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Nov 28. 2020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작은 행복

#19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주말에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그때 짜잔~~~ 하고.. 여자 사람 1인이 나타난 것이다. 오늘 새벽 하니의 빈자리는 그런 것이었다. 사진첩을 열면 맨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 그녀였고, 그녀와 보냈던 지난 시간은 한 성자의 간섭 혹은 하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첫눈이 사부작사부작 내린 돌로미티의 라고 다안또르노 호수(Lago d'Antorno)를 만난 건 우리의 계획에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금년 한 해.. 돌이켜 보면 기적 같은 일은 그렇게 내 곁으로 다가온 것이다. 하늘에 감사드린다..!! 


지난 여정 성탄절에 어울리는 행복한 풍경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연말연시가 다가오면서 한 해를 뒤돌아 보고 있는 것이다. 다시금 생각해 봐도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한 해였다. 하니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다시 입국한 이래 대략 8개월 동안 우리는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 같은 삶을 살았다. 누군가 각본을 쓰고 연출하지 않았다면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중 두 번에 걸쳐 돌로미티로 떠났던 여행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기적 같은 일이자 행복이 아닌가 싶다.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작은 행복




우리는 첫눈이 만든 기적 같은 풍경 속을 따라 돌로미티의 라고 다안또르노 호수(Lago d'Antorno)까지 진출한 다음 다시 돌로미티의 대표라 불리는 뜨레 치메 디 라바레도(Tre Cime di Lavaredo) 입구까지 드라이브한 후에 다시 오던 여정을 따라 꼬르띠나 담빼쬬(Cortina d'ampezzo)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곳은 지난여름 19박 20일 동안의 돌로미티 여행을 통해 낯익은 곳이었다. 당시 우리는 뜨레 치메 라바레도 입구에 잠시 주차를 해 두고 개방시간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공원이 개장되자마자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마침내 돌로미티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로 되어있는 세 봉우리를 만나게 된 것이다. 해발 2,999미터에 달하는 봉우리는 가까운 곳에서 표정을 담을 수 없을 만치 크고 우람했으며 당당했다. 



그러나 이번 여정에는 그를 다시 만날 시간적 여유가 없었으므로 입구에서 차를 돌려 꼬르띠나 담뻬쬬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던 길에 보였던 행동이 여전히 우리를 뒤따라 다녔다. 어디를 둘러봐도 넋을 흔들어 놓는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자동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느리게 느리게 이동하고 있었다. 담빼쬬로 가는 길에는 자동차들이 간간히 눈에 띌 뿐 도로 가장자리에 정차하는 일은 쉬운 일이었다. 아무 곳이나 아무 때나 뷰파인더에 들어올 만한 풍경이 나타나면 셔터를 누르곤 했던 것이다. 




서기 2020년 11월 27일 금요일(현지시각) 불금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은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이다. 이곳은 곧 자동차 소리가 멈출 것이며, 내일 새벽 5시가 되어서야 자동차의 통행이 재개될 것이다. 그때까지 도시는 침묵 속으로 빠져들 것이며 진공 상태로 변할 것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현재 상황이자 코로나 19가 만들어낸 새로운 풍속도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정부 보건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당분간 이 같은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늘자 이탈리아의 감염자 수와 사망자 수를 보면 단박에 이해가 간다. 27일 현재 감염자 수는 28,352명이며 사망자 수는 무려 827명에 달한다.(Coronavirus, le news. Il bollettino: 28.352 casi su 222.803 tamponi, 827 decessi.) 불과 열흘 전의 감염자 수치에 비하면 다소 하향세를 보이고 있지만, 10월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코로나 19의 감염속도는 무서울 정도이다. 




