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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05. 2020

돌로미티도 식후경이다

#8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보헤미안의 삶이 이러했을까..?!


돌로미티의 빠쏘 디 라바제에 잠시 여장을 푼 우리의 모습은 보헤미안의 겉모습을 쏙 빼닮았다. 여행자의 이름으로 길 위에 머리를 뉘고 숲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으면 보헤미안(Bohemian)을 넌지시 이해하게 되는 것. 사람들은 그들을 일러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들의 속내를 간파하면 반드시 그런 것 만도 아니었다. 그들의 관점에서 보면 사회의 제도와 관습에 얽매여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측은할까.. 


자연을 벗 삼아 사는 날까지 이곳저곳을 떠 돌아다니다가 하늘의 품에 안기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 것도 여행지에서 하루를 보내면서부터 였다. 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보기 위해 이탈리아의 베이스 연주자이자 작곡가 다미아노 니노 다똘리(Damiano Nino Dattoli)의 노래 노마디 이오 바가본도(Nomadi io Vagabondo)의 가사를 번역해 봤다. 이랬다. 



Nomadi io Vagabondo

-Damiano Nino Dattoli


Io un giorno crescerò,                                            언젠가는 성장할 거예요.

E nel cielo della vita volerò,                                  그리고 나는 인생의 하늘을 훨훨 날 겁니다.

Ma un bimbo che ne sa,                                          하지만 그는 알고 있어요.

Sempre azzurra non può essere l'età,                   항상 파란색이 될 수는 없지요.    

Poi una notte di settembre mi svegliai                 그리고 9월의 어느 날 밤 나는 잠에서 깼어요.

Il vento sulla pelle,                                                  피부를 간지럽히는 바람

Sul mio corpo il chiarore delle stelle                     내 몸안에서 별들이 빛나요.

Chissà dov'era casa mia                                           누가 알겠는가. 우리 집이 어디 있었는지 

E quel bambino che giocava in un cortile:             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이:

Io vagabondo che son io,                                          나는 방랑자 곧 나야

Vagabondo che non sono altro,                               방랑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어

Soldi in tasca non ne ho ma la su mi è                    주머니는 텅텅 비었지만, 걱정하지 않아

Rimasto Dio.                                                             신이 늘 함께 동행하거든

Si la strada è ancora là,                                            그래요. 길이 아직 멀어요.

Un deserto mi sembrava la città,                             마치 사막이 도시처럼 보였어요.

Ma un bimbo che ne sa,                                            하지만 그는 알고 있어요.

Sempre azzurra non può essere l'età,                      항상 파란색이 될 수는 없지요.   

Poi una notte di settembre me ne andai,                그리고 9월의 어느 날 밤 나는 떠났다.

Il fuoco di un camino                                                굴뚝의 불..

Non è caldo come il sole del mattino                       아침 햇살만큼 덥지 않아. 

Chissà dov'era casa mia                                            누가 알겠는가. 우리 집이 어디 있었는지

E quel bambino che giocava in un cortile:              마당에서 놀고 있던 그 아이:

Io vagabondo che son io,                                          나는 방랑자 곧 나야

Vagabondo che non sono altro,                               방랑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어

Soldi in tasca non ne ho ma la su mi è                   주머니는 텅텅 비었지만, 걱정하지 않아

Rimasto Dio, Io vagabondo che son io,                  신이 늘 함께 하거든, 나는 방랑자 곧 나야

Vagabondo che non sono altro,                               방랑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었어

Soldi in tasca non ne ho ma la su mi è                   주머니는 텅텅 비었지만, 걱정하지 않아

Rimasto Dio                                                             신이 늘 함께 동행하거든





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든다. 세상 모든 것을 다 거머쥐고 다 차지하고 다 붙들고 절대로 놓지 않고 신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는 생각.. 사람들은 천지를 만들거나 주관하고 있는 신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당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나머지 혹은 신의 능력을 시험하며 세상을 흑백으로 나누고 늘 싸움에서 이기는 자가 신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게 신과 동행하는 일일까.. 



보헤미안의 노래를 번역하다 보니 "주머니는 텅텅 비었지만, 걱정하지 않았다."는 가사가 눈에 띈다. 이유는 "신이 당신의 곁에 항상 머물거나 함께 동행하기 때문"이란다. 어릴 적 마당에서 놀고 있던 아이가 성장하면 달라지는 세상.. 당신 스스로 천국을 만들거나 지옥을 만드는 일을 거듭하는 동안 신은 안중에도 없었지. 신은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을 뿐 아닌가.. 그 정도가 얼마나 심했으면 사람들은 "신은 죽었다"라고 선포했을까. 


돌로미티의 빠쏘 디 라바제에서 처녀 트래킹을 다녀온 후, 도랑에서 멱을 감고 받아 든 한 접시의 밥과 돗자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파릇한 이끼류와 식물들은 보헤미안의 삶을 조금은 이해하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남미의 파타고니아에서 느껴보지 못한 여행의 묘미를 돌로미티 자동차 여행에서 새롭게 느끼게 된다. 우리는 이번 여행을 위해 바를레타의 집에서 한 두 가지 밑반찬을 준비해 왔다. 우리가 떠나올 때 끝물이었던 퐈지올리니(fagiolini ) 무침과 송아지 고기 조림이 그것이었다. 꽤 많이 준비한 퐈지올리니 무침이었건만 사흘 만에 동이 나고 말았다. 


