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Oct 31. 2020

도 아니면 모

#29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사노라면 이런 일도 생긴다..?!!




우리는 잠시 후 차마 되물릴 수 없는 기로에 서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 보고 있었다. 트래킹을 여기서 멈추어야 하나 아니면 계속 이어져가야 하나.. 하는 중대 갈림길에서 우리가 쓸 히든카드는 없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힘겨운 트래킹이 포기를 하지 못하게 귓속말로 자꾸만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상을 코 앞에 두고 차마 물러서지 못하고 우리는 점점 더 수렁 깊숙이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보다 더 용감했던 일은 잠시 후에 일어났다. 거의 수직에 달하는 암벽이 우리 앞에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갖춘 건 등산용 장비라고 말할 것도 없다. 하니는 두 개의 나무 작대기.. 나는 한 개의 나무 작대기가 전부였다. 누가 이럴 줄 알았나..ㅜ


지난 여정 제 발로 빠져든 깊은 수렁 편에서 이렇게 끼적거렸다. 우리는 초행길의 돌로미티 트래킹에서 아는 정보란 전무했다. 그저 사람들이 이동하는 곳으로 발을 옮길 뿐이었다. 먼발치 산기슭에서 바라본 거대한 바위산 꼭대기로 산길이 이어질 줄 몰랐으며 적당한 거리를 이동하면 다시 알또 바디아(Alto Badia) 쉼터로 돌아갈 작정이었다. 그런데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돌로미티 노랑꽃양귀비를 따라 걷는 동안 차마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깊숙한 곳까지 발을 들여놓은 것이다. 



도 아니면 모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지나왔던 길은 거대한 돌더미에 가려 보이지 않고 겨우 코 앞만 바라보고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지난겨울에 내린 돌로미티 만년설(?)이 우리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닮은 괴이한 형상의 만년설..  고도를 올려보니 그의 입은 하트 모양이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은 비늘로 덮여있었으며 두 손은 돌로미티 깊숙이 박아두었다. 나는 조금 전 그가 걸친 비늘 옷 위로 걸음을 옮겼다. 8월의 햇살에 곁을 준 그의 비늘은 폭신폭신했다. 돌 섞인 딱딱한 길에서 느끼지 못한 묘한 느낌이 등산화 아래로부터 전해져 왔다. 



고도를 조금 더 올리자 우리가 걸어온 길이 저만치 아래로 까마득하게 보였다. 올려다보니 정상이 코 앞에 위치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우리가 정상을 향해 가는 동안 정상에서 하산하는 연인을 만났다. 그들의 장비에 비하면 우리는 거의 맨발에 맨손이나 다름없었다. 장비라 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정상이 코 앞에 다가왔는데 물러설 수 있나.. 될 대로 되라지 뭐.. 하니와 나는 도 아니면 모의 심정으로 사람들이 발을 들여놓은 정상으로 향했다.



다시 뒤를 돌아보니 괴이한 형상의 만년설이 눈을 찡긋 가리며 웃고 있었다.(별일이야! ^^) 녀석의 입은 하트로 변하며 웃고 있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까마득하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트래킹이 등산으로 변하며 우리를 압박하고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그동안 몸이 풀려 피곤한 기색은 사라지고 정상에 오를 생각만 하고 있는 것. 우리 앞에 놓인 난관은 잠시 후부터 시작되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하니와 나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사람들이 발길을 옮기는 길을 따라 걸을 뿐이었다.



흙과 돌이 뒤섞인 등산로.. 길은 점점 더 형채를 잃고 있었다. 우리네 삶도 이러할까.. 사노라면 한 치 앞도 분간하지 못할 때가 적지 않았지.. 그때마다 지식보다 운칠기삼(運七技三)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게 아닌가. 하늘의 도우심.. 천지신명의 도우심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 초행길의 돌로미티 트래킹이 그랬으며 우리 앞에 놓인 장애물이 그러했다. 지내놓고 보면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어려운 상황을 맞이하면 "이제 끝장이구나"싶은 생각도 들지 않을까.. 



