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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19. 2020

운명의 오솔길

-우리가 꿈꾸는 새로운 삶

사람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은 하늘이 인도한다고 했던가..!!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해마다 9월이 오시면 우리의 싦을 돌아보는 것. 서기 2018년 9월 9일 아침, 우리는 습관에 따라 매일 아침 동네 뒷산을 올랐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이 하나둘씩 산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하루가 시작되는 것이다. 3년 전 이날 아침 하니와 나는 새로운 꿈에 부풀러 있었다. 며칠 후면 이탈리아행 비자(Visto di residenza elettiva)가 나올 예정이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에 이탈리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불과 한 달 전에 피렌체에서 우리가 살 집을 계약하고 한남동 이탈리아 대사관에 들러 비자에 필요한 최종 서류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꿈만 같았다. 2015년부터 두드리기 시작한 이탈리아행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지인들은 우리가 이탈리아로 아예 이민을 떠나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이탈리아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하겠지 정도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우리의 계획은 우리 스스로도 잘 모르는 희한한 일이 생긴 것이다. 



하니와 나는 그저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가 좋아서 그곳에서 얼마간 살고 싶었을 뿐이다. 피렌체에 가면 문화예술에 대한 갈증 대부분이 해소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이 서서히 바닥을 드러낼 때쯤 하니를 애태우던 갈증의 실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의 도우심인지 피렌체의 산타 암부로지오 재래시장(Mercato di Sant’Ambrogio) 곁에 위치한 로지아 델 뻬쇄(Loggia del Pesce)에서 한 예술가를 만나 삶의 이정표에 수정을 가하게 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provincia di Barletta-Andria-Trani in Puglia)로 이주를 하게 된 이유가 한 예술가 때문이었다. 요즘 하니가 그림 수업을 하고 있는 배경에 한 예술가의 화풍에 매료된 때문이었다. 





이러한 배경에는 한국에서 늘 봐 왔던 순수미술의 세계가 이탈리아 현지와 다소 차이를 보이거나 사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하니가 한 예술가 루이지 라노떼(Luigi Lanotte)의 화풍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루이지는 빛과 어둠의 마술사 렘브란트(Rembrandt )를 무척 사랑했는데 하니의 마음에 쏙 들게 된 것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그동안 한국에서 쌓아왔던 노력이 물거품이 됐다. 루이지의 작품 세계 혹은 렘브란트의 화풍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초가 탄탄해야만 했다. 루이지는 '적당히'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그가 피렌체의 예술학교에서 그림 수업을 할 당시와 똑같은 방법으로 수업을 이어가는 것인데.. 



루이지의 표현에 따르면 학생들이 눈물을 펑펑 쏟을 정도로 수업은 엄격하고 정확해야만 했다. 따라서 화실에 걸어둔 그의 작품들 가운데는 연필 소묘만 6개월이 걸린 작품은 물론, 웬만하면 2달 이상의 시간을 보낸 작품들이 여럿 있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극사실주의의 화풍을 보는 듯 초기에는 렘브란트의 자화상과 많이 닮아있었다. 그런데 하니의 그림 수업 중 동시통역을 이어나가며 그의 화풍을 간접 체험해 보니, 그는 당신만의 기법으로 생동감 있고 드라마틱한 장면을 자유자재로 연출해 내는 것이다. 



그는 렘브란트가 초기에 그린 그의 자화상과 전혀 다른 붓의 터치를 이어나가며 당신만의 작품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루이지 나이 40세.. 렘브란트가 40세 때 그린 자화상은 연필 소묘 작품처럼 착하게 보였지만, 그의 화풍은 바람이 날릴 정도로 거친 터치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적당한 거리를 두고 보면 대상의 특징이 뚜렷이 그리고 부드럽게 빛과 어둠에 쌓여 도드라지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만 3년 전, 우리는 우리의 삶을 캔버스 위에 올려놓고 스케치를 이어 나갔다. 그때만 해도 그저 막연한 것만 같았던 이탈리아행이 실현되자, 우리 명암의 톤과 세기는 마구잡이로 흔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루이지의 작품과 렘브란트의 작품을 비교해 보는 것도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빛과 어둠의 결과가 어떤지 비교해 보는 것이랄까. 렘브란트가 활동할 당시에는 그가 각광을 받았지만 그 보다 더 나은 작품을 그린다고 해도 주목받지 못하는 세상..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잠시 돌아보는 것이다. 뚜렷한 목표가 반드시 최고의 결과를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끼어들었다. 





3년 전 동네 뒷산.. 하니의 손에는 메모지가 들려있었다. 메모지 속에는 이탈리아어를 습득하기 위한 문법과 자주 사용하는 동사와 형용사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매일 매 시간 중얼거리며 이탈리아어를 습득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탈리아와 보다 더 친숙해지는 준비를 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훌쩍 흘러간 것이다. 오늘 오후 사진첩을 열어 당시를 돌아보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서기 2020년 9월 18일 오전 10시 30분경, 우리는 천천히 걸어서 시내를 가로질렀다. 그곳의 한 관공서(Sportello Anagrafe-호적창구)에서 하니의 신분증(La carta d'identità)을 찾게 되는 역사적인 날이었다.(내가 너를 천국의 시민으로 삼겠느라!!) 피렌체서 신청해 두었던 신분증이 사정으로 인해 찾지 못하고, 다시 이탈리아로 귀국하여 지난주에 새롭게 신청한 것이다. 하니는 너무 기뻐했다. 비로소 이탈리아 신분증을 거머쥐고 새로운 꿈을 꾸는 것이다. 



신분증, 그게 다 뭐라고.. 그러나 동네 뒷산에서 꿈꾸었던 꿈이 현실이 되면서 얼마 전 다녀왔던 돌로미티를 다시 넘보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오솔길에서 꿈꾸었던 작은 꿈이 운명으로 다가올 때까지 우리가 한 일은 지극히 미약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무나 쉽게 넘보지 못하는 일로 뒤바뀐 것이다. 장차 동네 뒷산이 돌로미티로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il Nostro Viaggio_Vicino casa mia in COREA
il 19 Septt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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