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자의 가슴에 안긴 별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서 무엇을 보고 왔단 말인가..?!!
다시 세밑이 코 앞에 다가왔다.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 가을비가 추적추적 꾸역꾸역 오시는 날 사진첩을 열었다. 그곳에는 시장 바닥 한가운데 커라란 별이 두둥실 떠있다. 곧 성탄절이 다가올 것이라는 신호이자 세밑이 코 앞에 이르렀다는 신호이다.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로 관광을 떠나시는 분들은 꼭 한 번 들르게 되는 이곳의 이름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주도 피렌체(Firenze)의 중앙시장(Mercato Centrale Firenze )이 위치한 곳이며, 메르까토 디 산 로렌죠(Mercato di San Lorenzo)라 부르는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중앙시장 바로 앞 골목에 위치한 노점상이자 대한민국 관광객들에게는 '가죽 시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상인들은 리어카를 개조한 가판대 위에 가방은 물론 혁대와 점퍼 등 가죽제품을 이곳에서 팔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중앙시장이 개장을 하는 시간부터 폐장 이후까지 가죽 시장을 열어놓고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는 것.
처음 이곳을 방문하시는 분들은 호기심반 진풍경반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게 된다. 가죽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가죽제품에서 풍기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가 하면, 중앙시장에서 풍겨 나오는 향긋한 향신료 냄새 때문에 별천지에 온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보통은 점심시간에 줄을 서서 내장 버거(Panino con la trippa)에 심취하게 되는데 이때 겸사겸사 가죽 시장 곳곳을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운이 좋은 날은 살바토레 페르라가모(Salvatore Ferragamo)에 못지않은(?) 제품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곳에 갈 때 처음부터 '가격 절반을 후려갈겨야 한다'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부르는 게 값으로 정가가 있을 리 없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왔을 법하다. 일리가 있다.
자세히 둘러보면 이곳에 진열된 상품들은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에 물건을 납품하는 공장이 여러 곳이 아니라 한 두 곳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 등에 대해 나름 꽤고 있는 이유가 있다. 우리가 피렌체에 처음으로 둥지를 튼 곳이 중앙시장 근처이다. 정확히 말하면 메디치가의 무덤 까뻴레 메디체(Cappelle Medicee)가 있는 바실리카 디 산 로렌죠(Basilica di San Lorenzo) 교회 바로 앞에 우리 집이 있었다. 걸어서 1분 안에 도착할 수 매우 가까운 거리에 유명한 유적과 명소가 다닥다닥 붙어있는 것이다.
이날 기록된 사진첩에는 2019년 11월 22일 목요일이었다. 딱 1년 전 나는 보슬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죽 시장을 배회하고 있었다. 밤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별들이 나를 꼬드겨낸 것이다.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서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는 때는 대략 이맘때쯤이다. 피렌체 구도시(Centro storico) 전역은 이때부터 불야성을 이루게 된다. 이 도시의 트리는 가히 세계 최고라 할 만큼 어디서 본적 없는 것이자, 고풍스러운 역사 유물은 물론 최신 상품을 쏟아내는 명품거리와 너무 잘 어울렸다.
그 누구든 이맘때부터 연말연시에 이곳에 발을 들놓으면 가슴속에 환한 등불을 켜 둔 듯한 기분 좋은 느낌을 받게 될게 틀림없다. 그리고 성탄절이 되면 피렌체의 대표선수라 할 수 있는 까떼드랄레 디 산타 마리아 델 퓌오레 (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앞 광장에서는 알베로 디 나탈레(Albero di Natale_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날을 위해 광장 앞을 서성이며 성자를 기리거나 연말연시를 연인들과 혹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다.
피렌체는 이날이 아니라도 연중 발 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었는데, 이때부터는 인산인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마치 환각제를 들이킨 듯 행복해 보이고 리스또란떼와 호텔은 차고 넘친다. 이들은 르네상스의 고도에 발을 들여놓은 것만으로도 행복해할 텐데.. 알베로 디 나탈레가 점등한 이후부터는 행복이 절정에 넘치는 듯한 것이다. 하니와 나 또한 질세라 피렌체 구석구석을 발도장으로 도배했으니 그 느낌을 너무 잘 아는 것이다.
그런 한편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펼쳐진 르네상스(Rinascimento)의 배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메디치 가문의 무덤이 위치한 까뻴레 메디체에는 불이 꺼져있는 것이다. 그들은 15세기 때부터 18세기까지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가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불세출의 영웅이자 예술가인 미켈란젤로는 물론 예술가들을 후원한 것으로도 유명하며, 르네상스 당시 피렌체의 실질적인 지배자나 다름없었다. 르네상스 미술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가문이자 은행업으로 유명한 가문이었다.
그런 그들이 권력과 예술에 집착을 보인 것이다. 1434년에 권력을 잡은 코시모 메디치는 늘 예술가와 철학가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고 전한다. 그런 가문이 어느 날 쇠퇴를 하면서 사람들의 눈밖으로 밀려나간 것일까.. 가을비가 보슬 부슬 내리던 어느 날.. 집 앞에 있는 메디치 가문의 무덤이자 그들 가문의 유물들이 통째로 보관된, 화려하기 그지없는 곳에 성탄과 세밑을 알리는 알베로 디 나탈레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대신 바로 곁에 위치한 가죽 시장의 좁은 골목 위에는 커다란 별들이 뽀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기막힌 대비였다. 가죽 시장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의 국적 대부분은, 가난한 나라로 유명한 방글라데시 혹은 스리랑카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이 국 만 리 먼 땅을 찾아 살아남을 방편을 찾은 끝에 이곳에 삶의 터전을 잡았던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수성가하여 집을 가진 사람도 있고,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를 연명하기도 빠듯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비좁은 방에서 합숙을 하며 철시 때는 어느 지하의 빈 공간에 리터카를 보관한다. 이들의 출근길은 꿈에 부풀려있지만 퇴근길에 만난 그들의 뒷모습은 참으로 처량해 보인다. 머물다간 자리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비까지 내렸으니 르네상스의 고도에 이런 풍경도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집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하늘에 둥실 떠 있는 별들은 여전히 그들과 그들의 흔적을 비추고 있는 게 아닌가.. 성탄의 별은 더 낮아질 곳도 없는 가장 낮은 자의 가슴을 환하게 비추는 희망의 별이 아닐까.. 르네상스의 고도 피렌체에 숨겨진.. 아니 미쳐 찾지 못한 1인치가 별 아래서 빛을 발한 날이다.
La Meoria del Albero di Natale 2019 FIRENZE
il 21 Nov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