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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Feb 06. 2016

당구 이야기

당구 치는 이야기는 아니다

명절 전 새로 합류한 인턴 직원 및 모비인사이드 팀원들과 스타벅스 신사점에서 커피타임을 가졌다. 모비인사이드에 쓸 글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당구 이야기가 불쑥 튀어나왔다.


당구. 2000년대에 대학을 다닌 남학생들에게 대학 생활을 상징하는 키워드를 말해달라고 하면 망설이지 않고 두 글자를 이야기할 것이다.


나도 그럴 뻔했다. 새내기가 갓 됐을 때 교회 근처 당구장에서 처음으로 큐대를 잡아봤다. 저질 큐걸이로 인해 당시 150정도 친다던 교회 형은 나에게 '넌 당구치면 안되겠다'고 면박을 줬다. 1학년을 마치고는 당구장에 간 기억이 없는 듯 하다. 나에게는 다른 청춘들과는 달리 당구에 대한 '철학'이 없었기 때문이다. 30당구를 벗어날 수 없던 건 당연했다.


그러고는 나와 당구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만 같았다.


6년쯤 흐른 2010년.


마지막 학기만을 남겨뒀던 나는 과감히 휴학계를 내고 모 경제지에 인턴 기자로 들어갔다. 당시 나는 '기자를 하자'는 결심을 하고 이곳저곳에 원서를 냈다. 긴 대학생활에서 그나마 하고 싶었던 일이 기자였기 때문이었다. 인턴으로 들어갔던 그 직장은 두 번째 자소서에 대한 결실이었다. 운이 좋았다.


꿈은 한 달 만에 박살났다.


나는 초등학생 수준의 문장도 구현하지 못하는 멍청이 취급을 당하며, 자발적 내쫓김을 당했다. 팀장은 내가 회사를 나가기를 원했으나, 나를 뽑았던 부국장은 생각이 달랐다. "두 달만 더 해보자"며 설득했던 부국장은 내가 회사를 나가던 그날 데스크 회의실로 데려가, 그곳에 적힌 사자성어를 보여줬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그러고는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유군, 기자는 당구광과 비슷해. 당구에 푹 빠진 친구들은 누워서 하늘을 보면 당구다이가 보인다지? 자나깨나 당구 생각만을 한다고들 해. 굳이 당구장을 가지 않더라도 공이 가는 길을 언제나 보고 있다는 것이야. 기자도 마찬가지야. 지금 기자를 그만두지만, 어디에 가서든 내가 말한 자세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   


이후 어찌어찌해 2년 만에 다시금 기자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아마, 당시 최종 면접에서 나왔던 질문이 '좌우명이 무엇인가?'였던 것 같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불광불급'이라고 답했다.


갓 2년차 병아리 기자였던 2013년 어느 날. '실리콘밸리 협상왕'이라고 불리던 유기돈 미식축구 샌프란시스코 49ers 구단주의 인터뷰를 읽던 중 단 한 마디를 보고는 온 몸에 전율이 흘렀던 기억이 생생하다.


유기돈 49ers 구단주
토요일 아침에 잠에서 깨면 월요일 출근 날부터 기다려져요, 매우, 매우. 진짜 매우 열심히 일하고 그걸 즐겨요.


유 구단주의 두 마디 답변을 보고, 잊어버렸던 3년 전의 대화가 떠올랐다. 선배들에게 칭찬받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막내 유재석에서 벗어나 '하고 싶은 것을 하자'는 결심을 내리게 된 계기였다.


이후 나는 IT 분야에 집중을 했고, 지금도 그 일을 하고 있다. 깊이 있는 글을 쓴다고는 자부하지 못하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는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날 이후 나에게 휴일과 평일의 경계, 출퇴근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언제나 쓰고자 하며,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어떤 글을 써야할까를 늘 고민하고 있다. 가끔은 새벽에 깨어나 써야할 글에 대한 메모를 하고 다시금 잠을 청할 때도 있다. 5년이 지나서야 불광불급을 실천하게 됐고, 이제는 그 좋아하는 것을 위해 제도권을 빠져나와 나름의 모험(?)을 하고 있다. 끝내 미쳤고, 그래서 미칠 수 있게 됐다.


다시 스타벅스 신사점. 이날 모비인사이드 팀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좋아하는 일이란 당구광과 같다'는 말을 불쑥 꺼냈다. 좋아하는 일이라면 매순간 머리 속에서 당구다이와 공의 이동 경로를 그리듯, 계속해서 쉬지 않고 그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찾지 못한다면, 시간 낭비와 다를 게 없기 때문에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6년 전 그 부국장께서 나에게 얘기해줬던 뉘앙스 그대로를 전달했다.


그분의 자극으로 인해 안정주의자였던 나는 지난 6년 간 180도로 변한 삶을 살고 있다. 첫 회사에서 내쫓기고 이듬 해 세상을 떠난 그가 못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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