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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16. 2020

어떤 강요_強要

#11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아름다움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서기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조금 전 하니의 그림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오늘 수업을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하니와 나는 수업이 끝나면 으레 그날 수업에 나타난 현상 등을 이야기하곤 한다. 잘했던 점과 잘못한 이유 등을 통해 문제점을 찾고 개선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수업이 진행될 때도 동시에 나누는 이야기지만 가능한 한 현장에서는 말을 아끼게 된다. 


또 현장에서는 비판보다 칭찬의 횟수를 늘리려 애쓴다. 그림 선생님 루이지의 수업 방침도 주로 그러하다. 그러면서 비빔밥처럼 섞어서 할 말은 다 하는 것이다. 그런 한편, 칭찬이 과할 때 나타나는 현상까지 설명한다. 당신은 기분이 좋겠지만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살아오는 동안 쌓이고 굳은 몸가짐이 마음가짐까지 침범한 사례라고나 할까. 



하니에게도 나쁜 버릇이 수업시간에 자주 나타난다. 그 나쁜 버릇이란 다름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수입(?)된 그림 수업의 결과 때문이었다. 그건 학생들의 잘못 보다 그림 선생님의 마음가짐 혹은 우리나라의 그림시장의 풍토 또는 사조 때문이었다. 그 사례를 지인의 경우의 수에 대비해 봤다. 


우리가 잘 아는 지인의 집은 매우 넉넉하다. 빌딩을 가지고 있는 그녀는 월세만으로도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수채화 바람(?)이 들어 하니와 같은 선생님으로부터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하니의 선배이지만 나이는 더 어렸다. 비슷한 또래의 그는 정말 열심이었다. 수채화에 거의 미쳐 살았다. 


하니가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다면 그녀는 달리기 선수나 다름없었다. 누가 봐도 그녀의 그림 솜씨는 뛰어났다. 그녀의 작품은 전시회에 출품이 되는 즉시 큼지막한 상을 타는 것이다. 하니의 롤모델이 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롤모델의 신화는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그림 시장의 풍토가 점점 더 밝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녀가 출품한 그림은 최종적으로 그림 선생님의 재가를 거쳐야 했다. 재가(裁可)란, 제자가 그린 그림의 부족한 부분을 수정하거나 덧입히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 심사위원들이 꼬투리를 잡을 수 없는 완벽한 작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입상한 작품의 대가는 그림 선생님에게 치러지고, 심지어 심사위원들에게도 치러지는 것이다. 한통속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런 과정 등을 거쳐 모 협회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심사위원이 되면 당신이 걸어왔던 과정을 걷고 있는 화우들의 길라잡이가 되어 그녀와 같은 길을 걷게 만드는 것이다. 힘들게 얻게 된 여가선용이 점점 더 비뚤어진 길을 걷게 되는 것이며, 누군가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풍토가 만연된 사회가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업계(?)에서는 출품한 작품만으로 누구의 문하생인지 단박에 알아차리는 것. 그가 친구라면 당신이 출품한 작품에 대해 "나 몰라라"라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은 등 뒤에서 이런 작품을 '공장 그림'이라고 말한다. 공장에서 자동공정으로 찍어 만든 그림이란 말이다. 무서운 비아냥거림이자 동종업계에서는 알려진 비밀이나 다름없다. 


그런 그녀가 어느 날 하니와 통화를 하며 놀라운 사실을 알려왔다. 그녀는 그동안 애지중지 해 오던 협회의 일을 때려치운 것은 물론 "두 번 다시 수채화를 그리지 않겠노라"라고 선언하며 즉시 배를 갈아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이 시간 수채화를 집어치운 대신 유화를 그리고 있다고 덧붙여 말했다. 10년 공부가 허사로 끝나게 된 것이며, 10년을 허송세월로 보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경우의 수를 누가 보상한다는 말인가.. 누구에게 사기 피해를 당한 것도 아니고 당신의 선택이 그런 결과를 이끌게 된 것이며, 그림 선생님은 물론 이웃의 그 누구도 보상해 줄 수 없는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누구를 탓할 일도 탓해서도 안 되는 일이 백주에 10년 동안 벌어졌던 것이다. 아름다움의 미끼에 걸려든 어리석은 사람들.. 


