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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16. 2020

차창에 비친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

#7 너무 길었던 별리 여행

그녀가 돌아오시면 다시 가 보리다..!!



실로 끔찍한 경험이었다. 불과 사흘 만에 대략 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를 고속 주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행길이었지만 고속 주행 중에 만난 이정표의 중요한 지점을 기억해 내고 있었다. 공항을 출발하면 첫 번째 목적지인 스위스와 독일의 국경지역인 바셀(Basel_Canton Basilea Città)까지 갈 예정이었다. 당초 생각대로라면 하니를 떠나보낸 후 독일 혹은 스위스에서 일주일 정도 천천히 여행을 다녀올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기분도 울적하고 고속도로에서 바라본 만추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던 것이다. 그러나 하니를 떠나보낸 직후 마음이 달라졌다. 다시 바를레타의 집으로 돌아가 봐야 절간만큼 정적이 흐를 테지만, 잠시라도 우울한 장소에 더 머무르고 싶지 않었던 것이랄까.. 참고로 위에 삽입해 둔 지도에 내가 달려온 노선이 잘 그려져 있다. 300킬로미터가 더 되는 길이다. 아우토반을 모델로 1968년에 건설한 우리나라 경부 고속도로(416 km)를 참조하면 이해가 쉬울까.. 



지난 여정 아우토반의 시속 150km 너무 평범 본문에 이렇게 썼다. 힘든 여정이자 우울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당초 내 생각은 하니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후, 스위스나 독일에서 대략 1주일 정도 머물다 바를레타로 돌아가고 싶었다. 먼길을 달려와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느니 기분 전환도 할 겸 잠시 여행을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중간 기착지인 바셀에 도착한 직후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차창에 비친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




나는 스위스의 2번 고속도로를 달려야 했지만 갈래길에서 8번 고속도로 쪽으로 잘못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직진을 하지 않고 우회전을 하여 램프를 빠져나간 것이다. 그런 직후 램프를 빠져나간 직후 고속도로에서 처음 마주친 마을의 램프로 다시 진입했다. 



그때 만난 마을이 ALPNACHSTAD라는 곳(위 자료사진과 링크 참조)이었다. 포스트에서 만나고 있는 풍경은 이때부터 기록에 남긴 것들이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오시는 날 자동차 안에서 주로 찍은 사진이므로 화질은 별로지만, 당시의 내 마음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들이랄까.. 하늘은 내 속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비를 뿌려주시고 쉼을 허락하셨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자동차 속도는 매우 느리게 느리게 진행되고 있었다. 만추의 풍경이 촉촉이 젖어있는 곳. 길바닥 위 켜켜이 떨어진 울긋불긋한 단풍잎 외에는 휴지 조각 하나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마을은 깨끗했다. 낯선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잠시 쉴 곳을 찾다가 고속도로 아래 굴다리를 향해 전천히 이동했다. 아침나절이고 비가 오시는 날이었으므로 인적이 드물었다. 가끔씩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몇 사람을 제외하면 이방인 한 사람이 전부나 다름없었다. 



굴다리를 통과하니 꽤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자동차는 좁은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곳에 강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후 그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 (위 링크에서 확인되는 것처럼) 그곳은 호수의 한 모퉁이였다. 사방은 온통 불을 켜 둔 것처럼 환했다.



비에 젖은 수채화 같은 풍경들이 사방에 널려있는 가운데 호수 위로 비가 오시고 있었다. 가끔씩 철새가 날아다니고 가는 바람이 갈대를 파르르 떨게 하기도 했다. 그러한 잠시 나는 자동차를 호숫가에 주차해 두고 작은 파라솔에 의지한 채 천천히 호수 한쪽을 둘러봤다. 



호수 위에는 오리들과 고니들이 비를 맞으며 느리게 유영하고 있었다. 불과 이틀 만에 나는 혼자가 되어있었다. 당분간은 혼자 살아가야 했다. 누군가 함께 비에 젖은 만추를 바라본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자 축복받은 게 틀림없어 보였다. 나는 다시 자동차로 돌아왔다. 시동을 걸어두고 의자를 뒤로 젖혔다. 차 앞 유리에는 빗방울이 맺혀 전방을 주시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눈을 감고 차콕에 들어갔다. 



