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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18. 2020

첫사랑과 첫눈

#12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첫사랑이 이랬을까..?!!



첫 자로 시작하는 낱말
첫사랑, 첫 데이트, 첫 경험, 첫 키스, 첫날밤, 첫 수업, 첫차, 첫돌, 첫눈, 첫 출항, 첫 비행, 첫 만남, 첫 사고, 첫째, 첫 화면, 첫 월급, 첫 우승, 첫 패배, 첫 장, 첫 편, 첫 화면, 첫추위, 첫인사, 첫아기, 첫울음, 첫 젖, 첫맛, 첫날, 첫마디, 첫아기, 첫손가락, 첫술, 첫인상, 첫서리, 첫출발, 첫음절, 첫 딱지, 첫말, 첫자리, 첫대목, 첫해, 첫판, 첫 옹알이,..
하니와 나는 아우론조 디 까도레로 향하던 길 옆으로 늘어선 첫눈의 풍광 때문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돌로미티의 첫눈 삼매경으로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이틀 전, 우리는 이탈리아의 한 고속도로 위에서 들불 화재로 인해 변을 당할 뻔했다. 그런데 우리 앞에 신세계를 예비한 조물주의 마법 깊숙이 발을 들여놓으며 첫 경험의 단맛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점입가경.. 황홀경은 계속되었다.


지난 여정 어떤 강요_強要에서 이렇게 말했다. 첫 자로 시작하는 낱말 중에 맨 먼저 떠오른 게 첫사랑이었다. 브런치 이웃 분 중에 루씨 작가님은 '첫 옹아리'를 추가해 주셨다. 당신께서 낳은 아이의 첫 옹아리가 떠 올랐던 것도 첫사랑과 다름없어 보인다. 여자 사람으로 태어난 후 처음으로 엄마가 되는 기쁨은 당사자밖에 모른다고 한다. 이때부터 여자 사람은 위대한 모성을 지닌 엄마로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엄마들이 주로 그러하다. 그렇다면 첫사랑의 느낌은 도대체 어떠하길래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앓이를 하게 만드는 것일까.. 



실비단에 싸인 첫눈




   하룻만에 일어난 일이다. 하니와 나는 지난 9월 27 오전 9시경, 치비아나 디 까도레(Cibiana di Cadore)에서 깔랄소 디 까도레(Calalzo di Cadore)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현지 부동산 시세 등을 알아본 후 다시 아우론조 디 까도레(auronzo di cadore)로 향했던 것이다. 이틀 동안 궂은 날씨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날 아침 돌로미티에 내린 첫눈을 만난 것이다. 



따라서 볼일이 끝나면 돌로미티의 자연경관을 둘러볼 요량으로 아우론조 디 까도레로 이동한 것이며, 우리는 이때부터 돌로미티 첫눈 삼매경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눈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건만 이때부터 자동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도로 가장자리에 거의 주차를 해 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였다. 세상을 살 만큼 살았건만 나이는 첫눈 앞에서 족도 쓰지 못했다. 누군가 우리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었으면 철없는 아이들처럼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모습을 빼닮았다고나 할까.. 



오늘 포스트는 비단결에 싸인 돌로미티의 첫눈을 첫사랑의 감흥에 살짝 비교해 봤다. 눈도 시리고 가슴도 시린 첫사랑의 느낌은 여전히 가슴에 남아있고 죽을 때까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육신이 삶을 다 해도 영혼에 달라붙어 영원히 나를 따라다닐지도 모를 일이다.(그랬으면 좋지! ^^) 



우리 앞에 펼쳐진 광경들은 때 하나 묻지 않은 첫눈이자 겨우 가을빛이 물든 침엽수가 첫눈과 어우러져 묘한 실루엣을 연출하고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풍경.. 당장이라도 만져보고 싶고 입에 넣어보고 싶은 황홀한 풍경들. 라틴어의 명언 중에는 사랑은 눈물처럼 눈에서 떠올라 가슴으로 진다(Amor, ut lacrima, ab oculo oritur, in pectus cadit)는 말이 있다. 눈도 시리고 가슴까지 시린 것도 그 때문이었을까..



