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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09. 2020

돌로미티, 내 마음속의 사진첩

#11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꿈같은 일이 이런 것일까..?!


하니와 답사 겸 나선 트래킹 길에서 우리가 지나온 빠쏘 가르데나(Il passo Gardena)를 굽어보고 있었다. 구불구불 기다랗게 용틀임을 하고 있는 가르데나 고갯길은 돌로미티의 알파인 통로로 해발  2,121m에 위치해 있는 곳이다. 또 이탈리아 뜨렌띠노 알또 아디제(Trentino-Alto Adige) 주의 볼싸노(Bolzano) 지방에 위치한 곳. 우리는 고갯길 맨 아래 쉼터에 여장을 풀어놓고 고갯길 마루를 오가며 사흘을 이곳에서 보내게 됐다.  



눈을 감으면 은하수가 폭포처럼 쏟아지고, 눈을 뜨면 거대한 바위산이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지켜 서서 우리를 보듬고 있었다. 쉼터에서 가까운 곳에는 옥수가 쉼 없이 흘렀고 주변에는 온통 알록달록한 야생화가 만발해 있었다. 바위산은 얼마나 크고 웅장하며 아름다운지 보고 또 보고.. 자꾸 봐도 질리지 않았다. 



우리는 엄마가 지켜보는 데서 잘 놀고 있는 아이들처럼 아무런 걱정도 없었으며 그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눈 앞에 바라 보이는 진풍경에 흡족해하며 "천국이 이런 곳이구나"를 연발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 아무런 걱정 근심도 없고 고통도 없으며 기쁨만 존재하는 곳이 실제 한다면, 그곳은 조물주가 공들여 빚은 개똥밭(?) 혹은 돌로미티가 아닐까.. 



우리는 뭐가 그렇게 급했는지 이곳에 여장을 풀자마자 싸돌아 다니며 돌로미티 속으로 한 발자국씩 야금야금 지경을 넓히고 있었다. (위 표지 사진 아래) 두 장의 자료사진의 계곡 속으로 위험하고 힘든 여정을 이어갈 것이라는 건 꿈에도 알 수 없었다. 워낙 덩치가 큰 바위산이어서 가까워 보이지만 고갯길 위에서만도 대략 2시간은 걸어야 했다.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우선 답사길에서 만난 풍광만으로 뷰파인더는 흡족해하며 기뻐했다.



내 마음속의 사진첩




꿈같은 일이 이런 것일까.. 나는 여전히 유년기를 그리워하고 있다. 세상의 많은 그리움의 대상 가운데 유독 유년기를 뚜렷이 기억해 내는 것도 행운일 테지.. 엄마가 품에 안아 얼굴을 씻어줄 때면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 소리를 지르며 앙탈을 부리던 기억까지 남아있으므로(눈 꼭 감으라 했잖아!) 국민학교(초등학교) 입학 전후의 사정은 훤히 꽤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가난했던 시절 60년대의 집안 풍경은 지금 생각해 봐도 재밌다. 현관을 통해 툇마루에 오르면 그곳엔 할머니의 초상화가 걸려있고, 커다란 액자에는 잘 찍은 사진들을 고루 펴 걸어놓고 감상하던 시절이다. 

흑백사진부터 컬러사진이 나올 때까지 이런 풍경은 꽤 길게 이어졌다. 


그 당시 액자 속에는 살이 포동포동 찐 한 녀석이 형들과 누나 곁에 앉아 찍은 흑백사진도 포함됐었다. 녀석의 두 발은 땟자국이 꼬질꼬질 묻어났다. 검정고무신에 땀이 절어 생긴 것. 그런 녀석이 어느 날부터 이탈리아 깐쏘네에 빠져든 것이다. 관련 포스트에 끼적거린 그 노래는 까사 비앙까(Casa bianca_Marisa sannia)라는 노래이다. 이랬지.



Casa bianca

_Marisa sannia


C'è una casa bianca che
Che mai più io scorderò
Mi rimane dentro il cuore
Con la mia gioventù

Era tanto tempo fa
Ero bimba e di dolore
Io piangevo nel mio cuore
Non volevo entrare là

Tutti i bimbi come me
Hanno qualche cosa che
Di terror li fa tremare
E non sanno che cos'è

Quella casa bianca che
Non vorrebbero lasciare
È la loro gioventù
Che mai più ritornerà

Tutti i bimbi come me
Hanno qualche cosa che
Di terror li fa tremare
E non sanno che cos'è

È la bianca casa che
Che mai più io scorderò
Mi rimane dentro il cuore
Con la mia gioventù

E mai più ritornerà
Ritornerà



당시 우리 집에는 큼지막한 짝퉁 스테레오 전축이 엄마 아부지를 즐겁게 만들었다. 동네에서 한 대 밖에 없는 전축이어서 이웃들이 밤만 되면 전축 앞에 몰려들어 잔칫집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런 풍경은 흑백 텔레비전이 나올 때까지 꽤 길게 이어지곤 했다. 