그들은 당신의 여생을 이름답게 보내고 싶었지만, 결과적으로 예술세계에 깃든 이단자로부터 추한 몰골로 변질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가 갈아탄 유화의 세계는 달라질까.. 보나 마나 사상 루각에 불과할 것이란 게 나의 판단이다. 왜 그럴까.. 


하니의 그림 수업 중 혹은 수업이 끝난 다음에 나누게 되는 반성은 이 같은 폐해를 줄여나가거나 없애기 위함이었다. 또 루이지는 수업 도중에 "차근차근히 정확하고 신중하게"를 늘 강조한다. 그는 작품의 사상 루각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 기초공사가 부실하면 장차 쌓아 올릴 빌딩은 다시 짓게 된다는 말이다. 헛수고를 하지 말라는 말이다. 브런치에 가끔씩 끼적거린 예술에 대한, 예술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작품 등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한 마디로 일축해 주신 분이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이었다. 그녀는 <예술가의 십계명>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예술가의 십계명 

-가브리엘라 미스뜨랄 


첫째우주 위에 존재하는 신의 그림자인 아름다움을 사랑하라. 

둘째, 무신론적 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주를 사랑하지 않을지라도 그와 유사한 존재를 만들어 놓고 그를 섬기라.

셋째, 아름다움을 감각의 미끼로 주지 말고 정신의 자연식으로 주어라.

넷째, 방종이나 허영을 위한 구실로 삼지 말고 신성한 연습으로 삼아라.

다섯째, 잔치에서 너의 작품을 찾지도 말 것이며 가져가지도 말라. 아름다움은 동정성이며 잔치에 있는 작품은 동정성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너의 가슴속에서 너의 노래로 끌어올려라. 그러면 너의 가슴이 너를 정화할 것이다.

일곱째, 너의 아름다움은 자비라고 불릴 것이며 인간의 가슴을 기쁘게 해 줄 것이다.

여덟째, 한 어린아이가 잉태되듯이 네 가슴속 피로 작품을 남겨라.

아홉째, 아름다움은 너에게 졸림을 주는 아편이 아니고 너를 활동하게 하는 명포도주다.

열째, 모든 창조물 중에서 너는 수줍어할 것이다. 너의 창조물은 너의 꿈 보다 열등했으며 동시에 경이로운 신의 꿈인 자연보다도 열등하기 때문이다.



가브리엘라 미스뜨랄의 <예술가의 십계명> 원문을 참조하면 단 한 자도 버릴게 없다. 다만 위에 언급된 그녀의 노래 속에서 붉은색으로 바꾸어둔 계명은 특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 그림을 그리거나 예술활동을 하는 분들이나, 아름다움을 동경하고 추구하는 분들에게는 보석 보다 더 귀한 말씀일 것이다. 만약 이 포스트를 읽는 분 중에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지시거나 아름다움을 발견하시는 분들은 신이 당신과 함께 한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십계명 중 첫 계명에 신의 그림자가 아름다움으로 나타난 것이라 했으므로, 당신은 신과 함께 동행하는 선택받은 자라는 말이다. 돌로미티에 첫눈이 오시던 날, 하니와 나는 아이들처럼 좋아했다. 하필이면 그때 돌로미티 마가목의 붉은 열매가 운치를 더해주었다. 그건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신의 간섭이 있었다고 하면 고개가 끄덕여질까.. 포스트에 사용된 사진은 해상도가 더 뛰어난 카메라에 잡힌 돌로미티 첫눈의 풍경이다.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16 Otto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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