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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04. 2020

멸치도 생선이다

-대파와 다시마 육수로 조려낸 멸치 요리

멸치도 생선이다..?!!


내 고향 부산에서는 멸치를 '매래치'로 불렀다. 부산지방의 사투리를 살펴보면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오롯이 묻어난다. 멸치의 'ㄹ' 받침이 생략되고 매래치로 둔갑하는 것이다. 여기에 어떤 문법을 대입하는 건 별로로 보인다. 나는 일본 아이들의 발음과 중국 아이들의 발음을 유심히 관찰한 적도 있다. 중국은 영어를 잘 말하는 구조를 타고났다. 

반면에 일본은 어떻게 된 모양인지 혀 짧은 소리를 낸다. 예를 드나 마나 우리말 '괜찮습니다'라는 말을 할 때 '괘에엔찬스므니다'라며 억지로 말한다. 이런 사정은 이탈리아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어 '많이'란 뜻의 몰또(Molto)를 발음할 때 그들은 '모르또'라고 말했다. 피렌체의 한 어학당에서 만난 어린 학생(나이가 20대 초반에서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들은 이탈리아어를 배울 때 발음 때문에 애먹는 것을 목격했다. 



오늘 포스트 대파와 다시마 육수로 조려낸 멸치 요리에 웬 일본이며 중국인가.. 이름만 들어도 발칙해 보이는 매래치 요리 때문이었다. 글 제목을 '멸치도 생선이다'라고 했지만, 본래는 '매래치도 생선이다'라고 제목으로 썼다가 고친 이유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매래치가 더 잘 어울린다. 부산지방 혹은 갱상도에서는 멸치회를 '매래치회'로 부른다. 

매래치철이 되어 기장으로 가거나 삼천포 등지로 가면, 미나리와 양파 매운 고추 등으로 잘 버물린 매래치 무침 혹은 매래치회는 보는 순간 기절할 지경이다. 우리 입맛을 돋우거나 영양가 만점이 매래치였던 것이디. 우리가 잘 아는 정약전 선생의 '자산어보'에 따르면 멸치는 너무 많이 잡힌다 해서 업신여길 '멸(蔑)'자를 써서 '멸어(蔑魚)'라 부르기도 했다. 또 멸치는 워낙 성질이 급해서 물가에 나오면 바로 죽는다 해서 멸할 멸(滅)자를 써서 '멸어(滅魚)'라고도 불렀다. 



그런 까닭에 멸치를 잡는 선단들은 멸치를 배 위로 끌어올리자마자 즉시 삶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항구로 돌아오는 즉시 일일이 펴서 말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멸치의 선도가 결정된다. 특품에서부터 3 등품까지 빛깔이 고운 순서대로 아니면 크기 순서대로 값을 매기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로 특품을 선호했다. 단골집에 들러 부탁해 놓으면 가격 대비 통영시장에서 봤던 물건(?) 보다 더 좋고 맛 또한 일품이었다. 


처음에는 어두일미라 여기며 멸치를 삼단분리(대가리, 내장, 몸통)해 놓고 대가리는 따로 육수를 내어 먹었지만, 언제부터인가 귀차니즘이 작용해 버리기도 했다. 매래치는 이렇듯 우리 식탁에 없어서는 안 될 국민식품이자 영양가 만점이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아 멸치에는 칼슘, 칼륨, 오메가3지방산 및 콜라겐, 타우린 같은 성분이 빼곡하다. 



그래서 그런지 생선을 즐겨먹는 부산과 갱상도 혹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의 코로나 19 성적표는 대단하다. 정부와 방역당국의 선제 조치 등의 효과도 있겠지만 해산물 천국 대한민국 국민만이 누릴 수 있는 특수 효과가 일상에서 늘 먹는 국민생선 매래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너무 흔했던 나머지 매래치는 생선으로 불리는 게 어설픈 정도랄까. 오죽하면 멸어(蔑魚) 혹은 멸어(滅魚)라 불렀단 말인가. 


그러나 매래치가 요리 왕국 이탈리아로 오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탈리아에도 멸치가 있다. 녀석을 아츄게(Acciuga의 복수 Acciughe_Engraulis encrasicolus)라 부른다. 생긴 것도 이름도 생소해 보이지만 이탈리아 요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다. 주로 염장된 채로 삣싸(Pizza)에 올려먹거나 빵(Pane)에 올려먹기도 한다. 그렇다면 맛은 어떨까.. 



완전 꽝이다. 대한민국에서 먹던 매래치 3등급 품질만도 못할 뿐만 아니라 맛까지 꽝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인들은 아츄게를 고급 생선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한민국 출신 이탈리아 요리사 눈에는 "이게 매래친가.." 싶은 것. 피렌체서 살 때, 어느 날 매래치가 먹고 싶어 하니와 함께 중앙시장의 어물전에 들러 매래치 1킬로그램을 구입해 조려 먹다가 절반도 채 먹지 못하고 버린 일이 있다.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 않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시쳇말로 '맛 짜가리' 1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어느 날 하니가 볼 일을 마치고 이탈리아로 돌아오면서 삼단분리가 된 매래치 특품을 두 보따리나 가져온 것이다. 은빛이 감도는 그 멸치는 지금도 한 보따리 반이나 냉동고에서 주인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다. 멸치가 마침내 고급 생선 대우를 받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짝 마른 멸치에 생명을 불어넣기 시작한 것이다. 멸치는 그녀가 함께 공수해온 다시마와 함께 천천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최초 납작하고 메마른 멸치가 적당히 부풀어 오르면서 점차 생선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는 것이다. 



멸치가 먹고 싶은 날이었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국민생선의 맛이 마구 당기던 날 마침내 일을 저지르고 만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멸치에 관한 한 지저 먹고 볶아먹고 그냥 고추장에 찍어먹는 등 어떤 때는 욱수만 우려내고 버리는 일도 흔하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만큼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는 내게 고급 생선이나 다름없는 것. 따라서 먼저 멸치와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만든 다음, 그 육수를 이용해 멸치와 대파를 넣고 천천히 조리는 것이다. 

이때 올리브유를 두르고 조미간장을 적당히 흩뿌리고 천천이 조리면 끝! 그리고 비노 비앙꼬를 곁들이며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것이다. 최후에는 비스꼬또(Biscotto_비스킷)에 아추게처럼 올려먹으니 향수가 저만치 달아났다. 한국에서는 너무 흔한 멸치지만 해외에서는 너무 귀한 생선이었던 것. 코로나 19가 창궐하고 있는 이때 눈여겨 볼만한 녀석이다. 멸치도 생선이라니깐요..!! ^^ 


Un piatto di acciughe condito con brodo di dasima e porro
il 04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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