60년대 혹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깐소네와 샹송이 유행했는데 무슨 이유인지 자취를 감추고 팝송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아마도 미국과 함께 월남전에 참전한 독재정권의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아무튼.. 당시 녀석은 찌직 거리며 돌아가는 LP의 전축 바늘을 옮기고 또 옮겨가며 노래를 배워보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것이다. 대략 이런 모양새였지..



C'è una casa bianca che

체 우나 까사 비앙까 께

Che mai più io scorderò

께 마이 피우 이오 스꼬데로

Mi rimane dentro il cuore

미 리마네 덴뜨로 일 꾸오레

...


당시엔 이탈리아어로 부른 깐쏘네 외 Vicky Leandros가 부른 the White house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나는 마리사 산니아가 부른 까사 비앙까의 원곡이 좋았던 것이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가사의 뜻은 잘 몰라도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언덕 위의 하얀 집에서 살아갈 때의 모습이자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부지가 살아계실 때의 유년기의 추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하지만 두 번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었지.. 돌로미티 여행기 속에 별로 영양가 없는 유년기를 들먹인 이유는 내가 배운 이탈리아어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신기한 일이었다. 이탈리아와 나의 인연은 초등학교 때 시작되었으나 다시 이탈리아와 인연의 끈을 이어간 건 산전수전 공중전 땅굴전까지 다 경험한 이후였다는 것을 우리 독자님들은 다 안다. 늦깎이로 이탈리아 요리 유학을 끝마치고 이탈리아에 둥지를 틀면서부터 인생 후반전을 살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허락만 한다면 연장전까지 이곳에서 살아갈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도 여독이 채 가시지 않았지만 하니는 벌써부터 새로운 꿈에 부풀어있다.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우리가 가르데나 고갯길에 여장을 풀고 조석으로 들이킨 맑은 공기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다시 알삐를 방문하면 물통을 여벌로 더 가져가자고 한다. 돌로미티가 선물한 물맛 때문이었다. 지구별의 촌놈.. 두 사람이 늦바람이 든 모양인지 날 새는 줄 모르고 돌로미티 타령이라니.. 흐흐 



가르데나 고갯길을 벗어나 트래킹을 시작하자 마자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그동안 강남의 동네뒷산과 설악산을 오가며 체력을 단련한 것도 별로 소용이 없는 듯, 다시 다부지게 마음을 먹고 재도전 하기로 하도 길을 돌아섰다. 그동안 고갯길에서 바라본 풍경만으로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그때 마다 하니는 돌로미티에서 살고싶어 했다. 그렇게 하고 싶었다. 이 산 아래 머리만 뉠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매일 아침 맑은 물과 공기를 마음껏 들이킬 수 있겠지.. 참 소박한 꿈이자 욕심도 많지..ㅜ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내 마음 속의 오래된 사진첩에 돌로미티의 조각조각을 끼워맞추고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다시 꾸게 될 게 아닌가.. 까사 비앙까를 부른 마리사 산니나가 그리워한 옛집에 할머니 할아버지도 안 계시고 엄마 아부지도 안 계실 텐데.. 내 마음 속의 사진첩 속에는 유년기가 고스란히 남아 아침 저녁으로 나를 일깨우겠지.. (그럴 거 같아 ^^)



우리가 마문 쉼터에서 고갯길만 돌아왔을 뿐인데 세상은 꿈을 꾸는 듯 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길 위에는 바이크족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하루종일 캠핑카와 자동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곳. 서기 2020년 8월 10일 오전 10시경부터 시작된 짧은 트래킹 동안 뷰파인터는 바쁘게 움직였다.



위 자료사진은 빠쏘 가르데나 고갯길(꼭대기)의 전경이며 돌로미티의 빼어난 산군이 병풍처럼 둘러져있다.



우리는 곧 좌측의 화살표 방향(위 자료사진) 라고 디 삐쉬아두(Lago del Pisciadù) 호수가 위치한 치마 삐쉬아두 봉우리(Cima Pisciadù)로 등반을 하게될 것이다. 트래킹으로 나섰다가 복병을 만나 부득불 등반을 하게된 것이다. 19박 20일 동안 돌로미티 여행 중에서 가장 위험한 일을 만났다. 만났었다.



물론 이때까지만 해도 장차 우리에게 일어날 일은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그저 발 아래 피어나고 있는 야생화들과 장엄하게 펼쳐진 풍광 앞에서 아이들처럼 그저 좋아하고 있었을 뿐이었지.. 



조물주가 빚어놓은 최고의 작품 돌로미티는 이때부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우리를 가슴에 품고 놓아주지 않았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08 Septten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K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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