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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Sep 29. 2020

가을비에 물든 치비아나 골짜기

#3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비가 오시면 수채화로 변하는 아름다운 골짜기..!!


   서기 2020년 9월 24일 오전 9시 30분경, 우리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바를레타의 우체국에 볼 일을 보러 갔다. 하니의 휴대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한 바 우리는 지난여름 돌로미티 여행을 앞두고 휴대폰의 통신사를 00에서 우체국으로 바꾸었다. 상대적으로 비용도 저렴할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전국 어디서나 인터넷 연결이 잘 되었다. 자주 사용하는 카톡, 브런치와 유튜브, 페북 혹은 인스타그램 등의 작동이 원활한 것이다. 



   

치비아나 골짜기로 가는 길에 생긴 기이한 일들


그런데 돌로미티의 가을여행을 앞두고 잠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로밍폰을 만지작거리던 직원 1인의 실수로 하니의 휴대폰 LTE(Long Term Evolution) 작동이 안 되고 있었다. 따라서 우체국이 문을 열자마자 곧바로 담당 직원을 찾아 문제를 해결했다. 희한한 일이었다. 분명히 내가 만지작거렸을 때는 작동이 안 되던 휴대폰이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것이었다.(별일이야!ㅜ) 



아무튼 우리는 휴대폰 때문에 돌로미티행을 하루 더 미루게 된 것이다. 계획대로라면 바를레타에서 9월 23일에 돌로미티로 떠났을 테지만 휴대폰이 하루를 늦추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돌로미티로 출발한 시각은 이날 오전 11시 50분경이었다. 돌로미티로 떠나기 전에 일어난 일을 길게 끼적거린 이유는 다름 아니다. 관련 브런치 연재 글 실제상황, 불속으로 달린 자동차에서 언급한 바 평생 처음 겪는 이상한 일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은 돌로미티의 치비아나 골짜기(Cibiana di Cadore)에 도착할 때까지 몇 번 더 일어났다. 이번에는 돌로미티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벨루노(Belluno)와 물의 도시 베네찌아(Venezia)에서 가까운 뜨레비소(Treviso)에서 고속도로 램프를 빠져나오는 급박한 상황이 발생했다. 시행착오가 일어났던 것이다. 



당초 자동차 연료를 가득 채우고 주행하면 벨루노까지 진출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는 즉시 주유소에 들러 연료를 가득 채울 예정이었다. 그런데 뜨레비소 램프가 가까운 지점에서 계기판에 연료 경고등이 켜진 것이다. 자동차의 경고등이 켜지는 시점은 차종별로 다르나 보통 소형차는 6~9리터, 중형차는 9리터, 대형차는 12리터 이하가 되면 연료 경고등이 켜진다고 한다. 


이렇게 경고등이 켜지는 시간이 다른 이유는 차종별로 연비의 차이가 있어서 주행할 수 있는 거리가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경고등이 켜진 이후 대체로 50킬로미터는 더 주행할 수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차량의 경고등이 켜지는 순간부터 조바심이 생겨났다. 



자동차 주행거리를 참고하여 맨 먼저 도착하는 램프(뜨레비소)로 빠져나갈 때까지 마음이 놓이지 않는 것이다. 하니는 곁에서 "왜 미리 기름을 붓지 않았느냐"며 조바심을 부채질했다. 다행히 자동차는 뜨레비소 램프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우리는 곧바로 뜨레비소 요금소에서 가장 가까운 주유소를 찾아 나섰다. 더 큰 문제는 그다음부터 일어나기 시작했다. 주유소 위치를 물어물어 찾아가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막상 주유소에 들른 후에 일어난 끔찍한 상황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무인 셀프주유소 두 곳을 찾았는데 한 곳은 단말기 작동이 시원치 않아 주유를 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고, 두 번째 겨우 찾아 나선 주유소에서는 날파리떼들의 습격으로 주유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유기는 물론 카드 단말기와 불 켜진 주유소 내부에 벌떼들이 수북이 쌓인 것처럼 날파리들이 떼를 지어 달라붙어 있었다. 날파리들은 주유기 외에 주유소를 찾은 우리에게 빼곡히 달라붙는 게 아닌가. 상상이 잘 안 될 것이다.ㅜ



뿐만 아니라 열린 자동차 문 속으로 침입한 날파리떼들 때문에 주유를 마치는 동안 하니는 멀찌감치 피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주유를 끝마치고 카드와 영수증을 단말기에서 빼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수건을 이용해 날파리떼 일부를 털어낸 다음 겨우 주유를 끝마친 것이다. 실로 끔찍한 경험이었다.ㅜㅜ 



지난여름 우리가 점찍어둔 작은 오두막집


그게 끝이 아니었다. 주유를 마치고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이번에는 차창에 빗방울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빗방울은 폭우로 변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졌다. 자동차들은 폭우에 엉금엄금 기다시피 했다. 자동차 속에서 나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혼자 중얼거렸다. 만약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돌로미티행을 포기해야 했을까..