돌로미티도 식후경이다




사흘 만에 거덜 난 퐈지올리니 무침은 위 자료사진 한 장이 유일한 증거로 남았다. 위의 두 자료사진은 그루터기 옆에서 살아가고 있던 숲 속의 이끼류와 식물들로 압력솥에 따끈한 밥만 지으면 밥반찬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 그루터기를 탁자 삼아 접시를 올려두고 자연을 벗 삼으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누가 그랬던가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말이다. 배가 고프면 눈에 뵈는 게 없고 만사가 짜증 투성이.. 보헤미안의 삶 속에는 그런 일이 수두룩 했을 텐데 그래도 행복했을까.. 알아두면 너무 좋은 초간단 퐈지올리니 리체타를 소개해 드린다. 



콩껍질째 먹는 퐈지올리니 리체테_Fagiolini ricette


퐈지올리sl 무침에 필요한 식재료

-. 퐈지올리니 1킬로그램(필요애 따라 양을 늘리시라)

-. 깐 마늘 몇 조각

-. 올리브유 대략 5 큰술(Olio extravergine d'oliva circa 5 cucchiai)

-. 청양고추 한 두 개(필요한 만큼)

-. 쁘레째몰로 2 큰술

-. 껍질 벗긴 뽀모도리니 300그램 이상 500그램 정도

-. 빠르마지아노 레지아노 포르맛지오 100그램 정도

-. 소금, 후추 적당량


이렇게 만들었다

준비된 재료를 사용하기 전에 먼저 퐈지올리니를 끓는 물에 말랑하게 잘 데친다. 대략 1분이면 될 것이다. 그리고 채에 받쳐 물기를 빼 다음 순서를 기다린다. 그다음 뜨겁게 데운 프라이팬(깊은)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과 청양고추를 썰어 넣고 마늘 고추기름을 만든다. 마늘과 고추 향이 물씬 배어나면 껍질 벗긴 뽀모도리니 전부를 넣고 졸인다. 대략 5분도 채 안되어 걸쭉하게 변하게 될 것이다. 이때 준비한 퐈지올리니 전부를 넣고 뜨거운 불에 무치면 끝! 이렇게 준비된 무침에 쇠고기는 물론 돼지고기와 닭고기 살을 넣어 먹으면 환상적 궁합을 이룬다. 우리는 여기에 송아지 고기 조림을 넣고 비볐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에서 즐겨먹는 리체타이며 다양한 리체타가 존재한다.



빠쏘 디 라바제를 떠나며




하니는 우리가 처음으로 머문 돌로미티의 빠쏘 디 라바제에서 1박을 하자고 졸랐다. 사람들이 바글바글 들끓는 도시에서 떠나 처음으로 맞이한 알삐의 속살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에게 부여된 제한된 시간을 좀 더 활용할 목적으로 딴청을 피우고 있었다. 



낮에 본 풍경들은 곧 밤이 되면 어둠 속으로 사라질 테고 하늘에는 은하수만이 우리를 굽어보고 있을 것이다. 저녁 시간이 되자 하루 종일 오르내리던 차량들이 뜸해졌다. 그들은 곧 잠자리에 들것이며 보헤미안의 처지가 된 우리는 은하수 밖에 바라볼 일이 없을 것이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서두에 잠시 언급한 사실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동 통신사를 바꾼 이후 휴대폰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우리의 현재 위치는 수기로 그렸던 잡기장 한쪽의 위치가 확인될 뿐이었다. 드넓고 광활한 돌로미티를 좀 더 빨리 느끼고 싶었던 게 딴청을 피운 이유였다. 우리는 풀어둔 여장을 다시 챙겨 보헤미안처럼 정처 없이 어디론가 떠나기로 했으며, 그곳은 이미지 트레이닝으로만 답사한 곳이자 돌로미티 깊숙한  알타 바디아(Alta Badia)란 낯선 곳이었다. 




곧 해님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돌로미티 북서쪽에 위치한 볼싸노(Bolzano) 계곡을 끼고 달리는 고속도로 위에 있었다. 벼랑 끝에서 모여사는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들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집을 짓고 살았는데 아주 가끔씩 알삐의 소식을 통해 바라본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고 있자니 여간 흥미로운 게 아니었다. 보헤미안은 정처 없이 떠돈다고 하지만 이들은 벼랑 끝에 사는 사람들.. 


이른 새벽에 포착한 돌로미티 알토 바디아(Alto Badia)의 비경.. 우리는 곧 저 너머로 등반을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장차 운명은 더더욱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 수가 없었다. 하니와 나는 돌로미티에 매료된 나머지 생애 처음으로 위험한 트래킹을 감행한 것이다. 하니는 겁을 먹고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기세였다. 그 장면 등 이른 아침부터 답사에 돌입한 야생화의 나라 돌로미티의 비경을 차근차근히 만나보도록 한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05 Sett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K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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