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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월 Aug 19. 2019

금융 위기설에 대해

최근 주변에서 경기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어떤 이들은 당장 우리 경제가 위기라고 말한다. 미중 무역 갈등에 한일 무역 분쟁까지 겹쳤으니 일견 틀린 소리는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틈을 타서 연내 우리나라에 IMF 같은 외환위기가 재발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어떤 이들은 금융위기가 임박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쯤 되면 저의가 의심되는 거짓 정보 단계로 넘어가는 수준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 말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는 자기 집값 혹은 주식 가격이 하락하는 걸 국가 금융위기라고 간주하는 매우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난 이번 한일 무역 분쟁으로 알게 된 사실 중에 놀란 것이 하나 있다. 지난해에 우리나라 사람들 714만 명이 일본을 여행했다고 한다. 평소 주변에 일본으로 놀러 가는 사람이 많다고는 느꼈지만 엄청난 숫자다. 더 나아가 작년 우리나라 전체 해외 여행객 수는 2,870만 명이라고 한다. 인구수의 50% 이상이 해외를 다녀왔다는 이야기다. 9년 연속 신기록 경신 중이다. 이는 우리보다 인구가 2배 이상 많은 일본인 작년 출국자 수 1,895만 명보다도 1,000만 명이나 많은 숫자다. 놀라운 수치다. 이런 해외여행 열풍에도 불구하고 다들 국내 경기가 나빠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으니 뭔가 이상한 노릇이다.

우리나라 경제 건전성에 대해서는 잠시만 인터넷을 검색해도 명확해진다. 2019년 3월 말 우리나라 외환 보유고는 4,052억 달러다. 세계 8위 수준이다. IMF 직전 외환 보유액 204억 달러 대비 20배에 해당한다. 당시 400%가 넘던 기업 부채 규모는 이제 100% 전후에서 관리되고 있다. 작년 말 현재 상장 기업 평균 부채 비율은 104%였다. 국가 부채 관리는 더욱 양호하다. 현재 GDP 대비 국가 부채 수준은 38%이다. OECD 최고 수준이다. 한눈에 보아도 IMF 외환위기 재발 주장은 터무니없는 괴변이다. 참고로 우리에게 무역 분쟁을 도발한 일본 국가 부채 수준은 GDP 대비 260%이다. 일본은 매년 국가 예산의 23% 이상을 늘어만 가는 국가 부채 원리금 상환에 쓰고 있다. 이 때문에 재정이 늘 부족해 금년 10월 소비세 인상까지 예고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엄청난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시름시름 병들어 가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일본이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1,500조가 넘는 가계 부채 규모는 우려의 대상이다. 집값이 급격히 하락한다면 개인 손실이 커질 위험은 크다. 그러나 개인 대출의 경우에도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이후 매우 엄격해진 금융 기관의 여신 심사와 위험 관리 기준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 부실로 전이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손실이 발생해도 개개인 차원에서 정리될 것이다. 국내 요인만으로 초래될 금융 위기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게 보면 경제 불안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불안의 실체는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급격한 외환 위기나 금융 위기가 아니다. 이는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인해 촉발된 전 세계 경기의 장기 침체일 가능성이 크다. 자유 무역을 전제로 구축된 세계 경제 시스템이 주요국들의 보복적 관세 부과로 인해 소비가 둔화되고 교역이 감소하면서 공급 과잉 상태에 빠져 들고 있다. 이는 최근 각국의 금리 인하와 양적 완화 재개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인 무역 분쟁과 디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에 4차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인해 기존 산업의 도태 현상까지 맞물리면서 경제 불안의 양상이 매우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는 어쩔 수 없이 세계가 장기간 함께 겪어 내야 할 역경이다.

그런 점에서 오히려 나는 이번 한일 무역 분쟁을 국운 융성의 천재일우 기회라고 생각한다. 앞이 안 보이는 혼란한 시기에 탈 일본이라는 구체적인 산업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산업 생태계 쇄신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더 나아가 극일이라는 목표 하에 미래 4차 산업 시대 국가 경쟁력 제고를 위한 국민적 동의와 지지를 모았다.  세월이 지나고 언젠가 어쩌면 오히려 아베한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국가는 우환 속에 살고 안락 속에 죽는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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