기분이었다. 압도되었고 무기력했다.
그 남자는 파도의 도시에서 나고 자랐다. 첫인상은 섬세했으나 알면 알수록 충동적인 사람이었다. 눈앞에 매혹적인 무언가가 나타나면 앞뒤 가리지 않고 쉽게 몸을 던졌다. 삶의 권태를 매혹으로 이겨내는듯 보였다. 어린아이 같았고 죄책감이 희소한 그를 볼 때마다 굽이치는 파도가 떠올랐으나 그와의 관계는 물장구치는 연못에 불과했다. 첨벙첨벙 얕은 경계를 살며시 오고가다 어느 한순간 무기력한 그녀를 파도처럼 집어삼켰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새 잠겨있었다.
겉으론 애써 아니라고 부정했지만 사실 그의 손을 잡고 대책없이 파도에 휩쓸려버리고 싶었다. 어떤 말로도 용납할 수 없는 사이에 지나온 모든 노력과 일상의 궤적이 무너져내리고, 두번 다시 일어설 수 없더라도, 사람들의 멸시에 손가락질 받아도 상관없다고 중얼거렸다. 그마저도 불가능하다면 그냥 독을 마시고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세 차례 파도가 쳤다.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밀물이 지나고 썰물이 세상의 모든것을 적시고 빠져나갔다. 그녀는 속절없이 무너져 연거푸 매캐한 기침을 뱉었다. 파도가 지나간 자리의 풍경이 참혹해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쓴 웃음을 삼키며 일을 하고, 밥을 먹고, 감당할 수 없을 때까지 집이 더러워진 후에야 간신히 몸을 일으켜 청소를 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떠날 사람에게 비장한 용기를 다짐했던 스스로가 우스워서 때론 피식 웃었다.
폐허가 된 사랑의 자리를 바라보며 가끔 입으로 파도 소리를 낸다.
‘쏴아아...’
무자비한 증오를 견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제 자신을 파도 속에 던져버리고 싶다면, 이 마음을 뭐라고 명명하면 좋을까. 그녀는 여기에 걸맞는 이름을 아직 찾지 못했다. 모든게 지나간 자리에 서서 말없이 철썩이는 파도를 노려보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