차창 밖은 여전히 빗소리가 추적거렸다. 아무도 모르는 공간.. 누군가 먼 길을 떠날 순간을 맞이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우울이 극도로 치민 상태의 심정이 어느 호숫가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하니를 생각하고 있었다. 프랑크 프루트 공항에서 손을 흔들며 저만치 멀어져 간 그녀 때문에 비에 젖은 들판 어느 호숫가에서 별리의 슬픔에 젖어있는 것이다. 생전 이런 느낌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기다림.. 누군가의 가을 노랫말처럼 그녀는 가을을 남기고 떠났다. 겨울은 아직 오지도 않았다. 봄은 너무 먼 데있는 것.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니가 언제인가 돌아오시면 다시 이곳을 돌아오고야 말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바라보는 만추의 풍경이 두 사람이 함께 한다면 감동은 배가될 것이다. 그러나 그때가 언제일까.. 요즘 가끔씩 듣는 옛날 노래가 있다. 한 때는 잘 듣지 않던 6070 노래인데 자주 듣게 되는 것이다. 가수 성재희 씨가 불렀던 보슬비 오는 거리..



보슬비 오는 거리

-성재희


보슬비 오는 거리에                                            Sulla pioggerellina della strada

추억이 젖어들어                                                I ricordi sono bagnati

상처 난 내 사랑은 눈물뿐인데                              Il mio amore spezzato è solo lacrime

아- 타버린 연기처럼                                           Ah, come il fumo bruciato

자취 없이 떠나버린                                            Lasciato senza lasciare traccia

그 사람 마음은 돌아올 기약 없네                          Il suo cuore non ha alcuna promessa di tornare



보슬비 오는 거리에                                              Sulla pioggerellina della strada

밤마저 잠이 들어                                                 Anche la notte si addormenta

병들은 내 사랑은 한숨뿐인데                                 Il malato, il mio amore è solo un sospiro

아- 쌓이는 시름들이                                             Ah, le preoccupazioni che si accumulano

못 견디게 괴로워서                                              Perché è stato così doloroso

흐르는 눈물이 빗속에 하염없네                              Le lacrime che scorrono sono sotto la pioggia





그땐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멀쩡하게 잘 놀던 한 사내가 찌질 모드를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 아시는지 모르시는지..ㅜ 늦은 아점을 먹고 컴 앞에 앉았는데 하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대략 두 주간의 시간이 흐른 후 하니의 목소리는 건강했다. 모처럼 아들내미와 외식을 하며 주말을 보냈다고 한다. 힘이 불끈 솟는다고 말했다. 얼마나 다행인지.. 



그런 한편 묻지도 않은 말을 이어나갔다. 돌로미티에서 담아간 사진첩을 함께 보면서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100배는 더 좋은 곳"이라며 자랑질을 해댄 것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그곳으로 이사를 가고 싶다는 말까지 해가며 기분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한다.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모른다.



나는 당신의 말을 전해 들으면서 컴 앞에 펼쳐둔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의 아름답고도 슬픈 풍경을 보고 있었다. 행불행에는 기막힌 상호작용이 발생한다. 어둠이 있으매 빛이 돋보인다고나 할까.. 어떤 사람이 행복하다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든 불행한 배경이 있기 마련이다. 살다 보니 세상은 그런 것이었다. 



금(金), 수(水), 목(木), 화(火), 토(土)의 다섯 가지가 음양의 원리에 따라 행함으로써 우주의 만물이 생성하고 소멸하게 된다는 오행설의 원리도 그러하며, 그리스 희랍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도 주로 그러했다. 한 때 회피하다시피 했던 옛날의 노랫말 속에는 상처 난 내 사랑은 눈물뿐인데 라고 말한다. 요즘 이 노랫말을 곰 되씹어보니 당신의 마음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 누군가 내게 일부러 마음의 상처를 준 것도 아닌데 집으로 돌아가다 말고 호숫가를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우울하거나 슬픔이 동반될 때는 장차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징조였을까..



그땐 혼자 집으로 돌아왔지만.. 코로나가 잦아들고 하니가 다시 돌아오면, 비에 젖어있던 스위스의 어느 호숫가를 꼭 다시 방문하고 싶다. 그땐 비도 그쳤을 것이며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진 그곳에 새하얀 고니 한 쌍이 유유자적하게 될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밤이 오시면 정적에 휩싸이는 죽음의 도시 바를레타에서 그날을 꿈꾼다.



그녀가 돌아오시면 다시 가 보리다..!!


Un viaggio di addio troppo lungo_verso alla Germania
il 15 Nov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U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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