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이탈리아 요리와 돌로미티 여행에도 공통점이 있다..?!!
나는 이탈리아 요리사다. 늦깎이로 요리에 입문했지만 청춘들 만큼 열심히 잘했다고 자부하는 1인이다. 무엇이든 열심히 할 수 있지만 잘할 수 있기란 쉽지 않을 일. 세상살이를 통해 겪은 경험들이 요리를 잘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나 할까. 요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일들은 원리를 터득하는 게 급선무다. 요리의 원리를 터득하게 되면 대상이 프랑스든 중국이든 그 어디든 요리를 꽤 뚫어 볼 수 있게 된다.
내가 요리 공부를 잘했다고 자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게 행운이 따라준 것이며 행운을 가져다주신 분은 이탈리아 현대 요리의 거장 괄띠에로 마르께지(Gualtiero Marchesi) 선생이다. 선생께서는 어느 날 특강을 통해 내 곁에서 나지막한 소리로 이탈리아 요리의 철학을 전수해 주셨다. 그때 당신께서 만드신 요리의 배경을 알게 된 것이며, 현대 이탈리아 요리가 어떤 절차 등을 거치는지 단박에 알게 된 것이다.
선생을 만나기 전에는 오리무중을 헤매던 요리의 세계가 한순간에 밝아지며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분의 요리는 여행을 통해서 빚어졌다. 세상을 주유하면서 만나게 된 절경 앞에서 평소 가지고 다니던 메모장에 기록을 하는 습관을 가진 것이다. 세상을 노트에 담았고 요리 속에 담아내신 것이다. 당신께서 만든 요리는 그렇게 탄생했다. 요리가 아니라 위대한 작품으로 거듭난 것이다.
_NELL'ILLUSIONE DELLE DOLOMITI, AURONZO DI CADORE
*아래 영상을 열어보시면 사진과 다른 감흥을 안겨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눈치채셨는가.. 최근 브런치에 소개되고 있는 돌로미티 여행기도 사진을 좋아하는 내게는 큰 의미가 포함됐다.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절경을 보는 순간 요리의 제목은 물론 요리에 필요한 식재료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장식에 필요한 식재료까지.. 내가 터득한 이탈리아 요리는 선생의 가르침에 따라 간결하다. 군더더기가 없다. 아름답다. 맛있다. 영양가가 높다. 당신의 철학을 요리에 담는다 등이다.(물론 본격적인 이탈리아 요리를 선 보일 기회가 없었다)
우리나라의 한 예를 들면 어떤 음식들은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잃어버리고 손님을 맞이한다. 요리에 들어간 향신료는 물론 양념들이 엄청나다. 어떤 식당에서는 온갖 양념을 다 사용하여 만들었다고 자랑까지 한다. 맛집으로 포장된 그 식당에는 발길이 줄을 잇는다. 사람들은 그 음식이 맛있다고 난리다. 기막힌 양념 맛이라고 한다. 양념이 원재료의 맛을 잃게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 맛있으면 그만이라고 한다. 그분들이 먹은 것은 양념인가 본래의 식재료인가..
우연한 기회에 그 집에서 만드는 돼지고기 양념구이의 리체타를 알게 되었다. 돼지고기는 부위를 알 수 없었다. 이곳저곳을 얇게 저민 고깃살이 값비싼 부위로 둔갑하고 있었다. 이건 약과였다. 리체타에는 식용유에 재운 돼지고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 식당에는 손님들이 득실거려 줄을 서야만 했다. 차림표에 등장한 돼지고기는 순수 우리나라 돼지고기라고 쓰여있었다.
맛을 보니 고소하기는 했다. 그러나 돼지고기 맛은 느껴지지 않고 양념 맛이 진하게 느껴졌다. 이런 정보는 그곳에서 일하시던 한 아주머니가 어떤 일로 그 집에서 일을 하지 못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그 후 돼지고기 구이집은 손님이 줄어드는가 싶었더니 얼마 후에 문을 닫았다.
