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우리는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었지..?!!
천하절경 돌로미티를 다녀온 지 어느덧 나흘이 지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먹고 자고 자고 먹고를 반복하며 여독을 풀고 있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인체는 초주검이 되었지만 19박 20일 동안을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돌로미티 산속 혹은 계곡 속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 이른 아침에 눈을 떴다. 그리고 곧 절경에 빠져들며 하루를 시작하곤 했다. 옥수나 다름없는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옥수에 손을 담그거나 발을 담그면 뼛속까지 시렸다.
빠쏘 디 라바제 고갯길에서 트래킹 코스를 들어서자 마자 우리를 품어주는 울창한 숲..
두 손으로 물을 길어 마시면 알삐의 미네랄 맛이 그대로 입안으로 전해지곤 했다. 달콤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물이 있다니..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 물맛을 잊을 수 없어서 알삐에서 길어온 물을 조금씩 아껴(?) 먹고 있는 것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생수 중에서 이런 맛이 나는 물이 있다면 즉각 단골이 되거나 애호가가 될 게 틀림없었다.
트래킹을 시작한 후 우리가 이용한 빠쏘 디 라바제 고갯길이 발밑에서 용틀임을 한다.
그리고 여행 중 뜨렌티노 알또 아디제 주(trentino-alto adige)의 까발레제(Cavalese)에서 구입했던 우유맛은 생수와 더불어 잊어버릴 수 없다. 돌로미티의 풀을 뜯어먹고 자란 젖소의 신선한 우유맛은 생전 처음 맛보는 별미였다. 돌로미티 여행 중에 기억에 남는 마실거리는 단 두 가지 물과 우유가 전부였다.
당신이 언제 꽃방석에 혹은 꽃길을 걸어본적 있던가.. 야생화의 마중 속에 트래킹에 나선 하니..!
비록 자동차로 여행했지만 문명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듯 지근거리에 있었던 알삐에 대한 찬사는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됐다. 아직 천하절경의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헤어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여행기를 끼적거리기 시작하면서 돌로미티를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어떠했을까.. 를 하니와 함께 아야기를 나누군 했다.
돌로미티 대부분은 이렇게 아름다운 고갯길이 상존한다. 부러울 사이도 없었다.
우리에게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용지물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열광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 돌로미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란 말 자체를 잊고 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신선의 경지에 다다르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쉬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 때문이다.
사람. 길. 자연이 한데 잘 어우러진 나라 돌로미티의 숲길이 다시금 그립다.
작대기 하나만으로 행복하였네라
따로 도를 닦을 필요도 없고 그저 알삐의 품에 안기면 신선의 반열에 오르는 것. 세상의 자랑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넉넉한 품에서 생각할 수 있는 건 오로지 경이로움의 원천이 어디서부터 발현되는 것인가 싶은 것뿐이다.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는 사람들 스스로 당신을 드높여 '만물의 영장'이라 부르거나 '천상천하 유아독존' 따위의 거추장스러운 표현을 일삼으며 세상에서 제일 잘난 생물이 인간임을 자랑한다.
그럴듯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신분을 금수저 흙수저로 나누거나 성적순으로 사람을 구분하는데 익숙하다. 그런 곳에 익숙한 세상이 대한민국이자 세계인들이 아닐까.. 당신의 세계관은 코 앞에 머물러있는 것이다.
돌로미티 대부분의 숲속 혹은 수목한계선을 넘으면 볼 수 있는 때 하나 묻지않은 대자연의 모습이 발 아래 납짝 엎드린채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너무 아름다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하니와 나는 꼬르띠나 담뻬쬬에서 빠쏘 디 라바제로 이동한 직후 잠시 몸을 추스르고 곧바로 트래킹에 나섰다. 바를레타의 집에서 산행에 필요한 장비 등을 챙기고 또 챙겨 왔지만 딱 하나 빠진 게 있었다. 하니의 손발이 되어주는 등산 스틱이 빠진 것이다. 그래서 고급 텐트와 스틱은 한국에서 주인을 기다리다 못해 체념을 한 상태겠지..
찢기고 꺽이고 쓰러지는 일은 자연이자 일상다반사가 아닌가..
