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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재석 Apr 05. 2017

모든 게 사드 때문일까?

철퇴맞은(?) 한국 업체들… 이면의 인과관계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인 ‘사드(Terminal High Altitude Area Defense; THAAD)’가 최근 반년 한국 기업들을 들쑤시고 있습니다. 특히, 국내에서는 면세점, 여행, 유통, 화장품, 자동차, 엔터테인먼트 등등 중국인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B2C 업종에 있는 기업 및 임직원들이 난관에 처했다는 보도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사드로 인해 직격탄을 맞은 업종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면세점과 여행 업체들이 대표적이죠.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 달 15일부터 중국 단체 관광객이 끊겼습니다. 중국 당국이 3월 2일 한국여행상품을 판매하는 자국 여행사에 15일까지 모든 상품 판매와 홍보를 중단하라는 조치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텅 빈 청계천. 확실히 중국 관광객이 보이질 않는다. 중국어가 들려오면 대만 관광객들이다.
국내 1위 롯데면세점의 지난달 15일부터 31일까지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가량 떨어졌다. 매출의 70~80%를 차지하던 중국인 관광객들이 싹 빠졌기 때문이다. 중국인 관광객 매출만 따로 살펴보면 무려 40% 이상 감소했다고 롯데면세점은 전했다. 앞서 롯데면세점의 주말 매출은 올해 들어 꾸준히 전년 대비 20% 이상 성장해왔다. 다른 면세점들 사정도 마찬가지다. 전년 동기 대비 지난달 15~31일 신라면세점 매출은 20% 넘게 감소했다. 신세계면세점의 3월 일평균 매출은 전달보다 30~35% 줄었다. 두타면세점에선 지난달 하순 매출이 상순보다 30% 넘게 떨어졌다.


하지만 중국에 있는 모든 기업이 사드로 인해 어려움에 처했다고 평가하는 것은 침소봉대란 생각도 듭니다. 우선, 중국에서 퇴출되다시피 한 롯데의 모습을 보겠습니다. 문을 닫은 롯데마트는 현재 87곳(강제 영업정지 75곳, 자체 휴업 12곳)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롯데마트가 사드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는 승승장구했을까요? 사드 문제가 본격화되기 전인 2016년 5월 기사를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의 간판 유통업체인 롯데마트와 이마트가 중국에서 지난해 나란히 역성장하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연쇄경영협회(CCFA)가 지난 3일 발표한 ‘2015년 중국 프랜차이즈 100강(强)’ 에 따르면 롯데마트는 지난해 중국 매출이 5.6% 줄어든 180억위안(약 3조2400억원)으로 추정됐다. 작년말 기준 중국 점포수도 120개로 3개 감소했다. — 롯데마트・이마트 중국서 동반 역성장…지난해 매출과 점포 모두 줄어(조선비즈)


위의 기사에서 활용한 통계는 2015년 자료인데요. 롯데마트와 이마트는 중국에 진입한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의 마트가 왜 중국에서 진입에 어려움을 겪었는지는 퍼틸레인의 김두일 고문님이 지난 번 페이스북에서 잘 지적해주셨기에 아래 임베드한 링크로 설명을 대신합니다.



화장품을 볼까요. 한국 화장품이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렸던 시절이 있습니다. 국내에서 저가로 취급받던 제품군들이 따이고우를 통해 거의 두세배 가격으로 중국 시장을 거머쥐었던 때였죠. 2014년 기준 따이고우를 통한 화장품 역직구 매출액이 4000억원에 이르렀습니다. 오죽하면 중국 세관 당국이 ‘따이고우는 밀수’로 규정해 때려잡으려고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많았단 방증이었죠.


하지만 한국 화장품에 대한 수요가 예전만 같지 않습니다. 업계에 물어보니 대표적인 이유가 중국인들의 경제력 향상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화장품의 최고급은 프랑스제입니다. 과거에는 한국 화장품을 사용한 뒤 프랑스제로 가는 추세였다면, 이제는 곧바로 프랑스 화장품을 사용하게 되면서 한국 제품의 사용 비중이 줄어가고 있다는 것이죠.

         

자동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현대자동차 베이징 현지법인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3월 한달동안 현대자동차의 중국 시장 판매량은 6만대로 잠정집계가 됐는데요. 전년대비 40%가 감소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대차의 중국 시장에서 침체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2016년 2월 기사를 한 번 보겠습니다.