고도를 조금씩 높이는 동안 뒤를 돌아보니 재밌는 현장이 포착됐다. 애완견을 데리고 온 한 부부에게 생긴 일.. 뒤따라 오던 녀석이 주인의 뒤를 쫓지 않고 지 맘대로 경로를 이탈한 것이다. 주인이 "개똥아" 하고 이름을 부르며 내려오라고 해도 녀석은 들은 채 만채 제 자리에 서 있다. 녀석도 겁을 먹었을까..



두 사람이 개똥이에게 다가가도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면 녀석은 어떻게 데려와야 할까..



그 사이 하니는 두 의 나무 짝대기에 의지해 힘들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 안다. 산행길에서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 생긴다. 당신의 몫은 당신이 챙겨야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산중에서는 마실 물 조차 구걸할 수 없다. 아니 구걸하면 안 된다. 초행길의 돌로미티에서 트래킹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그 흔해빠진 등산복은 당연히 챙겨 왔을 테지만 스틱도 두고 왔고 등산복까지.. 달랑 등산화만 챙겨 온 것이다. 우리네 삶과 쏙 빼닮은 산행길.. 우리는 점점 더 도 아니면 모를 향해 발길을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잠시 뒤를 돌아보니 개똥이는 주인의 손에 구출되어 우리가 온 길을 뒤따라 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고 했던가..ㅋ 우리 또한 개고생을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죽기 전에 돌로미티의 비경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지나온 길을 다시금 뒤돌아 보니 돌아갈 일이 걱정될 만큼 아득하다. 그러나 여행은 돌아갈 수 있는 집이라도 준비되어있지만, 우리네 삶은 두 번 다시 물릴 수 없는 것. 연습도 없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다. 그저 회한만 남아있을 뿐이지.. 그러니까 산행이 제 아무리 힘들어도 걱정이 안 되는 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쉼터가 있기 때문 아닌가.



고도를 좀 더 높이자 돌로미티 노랑꽃양귀비는 점차 자취를 감추고 바위 덩어리가 태곳적 시간을 껴안은 채 우리를 맞이한다. 우리는 잠시 스쳐가는 바람이지만 만세토록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조물주는 돌로미티를 조각하고 남은 돌이나 흙 한 점 조차 버리지 않고 작품 곁에 쌓아두었다. 그곳에 돌로미티 풀꽃들이 살아가고 었던 것이며 돌로미티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돌로미티 여행기를 끼적거리는 동안 함께 동고동락했던 하니는 이탈리아에 없다. 지난 25일 자 독일의 프랑크 프루트 공항에서 코로나바이러스를 피해 한국으로 피신한 상태이자 겸사겸사 볼 일을 보고 돌아올 예정이다. 동고동락한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은 별로 반가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하니의 이탈리아 입국은 꽤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가을이 가고 또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거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므로 의지와 달리 체력이 약한 하니는 따뜻한 계절이 돌아와야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을 것. 돌로미티에서 살아가는 풀꽃들의 사정도 그러할까.. 


돌로미티에 자생하고 있는 풀꽃들은 유월이 돼야 겨우 꽃잎을 내놓고 8월을 정점으로 동면에 들어간다. 우리는 녀석들을 그때 만났으며 하니가 다시 돌아오는 날 또한 그 시간에 맞추어져 있다. 산행은 도 아니면 모라 할지라도 우리네 삶은 함부로 결정할 일은 아닌 것.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때 하늘을 올려다보는 심정으로 하니를 기다린다.



돌로미티 여행기를 끼적거리는 지금 한국 시간을 들여다보니 '시월의 마지막 밤'이 있는 날이네.. 언제인가 하니와 함께 만추의 구룡령에서 하늘을 올려다봤지. 그날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으며 은하수가 우산처럼 덮여있었지. 왜 하필이면 그때가 생각나는 거야.. 우리에게 잊힌 계절은 없어야 하겠지. 꼭 그렇게 돼야 해..!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il 31 Otto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돌로미티의 속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