라바제 고갯길에 주차를 한 다음 트래킹에 나서면서 오래된 습관을 되풀이했다. 깊은 산중 숲 속에 버려진 나무 작대기를 주어 스틱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건 맨몸 조차 거추장스럽다고나 할까. 생각 같아서는 훌러덩 벗고 알몸으로 트래킹을 하고 싶을 정도로 숲 속은 태초의 동산을 닮았다.
인간의 길과 대자연의 길은 닮은 듯 서로 다르다.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 것일까..
이런 세상이라면 세상의 지식이 왜 필요하며 문화 예술 운운하는 우리가 얼마나 왜소해 보이는지 단박에 깨달음이 온다. 그깟 티타늄 소재로 만든 등산용 스틱이 다 무엇인가. 숲에서 취한 나무 작대기 하나만으로 행복하면 그만이지..
하니는 돌로미티의 자연을 "그저 아름답다기 보다 경이롭다"고 말했다. 우리가 서 있던 자리는 경이로운 처소..!
울창한 숲 속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우리는 세상의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다. 조물주가 태초에 천지창조를 한 이후 마지막 날에 남자 사람을 만들고.. 다시 여자 사람을 만들어 돕는 배필로 삼았다는 이야기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람을 세상의 관리자라 여기는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우리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오래전 옛날부터 이어진 솔숲은 대자연의 보물창고가 틀림없다.
그 숲에서 치유의 바람이 분다
착각도 유분수지.. 트래킹을 이어가는 동안 세상은 나약한 인간을 위해 모든 것을 지어놓은 조물주를 기억해야 마땅했다. 천하에서 가장 나약한 인간이 대자연에 기대어 살아갈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데 기나긴 세월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은 생각들..
세상의 어머니들은 이 같은 과정을 너무도 잘 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 조차 준비된 어머니의 몸이 없었다면 불가능할 테지.. 숲은 세상에서 피치 못해 얻게 된 상처를 치유하는 명약이자 피난처였으며 쉴만한 요양원이자 소독약 대신 이끼와 피톤치드를 마구 내뿜는 재활처였다.
하니의 손발이 되어준 나무작대기.. 우리가 기댈곳은 지식이 아니란다.
나무 작대기에 의지하여 숲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숲에서 불어오는 치유의 바람이 온몸을 샤워하듯 깨끗이 씻어낸다. 옷을 훌러덩 벗고 발가벗은 몸으로 숲 속을 걷고 싶은 것도 유혹이 아니라 자연이 요구한 절차였다. 하지만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부끄럽게 만들었으면 숲과 대지의 요정의 요청에 부응하지 못했는지..
그러나 시간이 얼마간 흐른 후 우리는 마침내 산중에서 거추장스러운 옷을 전부 벗고 돌로미티의 요구에 부응했다. 가식으로 포장된 지식과 세포를 답답하게 만드는 옷을 다 벗고 옥수에 몸을 담그고 헹구니 동남동녀(童男童女)로 거듭나는 것. 세상에서는 비록 할매 할배로 불릴지 모르겠지만, 이때만큼은 내가 꿈꾸던 유년기로 돌아가 엄마 앞에서 발가벗고 물장구를 치고 있는 기분이랄까..
산골짜기에는 미네랄을 듬뿍 품은 옥수가 쉼없이 흘러내린다. 돌로미티 여행 중에 매일 아침 마셔보니 하루가 거뜬해진다. 우리를 지탱해준 힘의 원천이자 명약이 따로 없었다.
사타구니와 겨드랑이를 후벼 파고드는 옥수의 몸무림에 놀란 것도 잠시.. 등골이 시릴 때쯤, 돌로미티는 하늘의 볕을 모아 분가루를 바르듯 온몸 구석구석을 호호 불며 뽀송뽀송하게 말리는 게 아닌가. 어느 날 선녀가 나무꾼의 훔쳐보기 삼매경에 빠진 것도 모른 채 하늘나라에서 불시착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 숲에 가면 낡은 것을 벗어던지고 새힘을 받아오게 된다. 아무때나 떠나시라..!!
트래킹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하니와 나의 도발은 결국 어느 트래킹족의 눈에 띄어 원치 않았던 바바리족 신세를 못한 적도 있었다. 그 장면과 돌로미티 처녀 트래킹에 나선 장면은 다음 편에 소개해 드린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02 Sett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K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