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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17. 2020

사이프러스와 악령

-미켈란젤로의 도시 피렌체의 10월

유독 이탈리아에만 귀신들이 많이 살까..?!!



오랜만에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닮은 이야기를 찾아 피렌체의 10월 풍경을 소환해 봤다. 



피렌체 시내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이곳은 압바찌아 디 산 미니아또 알 몬떼(Abbazia di San Miniato al Monte) 수도원에서 바라본 피렌체의 전경이다. 피렌체는 언제봐도 정겨운 도시이자 아름다운 도시이다. 나는 이 도시를 미켈란젤로의 도시라 부른다. 위대한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발자취가 오롯이 남아있는 곳. 하니와 내가 서 있는 언덕 위에서 피렌체 시내를 바라보면 우리가 걸었던 골목 곳곳에서 추억이 묻어난다. 



우리가 피렌체서 살 때 하니와 함께 걸으면서 발도장은 찍지 않은 곳은 거의 없을 정도였다. 피렌체서 살고 싶었던 원을 풀었다고나 할까.. 나는 그곳에서 미켈란젤로의 소년 시절 환영을 보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한 예술가의 발자취를 떠올리다 보니 그의 발자취가 묻었을 것 같은 장소에 다다르면 어린 녀석이 화구를 짊어지고 여기저기 이곳저곳을 기웃 거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환영(幻影)이란, 감각의 왜곡으로 인하여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나뿐만 아니라 여러분들이 겪고 있었던 일이 아닌가 싶다. 악령(惡靈) 혹은 악귀(惡鬼) 조차 이 같은 범주에 속하지 않을까.. 나 보다 훨씬 똑똑하고 정확한 한글 위키백과를 열어보니 악령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악령(惡靈, Demon, Evil spirit) 또는 악귀(惡鬼)는 종교나 전승신화에서 초자연적 존재로서 일반적으로 심술궂은 영 또는 귀신을 일컫는다. 기독교에서는 일반적으로 하느님을 따르지 않는 천사들을 일컫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다이몬은 신에 가까운 존재 또는 신과 인간과의 중간적 존재를 의미하였다. 이것이 나중에는 인간의 수호령으로서 능력이나 성격 등 인간의 신들린 상태 또는 부분을 나타내는 데 쓰였다. 기독교에서는 악령·악마 또는 이교의 신을 가리키게 되었고, 근대에 와서는 인간의 심리적인 힘, 즉 자기가 지배할 수 없고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상한 행동을 하게 하는 무의식적이고 어쩔 수 없는 심리적인 힘을 데모니셰(Dämonische)라고 표현하였다.



짧게 표현된 악령 혹은 악귀의 정체는 영양가가 별로 안 보인다. 특히 영혼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거나 무지한 사람들이 보면 말 그대로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에 불과하다. 똑똑한 백과사전이 단박에 유저로부터 페이지를 넘기게 할 것이다. 차라리 귀신이 등장하는 많은 이야기를 통해 흥미를 돋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기독교 국가이자 기독교를 멀리하면 불이익을 당하던 중세의 이탈리아에서 조차 귀신은 존재(?)했다. 귀신이 존재해야.. 악령이 존재해야 반대급부적인 설득력을 얻게 될게 영혼의 정체라고나 할까.. 



하니와 내가 서 있는 장소는 피렌체의 역사를 훤히 꽤 뚫고 있는 1,000년 된 수도원이라고 했다. 이 수도원이 생길 때(1018년에 세움)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시작도 하지 않았으며, 미켈란젤로는 태어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곳에 가면 대략 20~30미터는 더 되어 보이는 사이프러스(Cupressus sempervirens) 나무가 수도원을 빙 둘러싸고 있다. 브런치를 열자마자 뾰족한 송곳처럼 보이는 나무의 정체가 사이프러스 나무이자, 세간에서는 이 나무를 귀신을 쫓는 나무 등으로 알려진 것이다. 



이런 풍경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를 여행해 본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풍경이다. 드 넓은 언덕 위에 송곳처럼 서 있는 나무들의 실루엣은 참 아름다운 풍경이자 다른 지역에서 쉽게 찾지 못하는 풍경이다. 피렌체는 토스카나 주의 주도 이므로 피렌체에서도 흔한 나무가 사이프러스 나무이자 이다. 그렇다면 유독 토스카나 주 혹은 이탈리아에만 귀신이 득실거렸단 말인가. 그것도 하느님만 섬기려 속세로부터 단절된 삶을 살아가는 수도원에 사이프러스 나무는 웬 말인가 웬 말인가.. 



하니와 나는 이른 아침에 수도원과 곁에 조성된 묘지를 방문하고 내친김에 주변의 가을 정취를 찾아 발도장을 찍고 있었다. 사방은 조용했다. 파리 모기 한 마리 날리지 않는 조용한 곳. 침묵이 사이프러스 나무 숲 속에 가득했다. 사람들은 이 같은 상황을 '침묵의 소리'라고 말했을까.. 