베이징현대의 지난 1월 중국내 승용차 판매량 순위가 9위로 밀린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처음으로 토종 자동차인 창안(長安)자동차에 추월 당해 6위로 하락한데 이은 것이다. 베이징현대는 전년 동월 대비 27.2% 감소한 7만5200대 판매에 그쳐 9위로 떨어졌다. 토종자동차인 창안(13만3700대)과 창청(長城, 8만200대)은 물론 일본 계 합작사인 둥펑닛산(8만1500대)에도 잇따라 역전 당했다. — 현대車 중국 1월 승용차 판매량 순위 9위로 추락(조선비즈)


현대차가 이미 2016년에도 중국에서 그다지 선방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는데요. 그 이유가 사드 같은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되기도 했지만, 문제는 중국 소비자들의 취향 변화 및 중국 자동차 기업의 성장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한국차 브랜드 역량에서 말하자면 일본이나 독일 자동차 보다 못한 것은 사실이다. 심지어 스타일면에서 본다면 프랑스 자동차 브랜드가 더 앞선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던 가성비였으나, 최근 중국산 브랜드가 늘어남에 따라 훨씬 싼 가격과 동급 품질을 강조하기 때문에 중국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한국 자동차의 가성비는 더 이상 메리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중국 시장에서 한국 자동차의 추락, 이는 이미 예고된 일?(다키)


마지막으로 이커머스 영역을 살펴보겠습니다. 최근에 알리바바의 물류 자회사인 차이냐오가 크로스보더 영역에서 한국 제품을 차단했다는 오보 아닌 오보가 퍼져나왔는데요. 실상은 이랬습니다.


“차이냐오가 C2C배송과 UPU배송을 전면 중단했다. C2C배송은 중국 고객의 개인 신분증 번호로 통관을 진행하면서 소액의 경우 세금 없이 통관해주는 물류방식이다. UPU배송은 주로 싱가포르 국제특송(EMS)을 통해 중국으로 들어온다”


이는 ‘콰징(跨境)’으로 대표되는 중국의 크로스보더 정책과 연관지어 생각해야 합니다. 콰징이란 키워드가 등장한 건 2012–2013년입니다. 그 전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인들이 해외 쇼핑몰에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루트가 차단돼 있었기에, 주로 사람을 시켜 제품을 구매했는데요.


시장과 고객의 요구로 인해 해외 쇼핑몰에서 직접 물건을 살 수 있는 B2C영역이 열리게 됩니다. 하지만 법제화가 되지 않은 영역이기에 중국 정부는 두 가지의 방식으로 압축해 규제화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보세구역의 활성화고, 둘째는 B2C 통관의 활성화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배너에 담겨 있습니다.



한국 제품들이 통관에서 거절당하고 있다는 사례들이 참 많이 보도됐는데요. 이면을 살펴보면 C2C나 항공 EMS를 통한 배송이 막힌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따이고우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콰징의 영역은 위에서 언급했듯 B2C 물류를 원칙으로 합니다. 그간 법의 사각지대에서 C2C나 EMS가 저렴한 비용을 통해 유통됐습니다. 즉, 물건을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보내주는 프로세스가 아닌, 한국에 있는 누군가가 중국에 있는 누군가에게 제품을 ‘보내주는’ 프로세스였다는 것이죠. 그 부분이 콰징의 정의에 위배되는 부분이기에 원천적 차단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요즘 중국에서 해외 제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모구지에나 샤오홍슈 같은 플랫폼들이 내세우는 슬로건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한국 것 말고) 이제는 값싸고 질좋은 중국 제품을 사자’


중국 기업들은 ‘사드’라는 정치적 이슈에서 비즈니스적인 기회를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요. 지금 이 시간에도 중국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이 있음에도 문제가 발생할 때면 모든 원인을 사드에서만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기업들이 중국 시장서 고전하고 있는 핵심 원인은 중국인 소비자를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의 마케팅과 제품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측면이 큽니다. 그 소비자들을 잡는다면 한국이든 일본이든 상관치 않고 있는 것이 중국 소비자의 특징이죠(롯데는 예외겠지만).


현 상황에서는 작은 규모로 빠르게 타깃화된 소비자들에게 접근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이미 중국 기업들은 죄다 수직화된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늦어도 한참 늦은 겁니다.


결론적으로 한국 기업의 입장에서 사드의 악영향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사업권이 없어진 피해 기업들도 많고요. 하지만 사드만이 문제는 아닙니다. 하나의 ‘계기’는 될 수 있겠죠. 이를 실패의 만능키로 여기는 순간 마음은 편해질 수 있을 겁니다. 허나 대안을 찾는 길마저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닌가 우려가 듭니다.


ps. 엔터테인먼트나 게임 분야는 제가 문외한이라 논하기 어려워 생략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이신 분들이 그간 논평을 많이 하셨으므로, 그 글들을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사드의 영향이 있긴 하지만 그 때문에 한국의 콘텐츠들이 차단된 건 아니라는 내용이 골자인데요.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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