우리는 이날 저녁 자정이 넘어서 마침내 치비아나 골짜기에 도착했다. 그곳은 당초 우리가 가고 싶었던 장소인데 뜻밖의 일이 우리를 반겼다. 당초 꼬르띠나 담뻬쬬(Cortina d'Ampezzo)로 이동한 이후, 지난여름에 묵었던 치비아나 골짜기로 진출하려고 했지만 포기하고 원래 목적지를 휴대폰 네비에 찍었다. 그런데 휴대폰 네비를 다시 작동시키자마자 낯익은 장소가 곧바로 나타난 것이다. 전혀 뜻밖의 일이었다. (감동!! 세상에..ㅜ)



사방은 칠흑같이 깜깜했고 시야에는 자동차 전조등 불빛이 전부나 다름없는 산골짜기에서, 지난여름 우리가 점찍어둔 작은 오두막집 근처까지 간신히 이동한 것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오후 8시에서 9시 사이 도착해야 했지만 최소한 3시간 연착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목적지 부근에서 차콕으로 밤을 새우고 아침을 맞이한 것이다. 



오두막집에서 바라 보이는 돌로미티의 한 조각


밤새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잠을 설칠 것 같았지만 우리는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새벽 6시에 눈을 떠 보니 별천지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우리를 보게 된 것. 돌로미티의 가을이 코 앞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에 시동을 켜고 단풍이 곱게 물든 치비아나 고갯길로 차를 몰아 지난여름 우리가 점찍어둔 작은 오두막집에 도착해 잠시 망중한을 즐기게 된 것이다.



우리가 눈을 뜨자마자 오두막집으로 발길을 돌린 이유는 지난여름에 점찍어둔 때문이기도 했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이 집에서 살 수 있을지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 목조건물로 잘 지은 오두막집은 하니와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을 제공할 수 있고, 공기는 물론 무엇보다 눈만 뜨면 돌로미티가 바라보이는 전망이 좋은 고갯길 작은 언덕 위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아담한 별장에 작은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아직 산골 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에게는 너무 외진 곳이었다. 치비아나 마을도 밤이 되면 어둠과 정적에 휩싸이는데 이곳은 달님과 별님을 제외하면 빛이라곤 없는 곳이었다. 만약 지금처럼 비라도 오시거나 구름이 낀 날이면 하니는 까무러칠 정도로 기겁을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난히 어둠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여자 사람 1인.. 



비에 젖은 단풍들.. 치비아나 고갯길을 천천히 운전하며 내려가는 동안 우리는 오두막집과 이별을 고하고 있었다. 지난여름의 추억을 간직한 곳. 어쩌면 이 고갯길은 두 번 다시 찾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돌로미티는 넓고 머물고 싶은 곳은 천지 빼까리로 널린 곳. 돌로미티의 가을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짧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느리게 느리게 치비아나 고갯길을 내려오다가 만난 풍경들.. 우리는 곧 치비아나 디 까도레(CIBIANA DI CADORE) 마을로 이동한 다음 두 번째 미션을 수행하기로 했다. 돌로미티는 우리의 속마음을 알아채고 있었는지 고갯길 저만치까지 마중을 나왔다. 오두막집에서 치비아나 마을로 가는 고갯길은 가을비에 흠뻑 젖어있었다.





오두막집에서 치비아나 마을로 가는 고갯길 풍경




치비아나 고갯길에서 바라본 골짜기는 온통 구름에 덮여있었다. 간밤에 폭우를 쏟아내던 구름이 잠시 쉬고 있는 모습이랄까..



고갯길에서 하산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바라본 구름에 가린 돌로미티(Riserva Statale Val Tovanella)와 노랗게 물든 숲..



이른 아침, 자동차가 한 대도 얼씬거리지 않는 치비아나 고갯길에서 걸음걸이보다 더 늦게 차창 앞으로 전개되는 풍경을 바라보며 마을로 다시 돌아가는 길. 운전석에 앉아 바라본 돌로미티는 가을 옷을 입었지만 화려함 보다 수수한 차림의 평민복을 연상케 했다. 



