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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02. 2020

돌로미티, 빠쏘 디 라바제 고갯길

#4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을까..?!!


그의 손바닥 위에서 돌로미티 지도가 나침반처럼 빙그르르 돌고 또 돌았다. 내게 보다 더 세심한 설명을 하기 위해 몸을 비틀어 가며 휴대폰을 돌려가며 열심히 설명을 해 준 것이다. 나는 곧 그의 설명 전부를 잘 이해하게 됐다. 그러니까 우리가 돌로미티에서 첫날밤을 샌 장소 혹은 이탈리아인을 만난 장소 근처에 뜨레 치메가 위치해 있었으나 곧바로 이동할 수 있는 길은 없었으므로, 그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빙 둘러가면 목적지에 잘 도착할 것이라는 것. 룰루랄라.. ♬
우리는 즉시 애마를 몰고 하산길에 올라 그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운전을 시작했다. 수십 미터 크기의 침엽수 숲길은 꼬불꼬불하게 이어졌고, 산길을 다 내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환상적인 물빛을 한 호수가 눈 앞에 나타났다. 그 호수의 이름이 란드로(Lago di Landro)라는 것을 안 것은 시간이 꽤 지난 후였다. 



   지난 여정 아는 길을 물었더니 생긴 황당한 일 편에 이렇게 끼적거렸다. 돌로미티에서 겪은 황당한 일은 곧바로 반전을 일으키며 본격적인 돌로미티 맛보기에 돌입했다. 표지 사진 맨 아래 중간쯤 도로변에 주차해 둔 차량이 우리의 애마 치뜨로엥(Citroën)이며,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이 하니의 모습이다. 지난 8월 9일 오후 7시 25분경에 촬영된 사진이다. 우리는 어느 이탈리아인의 매우 친절한 길 안내에 힘입어 최초의 목적지를 곁에 두고 점점 더 멀어지며, 기어코 돌로미티 북동쪽에서 북서쪽으로 전혀 원치 않았던 공간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구글 지도에 표시된 이동경로를 참조하면 꼬르띠나 담뻬쬬 곁 지근거리에 뜨레치메가 위치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빠쏘 디 라바제로 공간이동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시행착오는 돌로미티를 보다 더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촉매제로 작용했다. 만약 우리가 꼬르띠나 담뻬쬬(Corotina d'Ampezzo)에서 곧바로 뜨레치메(Tre Cime)로 이동했다면 돌로미티 북서쪽에 위치한 명소 대부분은 생략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우리가 꼬르띠나 담뻬쬬를 출발해 빠쏘 디 라바제(Passo di Lavazè)에 도착한 직후부터 돌로미티를 먼 데서부터 차근히 다가가며 야금야금 맛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돌로미티의 북서쪽 빠쏘 디 라바제(Passo di Lavazè) 정상의 풍경




빠쏘 디 라바제 정상에서 만난 어느 트레킹족.. 돌로미티는 여행자의 천국이자 트래킹족의 천국이다.



시원한 풍경이 펼쳐진 곳은 빠쏘 디 라바제(Passo di Lavazè) 정상의 모습이다. 이탈리아어로 빠소(Passo)란 큰 산 위를 넘어가는 고갯길이나 재를 가리킨다. 따라서 라바제 고갯길 혹은 재라고 생각하면 옳을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빠소는 돌로미티 전역에 거미줄처럼 엉켜있었으며 마치 용틀임을 연상케 하고 있었다. 참 특별한 경험이자 자동차 드리이브를 만끽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길이었다. 




