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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정 Oct 28. 2022

셋째지만, 너도 내 우주

잡월드에서 찾은 내 정체성

8살이 된 셋째 아이와 나, 둘이 뭘 해본 적이 없었다.

뭐가 됐든 간에 '오빠랑 해', '아빠랑 해'가 내가 셋째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큰아이가  중3이라 저는 중3 엄마의 정체성이에요. 둘째 셋째는 큰아이 하는 대로 잘 따라오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체력적으로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쉽지 않아서요.


지난 십여 년 동안 우리 집을 지키고 있던 작은 블록들, 종이인형들, 자석교구들은 죄 없이 내 시야에 들어올 때마다 몹쓸 것들이 되어 내 신경을 건든다. 딱 큰아이만큼 나이 먹은 교구들, 장난감들. 큰아이와 8살 터울이 나는 셋째 아이를 위해 새로 장만한 새 장난감은 거의 없다. 언제까지 이런 것들에 치어 살아야 하지. 나도 좀 깨끗한  공간에서 살고 싶었다.


그 누구의 의사도 묻지 않고 시간에 틈이 생길 때마다 고놈들을 하나씩 갖다 버렸다. 그래도 집안이 깨끗해지지 않았던 건 결국 내 지저분한 성격 때문이라는 걸 알았음에도 계속 갖다 버렸다. 없으면 없는 대로 또 놀게 되어있어. 전에 어서 보니까 책 말고는 장난감이라고 할 게 하나도 없게 해 놓는 게 오히려 애들을 위해 좋다더라.

"이거 언니 가지고 놀던 거라 다 망가졌고 오래됐어. 새 거? 그거 얼마나 갖고 놀건? 금방 또 질려서 짐만 만들지 말고 좀 참아."


셋째는 그런 나에게 언제나 정면승부를 건다.

"엄마. 누구네 집에 가니 에어바운스가 있더라."

"그래? 좋겠네. 근데 우리 집에 그건 너무 크다."


"엄마. 누구네는 방이 너무 이쁘고 없는 인형이 없더라."

"그래? 엄마가 너 방 꾸며줬는데 네가 혼자 자기 싫대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그리고 너도 인형 짱 많거든"


"엄마. 누구네 집에는 슬라임이 얼마나 많은지 진짜 좋겠더라."

"으.. 엄만 정말 그건 싫어. 왜 그런 걸 만드는 거지?"


"엄마. 누구는 스마트폰인데 왜 나는 폴더폰인 거야?"

"이놈! 5학년 때 바꿔준댔지. 언니, 오빠도 다 그 폰 썼었잖아. 스마트폰 벌써 사달라고 하면 5학년 돼도 없어!"


큰애가 곱게 쓰던 폴더폰은  남자아이지만 더 곱게쓴 오빠를 거쳐 셋째 차례가 되었다. 둘째 때까지만 해도 1학년이 스마트폰 가지고 다니면 관리 안 하는 엄마들이 애들 성화에 못 이겨 손에 쥐어준 것 같았기에 오히려 폴더폰이 자랑스러웠는데 지금 1학년은 같은 반에 우리 딸 한 명만 그 골동품을 쓰나 보다.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  나름 교육자였거든!


어찌 됐건 셋째의 '물욕'은 내 기준에서는 도가 지나쳤다. 이 아이가 해대는 말들은 수더분하고 책 말고는 관심 없던 큰아이를 키울 때는 단 한 번도  못 들어본  말들이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어쩔 땐 응해주고 어쩔 땐 화를 내며 또 생각한다. 넌 대체 누굴 닮은 거니. 우리 집에 왜 왔니 왜 왔니 왜 왔니.


아이의 대부분의 요구는 욕심 많은 아이의 투정이라 여겼고 그것에 불만을 표하는 것은 버릇없는 행동이었다.

요구를 들어주는 것보다 통제하고 굴복시키는 것이 내가 더 편하다. 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제 정체성은 중3 엄마라서요.


멀미가 너무 심했던 엄마 아빠를 닮은(누구를 닮았는지 명백하네) 셋째는 학교 들어가서 처음으로  가는 현장체험학습에서 멀미를 할까 봐 겁이 잔뜩 났다. 멀미의 고통을 알기에 한 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현체를 강요할 수 없었다. 1학년 현장체험학습을 그렇게 먼 곳으로 잡은 학교에 원망의 마음이 든다. 까짓 거. 소풍은 좀 더 커서 가도 되지 뭐.

그래도 못내 안쓰럽다. 친구들은 다 가서 맛있는 도시락도 먹고 신날 텐데. 괜히 친한 단짝 친구를 빼앗길까 봐도 걱정이다. 멀미 때문에 못 간 소풍에 우울하면 안 되는데. 안 되겠다. 내일은 이 엄마가 책임지지. 우리 내일 뭐할까.


 큰애 때는 몇 번씩, 작은아이 때도 두 번은 갔던 직업체험장이 떠오른다. 큰아이 작은아이 모두 학교 들어가기 전에 갔었는데. 단 한 번도 둘이 외출한 적이 없던 나는 아침부터 괜히 설렌다. 이렇게 된 거 본격적으로 김밥이라도 쌀걸 그랬나. 멀미가 아니었음 셋째와 둘이 여길 올 날이 왔을까. 이제야 미안함이 밀려온다.


올 때마다 체험부스별 시간 확인, 빈자리 확인하느라 뛰어다녔었는데 평일 낮에 오니 한가하고 좋다.


아이가 체험하러 들어가 있는 동안 생각한다.

질투도 많고 욕심도 많은 셋째의 투정들은 어쩌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오롯이 독차지해 보지 못한 엄마의 사랑에 대한 갈구였을 텐데. 둘이 나오니 이렇게 평안한 표정으로 행복해하는 걸 보니 그저 온전한 사랑이 필요했던 건가.


내가 낳아 기르고 있는 이 아이를 부족한 체력과 나 편한 대로의 정체성을 핑계로 뒷전으로 미루는 건 이제 하지 말아야지. 저 나이 때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더 느끼게 해 줘야지. 이렇게 나랑 둘이 자주 나와야지.


왠지 아이와 나오니 이렇게 행복한 게 내 정체성은 어쩌면 8살 아이 엄마인가 보다.

미안함을 덜고자 다음 체험부스의 빈자리를 매의 눈으로 스캔한다.


"뛰어! 5분 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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