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하늘의 간섭이 없었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우리는 이날 아침, 치비아나 디 까도레(Cibiana di Cadore)를 출발해 볼일을 본 다음 아우론조 디 까도레(auronzo di cadore)로 향했던 것인데 첫눈에 마음이 빼앗겨 뜨레치매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바로 코 앞까지 진출한 것이다.
위 여정이 그려진 자료사진을 참고하면, 불과 71킬로미터 남짓한데 우리가 담아온 첫눈의 풍경은 실로 방대한 것이다. 귀한 풍광 때문에 느리게 가다 서다를 반복했으며, 계곡 좌우로 펼쳐진 풍광들이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난생처음이었다.
브런치를 열자마자 표지 사진 아래 삽입된 풍경이 돌로미티의 대표선수 뜨레치매 디 라바레도의 웅장한 모습이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에서 일면 소개해 드린 바 있다. 위 자료사진에서는 일부분으로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자 첫눈이 베일을 두른 신비스러운 형상이다. 해발 높이 2,999미터에 이르는 세 봉우리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히 절경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것.
우리가 여기까지 진출한 것은 본래의 목적과 전혀 달랐다. 우리는 이번 여정은 돌로미티에서 살 수 있는 집을 찾아 나섰다가 허탕을 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시작은 지난 9월 24일이었으며, 우리는 빠쏘 치비아나(Passo Cibiana) 골짜기에서 이틀 동안 내린 비가 개이기를 기다렸다가 봘레 디 까도레(Valle di Cadore)를 찾아갔던 것이다. 그리고 첫눈의 베일에 싸인 돌로미티에 푹 빠져 전혀 예정에도 없던 여정을 이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가 대략 2020년 9월 26일 오후 1시경 쯤이었다. 잘 닦아둔 면경처럼 해맑은 돌로미티에 실바람이 불고 있었다. 하니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메라를 들고 첫눈 삼매경으로 빠져들었다. 들었었다. 그리고 지난 10월 25일 자 하니는 이탈리아의 코로나비루스를 피해 한국으로 떠났던 것이다. 참 아쉬운 일이 우리를 갈라놓은 것.
하니가 한국으로 떠나는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 보였다. 누군가 억지로 떠미는 듯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이 프랑크 프루트 공항에 남아있었다. 다행히 하니는 무사히 한국에 도착했고 방역당국의 안내에 따라 당분간은 방콕을 하며 지내야 하는 것. 당신이 남기고 간 숙제(?) 때문에 전화기 너머에서 하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가면 이번에는 꼭 돌로미티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싶어..!"
우리는 뜨레치매 디 라바레도가 코 앞에 빤히 보이는 라고 디 미수리나 호수(Il lago di Misurina) 앞에서 잠시 망중한을 달래며 눈 잎에 펼쳐진 첫눈의 장관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 전혀 예상 밖의 일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나는 이런 일들이 그저 된 게 아니라 하늘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 여기고 있다. 자연의 한 현상을 두고 특정인에게 부여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면 착각도 유분수지 싶을 것.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런 일은 그저 얄팍한 지식으로 치부할 게 아니었다. 우리가 잘 아는 메시아의 등장도 지식으로 설명할 일은 더더욱 아닌 것.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그들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십자가에 매다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질렀지 않은가.
하늘의 일과 사람의 일이 이토록 차이가 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눈(雪)을 가리켜 기상 현상의 한 종류로 기온이 섭씨 0℃ 아래로 떨어져, 구름 안의 물입자나 대기 중의 수증기가 얼어서 결정화된 것이라 말하는 것. 인간은 이미 조물주의 영역 이상을 탐하며 신비로움 속에 가두어 두었어야 마땅할 희망마저 모두 날려버린 꼴이랄까.
현대인의 불행은 인간의 지성이 감성을 꼭꼭 눌러 두고 있는 데서 비롯되며, 이 같은 현상은 율법과 제도에 갇힌 외눈박이와 무엇이 다른가. 현대인은 철저히 정형화된 사회 속에서 매우 규칙적으로 살다가 어느 날 삶을 마치는 것. 인생의 수레바퀴는 얼마나 허망한가.. 이런 세상에서 기적(奇蹟) 운운하면 또 얼마나 시큰둥해할까..
오늘은 서기 2020년 11월 초 하루.. 하니가 한국으로 떠난 후 나는 잠시 우리네 삶을 뒤돌아 보고 있다. 어느 날부터 시작된 세계여행은 우리가 금수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니었다. 먼 나라 먼 길을 떠날 때 비용을 함부로 낭비하지 았았으며, 청춘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배낭여행을 일삼았다. 여행지에서는 비용을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서 흥정에 흥정을 반복했다. 주로 민박집을 이용했으며 취사도구까지 챙겨 다녔다. 물론 카메라는 반드시 챙겼다.
이렇게 힘든 여행을 가능하게 했던 건 외국어가 한몫 거들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이탈리아어 외 스페인어 중국어가 여행길에 동참했다. 미안하지만 영어와 일어는 일찌감치 팽개쳤다. 정치적 이유가 포함됐다. 따라서 이탈리아 현지에서 누군가 영어로 물어오면 이탈리아어로 답하는 엉뚱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탈리아인들이 머쓱해했다. 그러나 그 마저도 다 버리고 현재는 다시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고 있다.
머릿속 일부를 포맷시키고 그 공간을 감성의 공간으로 남겨두는 나름의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메마른 가슴을 보다 촉촉하게 만들고 싶은 것. 이탈리아어를 계속 공부하고 있는 이유는 다름 아니다. 힘들게 배운 도둑질(?)을 죽을 때까지 지키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 동고동락해준 하니에게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생각 간절한 것.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사랑의 힘(The Power Of Love)이라는 노랫말을 잘 따져보면 기적이 어디서부터 발현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왔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랑의 힘. 기적은 그렇게 우리 곁을 맴돌지 았았을까.. 반면에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최고의 선물을 곁에 두고 감동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또 얼마나 슬퍼할까.. 돌로미티에 내린 첫눈은 하니와 별리를 예고한 하늘의 배려인지.. 오늘따라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Primo Nov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