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는 생애의 모습은 몇이나 될까..?!!
서기 2020년 8월 10일 오전 6시경, 간밤에 비가 내렸다. 빠쏘 디 가르데나(Passo di Gardena) 고갯길로 이어지는 쉼터에서 간이 텐트를 쳐 놓고 잠을 청했으나 후드득 거리는 빗방울 소리에 놀라 잠을 깬 뒤 자동차 안으로 몸을 피했다. 알타 바디아의 첫날밤은 자동차 안에서 지새웠다. 맑은 날씨가 절반은 되었을까.. 돌로미티는 이때부터 여행을 끝마칠 때까지 밤만 되면 무시로 비를 흩뿌리곤 했다.
그때마다 자리를 챙기고 자동차 안으로 몸을 피하곤 했다. 우리가 구입한 치뜨로엥(Citroën) 승용차는 전자동으로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기어(스틱)가 없는 대신 그 자리에 콘솔박스가 있었다. 그래서 양쪽 의자 중간에 적당한 두께의 받침만 깔아 두면 간이침대로 변했다. 의자를 뒤로 밀어내고 좌석 위에 얇은 이불을 깔고 침낭 속에 몸을 숨기면 훌륭한(?)한 숙소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여행 중에 비가 오실 때마다 후다닥 몸을 숨긴 곳이 자동차 안이다. 비록 길이(폭)가 짧은 게 흠이었지만 돌로미티 여행에 마침맞은 숙소나 다름없었다. 하니는 그때마다 캠핑카 구입을 입에 올렸지만 돌로미티에서 만난 무수한 캠핑카들의 모습을 목격하고 캠핑카(크기)에 실망하고 말았다. 시설이 잘 된 캠핑카는 천하절경을 갖춘 돌로미티에서 200% 진가를 발휘했다. 언제 어느 때라도 가고 싶은 곳에 이동을 하여 주차를 하면 끝!
*기억해 두시면 좋은 돌로미티의 중심지역 PASSO DI GARDENA 위치 출처: www.viamichelin.it
빠쏘 가르데나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가 사흘 동안 묵었던 알타 바디아의 빠쏘 디 가르데나 고갯길 지역(Il territorio del passo Gardena)은 돌로미티에서 가장 오래된 곳으로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자주 찾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신석기 시대의 유물(도구)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도구들은 이 지역에 살았던 사냥꾼들의 도구로 추정하고 있다. 이른 아침 숲속에서 고개를 내민 사슴을 본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최근에는(1027년부터 1803년까지) 거의 800년 동안 트렌토(Torento)와 브레사노네(Bresanonone)의 주교들 사이의 경계선을 형성하기도 했다. 1915년, 1차 세계대전 동안, 첫 번째 철도 노선이 건설되었는데, 군수물자 공급을 위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기도 했다. 대략 1900년대 중반 이후(2차 세계대전 이후), 이 길은 점점 더 관광목적의 중요성을 띠기 시작하여, 1960년에 이르러 오늘날의 도로와 그 다음 해에 리프트가 건설되었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가르데나 계곡과 바디아 계곡을 오가는 바이크족들에게 매우 인기있는 명소로 자리잡았다.
영상, 돌로미티의 해맑은 아침
그런데 돌로미티 여행을 끝날 때쯤 하니와 우리는 캠핑카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됐다. 그 대신 우리가 타고 다닌 승용차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자동차가 있었으면 했다. 여행 중에 숙식은 매우 중요했으므로, 다시 한번 더 돌로미티로 떠나거나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면, 그땐 세미 캠핑카를 준비할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돌로미티 여행기를 끼적거리면서 캠핑카를 언급한 이유에 대해 독자님들은 눈여겨봐 두시기 바란다.
여행을 시작할 때는 잘 몰랐던 사실이지만, 돌로미티 여행을 하는 동안 보다 효율적으로 여행하는 방법을 생각해 봤다. 돌로미티는 지리적으로 배낭여행에 적합하지 않으며 걸어서 다니기엔 무리 이상으로 불가능하다. 돌로미티의 한 부분만 여행하려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지역이 워낙 방대하고 광활하여 현지에서 걸어서 다니기엔 불가능하다고 아예 대못을 박는다.