빠쏘 디 라바제에 여장을 풀어놓고 주변을 둘러보다




관련 자료를 뒤져보니 빠쏘 디 라바제는 단순히 봘데가( la Val d'Ega in provincia di Bolzano)로부터 620번 국도 봘레 디 퓌엠메(comunicazione la Valle di Fiemme)로 이어주는 도로 역할뿐만 아니라, 겨울에는 80킬로미터에 달하는 슬로프를 자랑하며 동계 스포츠 중 가장 유명한 크로스컨트리 스키의 메카로 자리 잡은 곳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8월의 빠쏘 디 라바제는 하얀 눈을 훌훌 다 털어버리고 푸른 하늘과 우뚝 솟은 침엽수와 갖가지 야생화를 천지에 흩뿌려 놓고, 그 사이로 옥수를 쉼 없이 졸졸 거리며 흘려보내고 있었다. 우리가 꼬르띠나 담뻬쬬로부터 이곳까지 이동할 때는 고속도로를 이용했는데 위 구글 지도를 참고하면 두 경로 중에 북쪽의 경로를 따라 볼싸노(Bolzano)까지 이동한 것이다. 



고속도로는 돌로미티의 계곡 깊숙이 흐르는 강을 따라 길게 이어졌으며 볼싸노까지 달리는 동안 한시라도 창밖의 풍경으로부터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이 길게 이어졌다. 우리가 마침내 볼싸노 톨게이트에 도착하여 요즘을 지불하며 볼싸노 지방에서 가장 유명한 명소를 소개 달라고 창구의 담당자에게 물었더니 그는 대뜸 "봘 데가(Val d'Ega) 요"라며 말했다. 



볼싸노 램프를 빠져나오자마자 곧바로 우회전하여 터널에 진입하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계곡길을 길게 따라 올라가면 1,808미터의 빠쏘 디 라바제 정상에 오르게 되는 것이다. 돌로미티의 북서쪽 빠쏘 디 라바제(Passo di Lavazè) 정상의 풍경은 그렇게 만나게 되었으며, 하니와 나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대자연의 넉넉한 품에 안겨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꿈꾸는 그곳의 일면이 산중에 빼곡히 널린 것이다. 





돌로미티에서 처음 자리를 펴고 머리를 뉜 곳




지난 8월 9일 오후 7시 25분경에 촬영된 사진 한 장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풍경이 될 것 같다. 첫날 바를레타에서 꼬르티나 담뻬쬬로 이동한 날은 깜깜한 밤이었다.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야영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우리가 이동한 빠쏘 디 라바제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이곳까지 달려오는 동안 차창밖에는 야생화들이 줄지어 손짓하며 환호하거나 하늘을 찌를 듯 쭉 뻗은 나무들이 우리를 굽어 보거나 감싸 안으며 길을 안내했다. 




또 도로변에서는 돌로미티의 옥수가 쉼 없이 흐르고 있었는데 잠시 자동차를 정차해 놓고 물소리와 뭇새 소리들을 듣고 있노라니 발밑에서는 새파란 이끼들과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얼굴을 내밀며 수줍어하고 있었다.  우리가 라바제 고갯길에 주차를 한 다음에도 이 같은 풍경은 계속 이어졌다. 



하니와 상의한 끝에 우리는 라바제 고갯길에 새겨진 트래킹 장소 입구에 돗자리를 폈다. 우리는 이미 숲을 가로질러 트래킹을 끝낸 다음이었다. 피곤하기도 했고 시원한 그늘이 필요했는데 돗자리 곁에는 파릇파릇한 이끼들과 야생화들이 빼곡히 피어있었다. (글쎄.. 이런 데를 놔두고 호텔에서 잠을 자다니..흐흐) 




영상, 꼬르띠나 담뻬쬬에서 빠쏘 디 라바제로 가는 길




자리를 펴고 누우니 기다란 침엽수가 빤히 내려다보며 인사를 건넨다. 혼자가 아니라 무리를 지어 머나먼 대한민국에서 온 두 사람을 응원하는 것. 돌로미티를 연상할 때마다 머릿속을 맴돌던 거대한 기암괴석과 암봉은 저만치 멀어져 있고 고갯길 정상에서 하늘을 이불 삼아 잠시 낮잠에 곯아떨어진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Primo Sett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K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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