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비가 오시면 수채화로 변하는 아름다운 골짜기.. 두 번째 시간!!
치비아나 고갯길을 내려오면서 만난 산골짜기 마을은 수채물감이 채 마르지도 않은 그림처럼 바뀌고 있었다. 하니가 바를레타에서 그림 수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이런 풍경을 목격하면 곧바로 밑그림을 그리고 수채물감을 칠하지 않았을까.. 가을비가 오시면 단박에 수채화로 변하는 치비아나 마을..
우리는 이곳에 둥지를 틀고 돌로미티 곳곳을 바람처럼 다니고 싶었던 것이다. 글쎄다.. 그게 마음대로 안 되는 세상이며 답사길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마구 꼬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참 이상한 일이지.. 하늘은 그냥 우리를 돌로미티로 초대해도 좋았으련만, 왜 우리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통과의례(?)를 겪게 만들었을까.. 가을비 오시면 수채화로 변하는 치비아나 마을을 벗어나자 수수께끼는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여정 가을비에 물든 치비아나 골짜기 편에서 이렇게 썼다.
돌로미티가 그린 동양화의 반전
지난 9월 24일부터 2박 4일간의 돌로미티 여행은 전혀 뜻밖의 일기로 인해 일찌감치 포기한 여행이었다. 당초 바를레타에서 돌로미티로 떠날 때는 짧아도 대략 2주간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 마음먹고 준비했다. 이른바 돌로미티의 가을여행이었다. 하지만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았다.
관련 브런치에서 언급한 바 고속도로에 들불이 먼저 위험한 상황이 닥쳤다. 그리고 자동차 연료가 바닥을 드러내는 시행착오가 있었는가 하면, 고속도로 램프를 빠져나가 주유를 하던 중 기이한 날파리 떼를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한 후 이번에는 폭우를 맞이한 것이다. 자동차는 느리게 느리게 꼬르띠나 담뻬쬬로 향했다.
그리고 한 순간 본래의 목적지 꼴레 디 산타 루치아(Colle Santa Lucia)를 네비에 올려두었더니 그 즉시 우리의 목적지가 코 앞에 드러났다. 그곳은 지난 9월 19박 20일간의 돌로미티 여행에서 만난 산골의 오두막이 있는 곳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 폭우 속에서 일이었다. 상황이 급반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겨우 도착한 빠쏘 치비아나 마을에서 빗속에서 밤을 지새운 후 계획에 따라 부동산 정보를 알아보려던 중 일기가 불순해지면서 돌로미티의 하늘은 검게 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비를 쏟아내며 발목을 붙들었다. 우리는 치비아나 골짜기에서 봘레 디 까도레로 장소를 옮기는 한편, 그곳에서 부동산 사무소를 만난 우리가 원하는 규모의 단독주택을 문의해 봤다. 일은 생각보다 술술 잘 풀렸다.
치비아나 골짜기에서 만난 한 아주머니와 대화에서 얻은 정보에서 돌로미티에서 살아갈 수 있는 작은 집에 대해 소상히 알게 된 것이다. 우리는 다음날 부동산 사무소에서 제시한 적당한 크기의 집을 알아보기로 하고 다시 근처의 골짜기로 돌아왔다.
그곳은 한 때 증기 기관차가 다니던 기찻길의 다리 밑이었다. 고풍스러운 돌다리가 계곡을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 다리 밑을 통과하면 근사하게 지은 규모가 꽤 큰 집이 다리를 대문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입구는 꽤 넓고 내부는 잘 가꾸어 두었다.
기찻길은 50년 전쯤 폐쇄되었고 옛 기찻길을 따라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었다. 해가 지면 칠흑같이 어두워지는 골짜기에 조성된 산책로.. 시 당국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마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참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나는 그 산책로 아래 다리 밑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산책에 나선 단 두 사람과 동행한 개 한 마리를 만났을 뿐이다.
아무튼 밤이 되면 칠흑같이 변하는 골짜기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산골짜기의 비.. 만약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가을여행은 접어야 했다. 우리는 여전히 야영을 꿈꾸고 있었으므로 우중 야영은 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다리 밑은 자동차 위로 빗방울이 직접 부딪치는 소음을 막아주었다. 맨 처음 자동차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의 리듬은 특별한 감흥을 안겨주었지만, 당초 일정을 틀어버리는 빗방울 소리는 소음에 불과했다. 비는 오락가락했다. 잠시 비가 그친 사이 우산을 받치고 돌다리 위 산책로에 올라서니 산 아래 골짜기는 물론 산 위로 이어지는 골짜기가 한눈에 조망되었다. 흔치 않은 풍광..
돌로미티는 비구름을 몰고 다니며 동양화를 그려대고 있었다. 한 무리의 구름이 골짜기의 숲을 휘감을 때마다 숲의 실루엣이 화선지에 묻어났다. 답답한 차콕을 잠시 자유롭게 만든 것이다. 그 순간들을 하나둘씩 카메라에 담았다. 맨 처음 돌로미티는 수묵화(水墨畫)를 그리더니 그 다믕부터 채색을 입히기도 했다.
우리가 당초 만나고 싶었던 돌로미티의 가을이 빗속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돌로미티는 수묵화 전부를 황칠하듯 먹칠한 다음 새까만 밤을 연출했다. 돌다리 곁 산골짜기를 가던 차량의 불빛마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기나긴 차콕이 날이 밝을 때까지 이어졌다.
돌로미티에 첫눈이 오셨다
대략 새벽 6시에 차코에서 눈을 떴다. 비가 그쳐있었다. 자동차 문을 열고 산골짜기를 올려 보다가 가슴속에 찌릿한 전율이 느껴졌다. 간밤에 먹구름을 이고 있던 돌로미티의 한 봉우리가 새하얀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다. 이틀 동안 우리를 짓누르고 있던 무게가 한순간에 사라지며 가슴속에 환한 등불이 켜진 것이다. 첫눈.. 하늘은 첫눈의 장관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려고 작은 시련을 안겨준 것일까..
까이꺼.. 첫눈이 무엇이길래..
올려다 보고 또 올려다 보고.. 이번에는 돌다리 위 산책길 위로 강아지처럼 뛰어 올라가 먹구름으로 덮였던 골짜기를 바라봤다. 거짓말처럼 수묵화를 그려대던 나쁜 화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마법 같은 설경이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늘의 마법..
밤새 비를 쏟던 하늘은 화선지 위에 새 작품을 선보였다. 이런 걸 짜잔!!~이라고 표현해야 하나..ㅋ
오래된 기찻길로 산책하던 개 한 마리도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을까. 오래전, 유년기를 행복하게 해 준 누렁이는 첫눈이 오시면 천방지축 뒷마당의 새하얀 눈 위를 뒹굴었지.. 질세라 꼬마 한 녀석이 누렁이와 함께 뒹굴었다. 그 꼬마가 장성해서 돌로미티까지 진출할 줄 누가 알았으랴..
기껏 보따리를 챙겨 돌로미티까지 동행한 하니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돌로미티가 그린 동양화 때문에 얼마나 우울했을까.. 날이 밝자마자 우리는 부동산에서 상담한 약속 시간을 기다리며 곧 다가올 꿈에 부푼 것. 하늘은 가끔씩 우리가 전혀 의도하지 않은 일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은 하늘의 몫이라지.. <계속>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02 Otto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