만약 해 돋는 아침이 아니라 일몰 후의 밤이라며 지금 당장 귀신이 출몰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학습한 바 우리는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는 물론 책을 너무 가까이한 탓에 이런 풍경 앞에서는 곧잘 귀신의 환영을 떠올리곤 하는 것이다. 수도원 곁을 돌아 토스카나 주의 본격적인 풍경이 등장하는 시 외곽으로 발길을 돌리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으나 그 넘의 귀신 환영은 소름을 돋게 만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부채질한 것은 하니였다.



"왠지 으스스해.. 무섭단 말이야. 돌아가..!!ㅜ"



그동안 하니는 말을 아끼고 있었을 뿐 속으로 겁에 질려있었던 것이다. 인적이 드문 곳이 아니라 전혀 없는 낯선 곳. 그것도 침묵의 대명사와 다름없는 묘지와 수도원 곁으로 걷고 있으니 하니의 단말마(末魔)는 나까지 단박에 전염시키며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드는 것이다. 순전히 귀신을 쫓는다는 사이프러스 때문이었다. 이곳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몇 그루만 있는 게 아니라 빼곡한 숲으로 조림되어 있었으므로 귀신들이 얼마나 많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작용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이프러스의 용도는 귀신뿐만 아니라 바람을 막는 방풍림 역할도 했다고 했다. 이것 또한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였다. 이탈리아 요리 유학 당시 둘러본 토스카나 주의 사이프러스는 언덕 위에 듬성듬성 줄지어 서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태풍이 부는 것도 아닌데 웬 방풍림.. 



그것도 밑동이 듬성듬성 바람이 불면 그대로 통과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귀신도 바람도 막아주지 못하거나 효과도 없는 사이프러스의 정체는 시간이 다소 흐른 뒤였다. 사이프러스 숲에 벌레가 꼬이지 않는 현상만으로 사이프러스 나무의 이로움이 드러나는 것. 사이프러스는 우리나라의 금줄(禁绳)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금줄에 대해 다시 똑똑하기로 유명한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을 뒤졌더니 이렇게 말했다.




금줄은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1.5~2㎝ 굵기의 왼새끼를 거친 모습으로 꼬아 거기에다가 여러 가지 상징적인 물건을 꽂은 모습이다. 상징적인 물건들은 용도에 따라 다르다. 출산의 경우 아들을 낳았을 때는 생솔가지·숯·빨간 고추 등을, 딸을 낳았을 때는 생솔가지·숯·종이 등을 중간중간에 끼워 대문의 양 기둥 사이에 매단다. 이 금줄은 출산 후 삼칠일, 즉 21일간 매달아 두었다가 거두어 대문의 한쪽 기둥 쪽에 감아 둔다. 동제를 지낼 때는 당집·당나무 등에는 물론 신역으로 인정되는 모든 공간과 제관의 집 대문에도 금줄을 친다. 이때의 금줄은 새끼줄에 한지 혹은 생솔가지를 매단다. 금줄과 함께 벽사(辟邪, 사악한 귀신을 물리침)의 힘을 강화하기 위해 붉은 황토를 뿌리는 경우도 있다. 또 장을 담근 후 장독 안에다 숯덩이와 붉은 고추를 넣고 뚜껑을 덮은 후 뚜껑 주변에다가 금줄을 친다. 이때의 금줄은 고추·한지·숯 등을 끼운 형태이다. 때로는 한지를 오려서 버선본을 만들어 거꾸로 붙이기도 한다. 그밖에도 술을 담근 후의 술독, 깨끗하게 청소한 뒤의 우물에도 금줄을 친다. 지방에 따라서는 소가 송아지를 낳았을 때 외양간에다 금줄을 치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발도장을 빨리 찍은 것 같다. 어느새 피렌체 시 외곽의 뷔알레 미켈란지올로(Viale Michelangiolo)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침햇살이 토스카나의 숲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곳. 그곳에는 무수한 사이프러스가 서 있었다. 만약 우리가 저곳을 벌건 대낮에 걸었다면 공포심은 덜하거나 없었을까.. 올리브 과수원에는 올리브가 까맣게 익어가고 있었다.



과학이 발달하기 전.. 오래전 사람들은 발효음식을 귀신의 조화 정도로 생각한 적이 있다. 명절 때 술을 담그거나.. 잠시 언급한 바 출산의 경우 아들을 낳았을 때는 생솔가지·숯·빨간 고추 등을, 딸을 낳았을 때는 생솔가지·숯·종이 등을 중간중간에 끼워 대문의 양 기둥 사이에 매달았다. 부정을 타지 말라는 뜻이며 오염원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다. 



장을 담글 때도 그랬으며, 지금은 흔적도 없아 사라진 성황당 곁에서 이런 풍경은 쉽게 발견되었다. 동양과 서양.. 사람 사는 세상에 이런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눈으로 확인이 안 되는 비루스박테리아의 존재를 모를 때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이프러스의 정체가 어떻길래 유독 이탈리아에서 혹은 피렌체나 토스카나 주변에서 많이 눈에 띄는 것일까..