돌로미티의 9월은 꽤 오랜 옛날.. 어머니 생전에 보았던 민중들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사시사철 흑백 치마저고리를 입다가 어쩌다 눈에 띈 알록달록한 월남치마가 멋쩍게 하던 때.. 돌로미티로 떠나기 전에 발행한 포스트에서 만난 설악산의 단풍은 비교할 바가 되지못했다. 하지만 돌로미티의 가을 맛은 장엄했다. 평소 설악산은 남성적이라 생각했지만 돌로미티를 만난 이후로 생각이 달라졌다. 돌로미티가 우직한 남성상이라면 설악산은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운 여성상이었다. 





가을비에 물든 치비아나 골짜기




치비아나 고갯길에서 만난 수채화를 닮은 풍경 하나.. 이 집을 꽤 오랜동안 바라봤다. 만에 하나 우리가 돌로미티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면 수채화 속으로 사라질 거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지옥 같은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 천국을 경험할지 모르겠지만, 소통할 수 있는 이웃이 극히 적은 깊은 산중에서 살아가면 사후세계와 별로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산중에서 살아가려면 맨 먼저 소통 방식을 200% 이상 바꾸어야 하지 않겠는가. 달님과 별님.. 바람과 구름과 뭇새들과 풀꽃 등과 소통하며 지내야 할 것이다. 도시에서 감히 꿈도 꾸지 못하던 세상이 숲 속에 버려진 듯 오롯이 펼쳐진 공간.. 



이곳에 머무는 짧은 시간 동안 산중에서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 오두막집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양봉업으로 살아가고 있었는지.. 그 집 앞 고갯길 곁에 벌통들이 비를 맞으며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이곳 치비아나 마을은 해발 985미터에 위치해 있고, 한 때 2천 명 이상이 거주하던 꽤 큰 마을이었지만, 1920년을 정점으로 현재는 450명 남짓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주로 농경과 목축업에 종사했으나, 주변의 철광산으로부터 철을 채취하여 열쇠를 만드는 등의 일을 했다고 전한다. 철 생산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나 최근에는 알또 벨루노(fabbriche dell'Alto Bellunese) 공장에서 일하거나 서비스업에 종사한다고 한다.



가을비 오시면 수채화로 변하는 치비아나 마을




우리는 이곳에 머무는 동안 숲 속에서 멀리 보이는 교회 끼에사 디 산 로렌조(CHISA DI SAN LORENZO)를 여러 번 지나치게 됐다. 맨 처음 이 산골짜기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부터 다시 찾게 된 때까지 여러 번 방문했는데 주변의 풍광 때문이었다. 



이 마을은 돌로미티 깊숙이 숨겨진 외딴 마을로 민박집과 호텔이 있지만 유명 관광지와 거리가 멀고 서비스 인프라가 빈약한 그야말로 산골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얼마나 착한지 "당신이 사는 동네가 너무 아름답다"는 말만 해도 아이들처럼 기뻐하며 좋아했다. 



고갯길은 교회 옆에 있는 건물 사이로 이어져 있는데 교회 옆의 하얀 건물이 이 마을의 동사무소 내지 면사무소에 해당하는 꼬무네(Comune)에 해당하는 곳이다. 비가 멎고 날이 조금 더 개인 후 우리는 치비아나 디 까도레 마을의 작은 집을 찾아 주소의 행방을 문의했는데 여직원은 친절하게도 우리의 궁금점을 단박에 해결해 주었다. 그리고 덕분에 이탈리아어 한 단어를 챙기게 됐다. 



우리가 살고 싶어 한 두 번째 집의 크기는 너무 작았다. 그 집은 이탈리아어로 까셀로(Casello)라 불렀다. 작은 집이라는 뜻이었다. 이 집에 관한 한 봘레 디 까도레(Valle di Cadore) 꼬무네에서 문의해 보시라는 것. 관련 내용은 따로 포스팅하기로 한다. 마치 꿈만 같은 일이자 까마득한 역사를 지닌 집이 작은 집의 정체였던 것이다.



치비아나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만난 산골짜기 마을은 수채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림처럼 바뀌고 있었다. 하니가 바를레타에서 그림 수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풍경을 목격하면 곧바로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물감을 칠하지 않았을까.. 가을비가 오시면 단박에 수채화로 변하는 치비아나 마을.. 



우리는 이곳에 둥지를 틀고 돌로미티 곳곳을 바람처럼 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다..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이며 답사길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마구 꼬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참 이상한 일이지.. 하늘은 그냥 우리를 돌로미티로 초대해도 좋았으련만, 왜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통과의례(?)를 겪게 만들었을까.. 가을비 오시면 수채화로 변하는 치비아나 마을을 벗어나자 수수께끼는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계속>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29 Septt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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