한국에서 이탈리아의 말펜사 공항까지 이동하여, 그곳에서 다시 베네치아로 이동하고, 벨루노를 거쳐 돌로미티의 베이스캠프나 다름없는 꼬르따 디 담빼쬬까지 도착한다고 해도.. 이때부터 난관에 부닥치기 시작할 것이다. 관련 웹사이트에 소개된 한 여행자가 소개하는 명소만 해도 100군데가 훨씬 더 넘었다. 또 내가 본 명소는 그 보다 훨씬 더 많았다.
대체로 그곳은 산기슭 동네까지 기차가 다니고 다시 명소의 고갯길까지 버스가 다니긴 한다. 그렇다면 끼니는 고사하고 잠은 어디서 잘 것인가. 돌로미티는 물론 알삐 곳곳 비탈길은 물론 벼랑길 곁에도 호텔들이 즐비하다. 어디를 가도 호텔에 머리를 뉠 수 있다. 그렇다면 장소를 옮길 때마다 호텔에 예약을 해야 할 것이며, 당신이 가 보고 싶은 여행지마다 호텔을 예약하고 기차나 버스 혹은 택시를 이용하여 이동해야 할 것이다.
아마도.. 아마도 배낭여행 혹은 여행에 일가견이 있는 나의 생각에 따르면, 현지의 명소를 다니며 쌓이는 피로보다 숙식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여행의 피로 혹은 스트레스 보다 더 크게 느껴질 게 틀림없다. 따라서 만약 내가 청춘이고 돌로미티를 완주(?)하려고 마음먹는다면 세미 배낭여행에 돌입할 것이다. 대략 2개월 정도(무비자 참고)의 일정을 잡고 배낭에 1인용 튼튼한 텐트와 코펠 등의 장비를 짊어지고 여행에 나서는 것.
느리게 느리게 최고의 명소를 찾아다니는 동안 죽을 때까지 기억에 남는 당신만의 여행이 이어질 것이다. 그 시기는 대략 7월에서 8월이 좋을 것이며 돌로미티의 충고에 귀 기울이며 다니면 될 것이다. 돌로미티는 청정지역으로 아무데서나 야영을 하지 못하며 오물을 함부로 버리면 안 되는 초일류 여행지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여행자들은 돌로미티 깊숙한 곳에서 야영을 하기도 했고 편법을 동원한 사업자들은 캠핑카 짐칸만 사용하여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곳곳에 야영장을 마련해 두거나 고갯길 근처에서 우리처럼 조리를 하거나 숙박을 하는 여행자들을 봐 왔다. 그러나 그들 곁에서 숙식의 흔적은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었다. 그냥 아무데서나 누워도 될 만큼 돌로미티는 청정지역 그 자체였다. 호텔에서 전혀 느끼지 못하는 여행의 묘미를 길 위에서 느끼게 되는 것이다.
길 위의 여행자..!!
아침에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니 전혀 새로운 세상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다. 쉼터에서 가까운 곳에는 옥수가 쉼 없이 졸졸졸 흐르고 있고, 그 곁에서 야생화들이 말끔히 단장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이했다. 그런가 하면 큼지막한 달팽이는 느리게 느리게 아침햇살 아래서 조깅을 하고 있는 모습들..
만약 우리가 사는 동안 날마다 이런 풍경을 아침마다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곳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은, 이곳으로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여름철 피서지를 이곳으로 택한 사람들은, 선택받은 자들이 틀림없을 것이라며 말끝마다 씨부렁댓다. 하니와 나는 이른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처럼 주변을 싸돌아 다니며 즐거워했다.
여행기를 끼적거리는 지금에야 떠오른 생각이다. 우리가 이곳에 도착한 날로부터 우리가 살아왔던 곳,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모든 것들이 하얗게 포맷된 채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선경 속으로 발을 들여놓고 눈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암봉 위로 올라가고 싶은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간밤에 내린 비가 알타 바디아의 풍경을 해맑게 바꾸어 놓고 우리를 동남동녀로 변신시키고 있었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06 Septten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K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