하니를 한국으로 급히 도피시킨 때가 10월 25일이었으므로, 대략 한 달 동안 이탈리아의 코로니 19 상태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일로에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나는 특별한 볼 일 외에는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자제하고 거의 집콕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봄에는 처음 겪는 일 때문에 답답함이 극도에 달했으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이후부터는 두문불출, 컴 앞에서 서핑을 하거나 글을 끼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만약 코로나 19가 없었다면 얼마나 싸돌아 다녔을지 짐작이 간다. 아이들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사는 동안 느낀 최고의 가치에 몰두했을 것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 이순의 터널을 지나가노라면 출구가 하얗게 바랠 때까지 주어지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적은 사람들에게 여가선용은 그 어떤 선물보다 값질 것이며, 그중에 여행은 당신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해 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계획한 일이 곧이곧대로 시행될 일이 없다. 우리가 마음으로 당신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하늘이라 했던가. 지난 8개월 동안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을 돌아보니, 누군가 등 뒤에서 우리를 보살피지 았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모를 일이었다. 세상은 늘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지난 2월 23일 하니를 로마 피우미치노 공항(Aeroporto di Roma-Fiumicino)에서 재회했을 때 한국의 코로나 19는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하고 있는 때였다. 암울했던 상황. 어차피 이탈리아로 건너와야 할 그녀는 한시라도 빨리 이탈리아로 탈출(?)해야만 했다. 이때 그녀는 초과 요금을 물어가며 커다란 케리어 두 군데와 작은 보따리 가득 우리나라 특산물을 공수해 왔다. 


이탈리아에서 쉽게 맛볼 수 없는 양념이며 식품들이 두 가방에 빼곡했다. 피렌체서 살 때 느꼈던 부족했던 부분이 향수였을까.. 우리는 그것을 금덩이 보다 아껴먹었다. 그중 현지에서 공수하여 짜낸 진짜 백이 참기름은 물론 갈치 속젓이며 명란젓 등 품질이 뛰어난 김은 부피를 납작하게 만들고 가방에 채울 수 있을 만큼 채웠다. 아직 100장들이 한 묶음이 7개나 남았으니 부자들의 넉넉한 마음이 절로 읽힌다. 


거기에 삼단분리를 마친 최상품 멸치가 냉동고 가득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질 좋은 다시마까지 큰 두 봉지나 남아있으니.. 요리사의 식탁에서는 향수가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마다 한국산 명품들을 식탁에 올리는 것이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코로나 19가 애당초 창궐하지 않았다면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을 느낄 수 있었을까.. 지금 현재 곁에 없는 하니 또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녀의 부재로 인해 빈 가슴과 공간은 존재 중에 몰랐던 회한들까지 작은 틈을 비집고 끼어드는 게 아닌가. 코로나 19를 피해 이탈리아로 긴급히 피신할 때, 로마 공항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은 하니와 몇몇 사람들이 전부였다. 하니는 입국장을 나서자마자 당신 혼자만 착용하고 있는 마스크를 즉각 벗어버리고 바를레타행 기차에 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8개월 동안 브런치에 기록된 수많은 흔적을 남기고 어느 날 다시 코로나 19를 피해 한국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그마치 도피여행은 왕복 3,000킬로미터에 이르는 머나먼 여행이었으며, 돌아오는 길은 그나마 나 혼자였다. 생전 처음 겪는 별리 여행을 겪으며 너무 우울했던 것이다. 참 슬펐다. 그땐 그랬다. 



코로나 때문에 좋았던 감정이 다시 코로나 때문에 슬펐던 날이 대략 8개월 동안 이어진 어느 날, 나는 컴 앞에 앉아 당시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참 희한한 일은 이때부터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들의 자유를 일시 구속한 바이러스가 집콕을 통해 반추의 미학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조용히 당신을 들여다볼 성찰의 시간이 없었다면, 추억을 뒤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면 당신이 저질러 놓은 흔적들은 까마득히 세월 저편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희미했던 추억들이 첫눈의 풍경 속에 오롯이 묻어나는 게 아닌가.. 코로나가 별로 반길만한 존재가 아니란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늘이 하는 일은 가끔씩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우리의 존재감을 빛나게 하는 것이랄까. 거대한 우주의 운행 속 한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은 하늘의 조화로움에 다시금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때부터 코로나 19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다. 제동장치를 상실한 기관차처럼 앞만 보며 질주할 게 아니라, 집콕으로 당신의 흔적을 뒤돌아 보라는 하늘의 메시지가 코로나 19에 묻어난 게 아닌가 생각하며 작은 행복에 젖어드는 것이다. 전화기 속에서 울려 퍼진 하니의 목소리는 건강하고 밝았다. 그녀는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계속>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28 Nov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