이번에는 사이프러스를 소개하는 위키피디아를 열어 녀석의 정체를 알아봤다. 녀석은 지중해 동부의 이란으로부터 건너왔으며 송곳처럼 뾰족한(피라미드형) 나무의 모양 때문에 페니키아인(Fenici )들과 에트루리아인(Etruschi)들이 장식용으로 선호했다고 전한다.(sarebbe stato importato nel Mediterraneo occidentale dai Fenici e dagli Etruschi per motivi ornamentali dal momento che la sua forma piramidale di alcune varietà è molto caratteristica.) 



그 후, 지중해 서부까지 전파 되었다고 하는 것. 지중해 사이프러스의 높이는 대략 25미터에 이르는 상록수이지만, 50미터가 넘는 것도 발견된다고 한다. 독특한 형태 때문에 특권층이 특권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했다고도 한다. 나무의 질은 매우 단단하고 짙은 향기는 나방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아울러 버섯(박테리아)과 기생충 및 습기에 대해 강했으므로 한 때 선박을 만들 때 사용하기도 했다는 것. 이란에서 발견되는 어떤 사이프러스는 나무 둘레가 18미터에 이르고 나이는 4,000년 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이프러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사이프러스는 지중해성 기후를 좋아하므로 이탈리아의 대표선수처럼 보일까..



이탈리아를 여행하시는 분들은 토스카나 주의 명물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토스카나 주의 주도 피렌체를 '꽃의 도시'라고 부른다. 토스카나 주도 별로 다를 바 없다. 이탈리아의 대표선수나 다름없는(지방에 따라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요리와 포도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아름다운 전원의 풍경 등..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후 맨 먼저 매료된 주가 토스카나 주였다. 그중 피렌체는 내게 르네상스의 고도로 다가온 것 외 각별한 의미를 더해주고 있었다. 조금 전 하니와 함께 서 있던 수도원에서 조금만 발품을 팔면 이탈리아 요리 실습장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리스또란떼 이름은 샬레 폰따나(Chalet Fontana)..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곳이며, 무수한 땀을 흘린 이탈리아 요리의 산교육장이었다.



토스카나 주 혹은 피렌체에서 사이프러스의 정체를 아는 데는 시간이 그리 오래 덜리지 않았다. 이탈리아인들이 선호하는 나무는 우리의 금줄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금줄의 또 다른 모습이자 그야말로 귀신이나 잡귀를 쫓아내는 나무였다. 물론 귀신이나 잡귀는 다름 아닌 효소(酵素) 혹은 효모(酵母)였다. 



토스카나 주의 구릉지역(cima di colle)에 사이프러스가 줄지어 서 있는 그곳은 포도원 뷔녜또(il vigneto)가 있는 곳이자, 포도주 저장고 깐띠나 (cantina)가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그 유명한 키안티(Chianti) 포도주가 생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쉽게 발견되는 포도주가 이곳 토스카나 주에서 생산되며 그곳에 귀신을 쫓는 나무라 불리는 사이프러스가 줄지어 서 있었던 것. 질 좋은 포도주 생산에 깃든 나무는 물론, 현대 이탈리아어의 표준어는 이곳 토스카나 주의 방언을 기초로 오늘날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수도원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며 마침내  뷔알레 미켈란지올로로 진출했다.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사이프러스 숲으로 벗어나는 시간은 꽤 오래 걸린 듯했다. 사람의 왕래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 좁은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는 동안 하니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사이프러스 숲 속에서는 음산한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돌았던 것이다. 차량들이 쉼 없이 오가는 곳. 이곳에서부터 다시 피렌체 중심까지 이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은 족히 넘을까.. 대로로 진출한 우리는 두 번 다시 이곳을 찾지 않았다. 사이프러스가 귀신을 쫓는 효험을 가지고 있을 망정 우리에겐 공포를 떠올리게 한 나무였던 것이다. 



사이프러스라는 이름은 사이프러스(Cyprus) 섬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하며, 이 나무의 주요 성분에는 까레네(Carene 21.5%), 삐네네(Pinene 20.4%) 등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적으로 사이프러스 나무 종이 20종이 넘고 아로마세러피에서 사용되는 오일은 Cupressus sempervirens라는 학명을 가진 나무에서만 추출된다고 한다. 

전설에는 십자가를 이 나무를 이용해서 만들었다고 하며 죽음과 연결 짓고 있었다. 고대 희랍과 로마인들은 이 나무를 묘지에 심었는데 저승의 신 아데스 플루토(Hades Pluto_명왕성)가 사이프러스가 자라고 있는 옆의 궁전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사이프러스와 악령은 친구처럼 따라다니는 것일까.. 비루스가 잦아들어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나시는 분들은 사이프러스를 눈여겨봐 두시기 바란다. 끝!


La Memoria della Citta' di Michelangelo FIRENZE
il 17 Otto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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