선생께서 전수해주신 이탈리아 현대 요리의 리체타는 매우 간결했다. 제 철에 나는 식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 식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데 집중을 한다. 따라서 양념이나 향신료는 극히 제한적으로 사용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좋아하는 생선 조기를 요리할 때면 소금이 전부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리스또란떼에서 요리로 제공될 때는 뼈를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제거한 후 요리된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에서 먹던 조기구이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한다. 따로 설명을 곁들이지 않으면 맛을 보고 식재료를 알아맞추어야 할 정도이다. 음식문화는 우리나라와 서로 다를 수 있고, 해산물 요리에 관한 한 우리나라가 최고라 자부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요리에 등장하는 생선 요리는 눈여겨봐야 하며, 선생의 작품에 등장하는 요리를 알게 되는 순간 단박에 반하게 된다. 손님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예약을 해 놓고 달려오는 경우의 수가 여기서부터 발현된다고나 할까..
돌로미티 여행기를 끼적거리면서 이탈리아 요리 일면을 소개해 드리는 것은 다름 아니다. 내가 만난 돌로미티는 이탈리아 요리를 보는 듯하고, 선생의 요리 철학을 담은 듯 아름답고 여행자의 영혼을 맑게 하는 마법이 깃든 것 같았다. 요리가 살을 찌운다면 돌로미티는 영혼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다.
관련 브런치에서 남긴 글 중에 아름다움은 신의 그림자라는 말에 동의하시는가 모르겠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만나는 아름다운 풍광에는 신이 간섭을 한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흔한 비유로 똑같은 물이라도 양이 마시면 젖이 되고 뱀이 핥으면 독이 된다는 말도 있다.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대상의 결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예외의 경우도 있었다. 아름다움이 깃든 대자연을 바라보는 사람은 그곳에 신이 살고 있다고 믿는 것. 브런치 이웃분 중에 추석 명절에 영혼 때문에 부부가 싸웠다는 분이 있다. 남편은 당신이 다니고 있던 교회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동체 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신께선 영혼(神)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조금은 각색한 표현이지만, 요리 세계에서 원재료와 양념 같은 차이가 두 분의 대화 속에 깃든 것이다. 양념이 꼭 필요한 것이 요리라 할지라도 지나치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을 면치 못할 것. 돼지는 돼지고기의 맛을, 소는 쇠고기의 맛을, 생선은 생선의 맛을, 사람은 사람의 맛을,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성품에 따른 맛을 내야 할 게 아닌가. (각설하고..)
사진을 찍을 때는 아름다운 부분을 찾아내며 의미가 깃든 피사체를 카메라에 담는다. 그런데 똑같은 장소를 찾아 출사를 다녀와도 사진이 다르다. 특정인의 개성이 발현된 때문이다. 어떤 작품들은 그렇게 태어난다. 하지만 우리가 혹시나 하고 들어선 아우론조 디 까도레 계곡에서는 피사체를 찾아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어 보였다.
아무 곳이나 눈길을 사로잡는 곳으로 뷰파인더를 대고 셔터를 누르면, 그곳에서 아름다움이 덕지덕지 군더더기 없이 묻어나는 것이다. 새하얀 비단결에 싸인 돌로미티.. 당신의 신부가 이토록 아름다웠을까.. 요리사의 눈에 비친 조물주의 작품 앞에서 호들갑을 떤 행복한 시간이었다.
요리를 먹는 순서는 맨 먼저 눈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다음 순서가 입안이다. 오만가지 맛이 혀를 간지럽힌다. 그리고 넉넉한 영양가가 당신을 살 찌울 것. 돌로미티 여행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 아름다움을 향하고 있다.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꽃단장을 마친 나의 신부 나의 신랑의 모습을 쏙 빼닮았다. 돌로미티가 우리를 가슴 깊이 품어준 때문이다. 점입가경(漸入街境)이란 이런 거..
하니가 돌로미티 속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이곳에 자동차를 주차해 두고 아이들처럼 할아버지 할머니 품 속으로 빠져든 것이다. 짧지만 깊은 돌로미티의 포옹은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까지 그리고 빠쏘 퐐사레고(Passo falzarego)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잠시 하늘의 짓궂은 장난이 예비한 기적 같은 일이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는 거.. 그 느낌 알랑가 몰라..^^ <계속>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06 Otto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