첫사랑과 첫눈


어느 날 첫사랑 그녀는 내게 러브레터를 보내왔다. 분홍색 편지봉투에 분홍색 편지지.. 그리고 깨알 같은 글씨는 녹색 잉크를 사용했다. 그 편지는 학교에서 돌아온 직후 형수님이 웃으면서 "도련님, 편지 왔어요. 한턱내셔야겠네요"라며 내게 건네주었다. 편지 내용은 이랬다.



"근 씨.. 지금은 00시간이에요. 선생님은 칠판 앞에서 열심히 떠들고 계시는데 나는 근 씨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요. 내가 싫어하는 과목이기도 하지만, 근 씨 때문에 수업이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요. 지난 주말 우리가 만났던 그 공원의 풍경은 잊을 수가 없어요..(중략)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작은 집에서 아이들 둘만 낳고 알콩달콩 살고 싶어요..(하략)"



그녀는 나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면 누구의 할머니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해외로 진출한 이후 연락이 뜸하자 친구 녀석의 차지가 됐다. 나는 그녀의 손만 잡아봤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기럭지 168센티미터, 약간은 가무잡잡한 얼굴에 뛰어난 미모에 날씬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친구와 결혼을 앞두고 내가 부재한 집으로 찾아와 나의 안부를 물었다고 귀국 후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당시 중미 카리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첫사랑의 운명은 여기까지였다. 착하고 말 수가 적은 그녀가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큰 마음먹고 정성 들여 끼적거린 편지는, 어느 날 축문처럼 소지(燒紙)되었다. 그러나 재가 되어 하늘로 사라진 그 편지는 여전히 내 가슴속에 또렷이 남아 기억을 일깨우는 것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첫사랑의 감정은.. "사랑은 눈물처럼 눈에서 떠올라 가슴으로 진다"는 명언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가 만난 돌로미티의 첫눈이 그런 느낌이라면 비유가 적절할까.. 하니와 나는 돌로미티의 상징처럼 불리는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의 위용이 드러나 보이는 라고 디 미주리나(Lago di Misurina) 호수 근처까지 당도했다. 



호수 주변으로 백설기 가루처럼 흩뿌려 놓은 첫눈의 실루엣은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자 누군가 실비단으로 포장한 후 우리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듯한 풍경이었다. 먼 길을 찾아온 귀한 손님에게 건네주는 환영의 꽃다발이 눈을 소복이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다. 포장지는 열어보나 마나.. 



서기 2020년 10월 18일 현재, 미주리나 호수 주변은 온통 설국으로 변했다. 새하얀 눈이 무릎 이상까지 쌓여있는 모습이 커뮤니티에 올라와 있는 것. 첫눈과 첫사랑의 연결 고리와 전혀 다른 모습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첫눈이 첫사랑의 애틋함을 품고 있다면 무릎 이상 쌓인 눈은 세상만사를 통달한 닳고 닳은 어르신을 닮을 모습이랄까.. 


위 자료사진 미주리나 호수 뒤편으로 우리가 이동해 온 계곡이 위치해 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다.


첫사랑의 그녀가 생존해 있다면..이라는 가정은 그렇게 다가오는 것. 참 발칙한 상상이자 서운함 이상이 세월에 묻어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사랑을 떠올리게 된 행운은 순전히 첫눈 때문이 아닐까.. 세상에 부대끼는 동안 바짝 메마른 삶에 촉촉한 감성의 촉매제가 하늘에서 흩뿌려지며 굳은살처럼 단단히 굳은 가슴을 말랑말랑 녹이고 있는 것.



이날 미주리나 호수 선착장 곁에 주차를 해 두고 처음으로 허기를 달래며 커피를 마시며 몸을 데웠다. 주변에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첫눈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모습들. 뜨레 치메로 가는 길 가장자리는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 그들 트래킹족들의 표정은 돌로미티에 쌓여가는 첫눈처럼 밝았으며 생동감으로 넘쳐났다. 



누군들 이런 풍경 앞에서 뒷짐을 지고 우울해할까.. 너무 좋아한 풍경이다.



아마도.. 아마도 이런 풍경을 선물 받은 사람들은 하늘의 도우심이 반드시 필요했을 것. 하늘의 선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미주리나 호수를 지나 라고 단또르노(Lago d'Antorno)에 이르자 여태껏 보지 못한 절경이 다소곳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늘과 산과 사람.. 우리는 돌로미티의 진정한 아름다운 늪에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이날 하룻만에 일어난 일이자 가슴에서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풍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18 Otto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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