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그 고갯길을 언제 또다시 가 볼 수 있을까..?!!
꼬르띠나 담빼쬬에서 빠쏘 디 지아우 고갯길을 천천히 올라가는 동안 하니는 아이폰에 자랑거리를 부지런히 담고 있었다. 그 기록들은 장차 아이들에게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여줄 것이며, 자랑을 늘어놓을 때마다 돌로미티의 추억은 점점 더 커지며 하루라도 빨리 이탈리아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다. 그러면서 해산물 왕국이자 천국인 대한민국에서 이탈리아로 공수해 갈 품목을 하나둘씩 챙기고 있는 것이다.
- 우리 단골집 있잖아..
-응, 말해 봐..
-거기서 건어물 좀 사가는 게 어때..?
-좋긴 하지만 지난번처럼 많이 사 오면 곤란해..ㅜ
-우럭 황태 조기 말린 거.. 안 무겁거든..ㅎ
-암튼 무거운 가방 끌고 다니는 일 없도록 하샘..!!
우리가 첫눈에 대한 추억이 없었다면 어떤 대화를 이어갔을까.. 첫눈이 코로나를 덮어버린 그곳에 진눈깨비가 간간히 함박눈으로 변하고 있었다. 저 멀리 힘들게 올랐던 능선이 보이는 가운데 우리는 빠쏘 디 지아우 고개에 곧 도착하게 될 것이며 그곳에서 다시 죽어도 잊지 못할 풍경을 가슴에 안게 될 것이다.
지난 여정 첫눈, 코로나 덮다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코로나 19 때문에 집콕이 길어지면서 새로운 용어가 생겼다. 코로나 19가 창궐하고 있는 시기를 '코로나 시대'라 부르는 것이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시대도 겪어보니 말이다. 이건 혼자만 겪는 게 아니라 지구촌 사람들 다수가 겪는 것이고 보니 특별한 명칭이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미켈란젤로가 살았을 당시에는 르네상스 시대(Rinascimento)라 쓰고 '문예부흥이라 읽더니.. 웬걸 요즘은 코비드-19 시대(Malattia da coronavirus (COVID-19))가 되어 '코로나비루스 부흥'이라 불러야 할까..
중세 이후 르네상스 시대 때부터 최소한 바로크 시대까지 서양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그들이 만든 문화를 덧 입고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코비드-19 시대에는 집콕이 대세이므로 집안에서 바깥을 그리워하며 볼거리를 찾아야 행복할 게 아닌가. 다행인지 나에겐 사진첩 속에 적지 않은 분량의 추억을 쌓아두고 겨울밤 군밤 까먹듯 야금야금 뒤를 돌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 첫눈이 내린 풍경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는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첫눈이 내린 빠쏘 디 지아우(Passo di Giau) 고갯길을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이곳은 지난여름 19박 20일 동안의 돌로미티 여행을 할 당시 마지막 코스였다. 첫눈이 오시던 날 하니와 내게 감동을 준 그곳을 다시 찾아가고 있는 것이다.( 맨 아래 그때 장면을 실었다) 첫눈이 살랑대며 날리고 있는 고갯길은 여전한데 세상이 온통 하얀 비단결에 쌓인 듯 사뭇 다른 풍경을 선물해 주고 있는 것이다.
조물주는 이런 풍경을 위해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램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를 세상에 보냈을까.. 하니의 그림 선생님 루이지(LUIGI LANOTTE)는 바로크 시대를 산 램브란트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그의 초상을 팔뚝 한쪽에 문신을 두를 정도였다. 그리고 그의 화풍은 램브란트를 닮았지만 자기만의 독특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었다.
하니의 그림 수업을 동시통역하면서 빛과 어둠으로 표현되는 그의 작품에 적지 않은 감동을 받게 됐다. 그 결과 기초과정 4단계를 시작할 때까지 하니의 손끝은 미세한 주름 하나의 덩어리까지 잘 그려내며 일취월장(日就月將)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어느 날 이탈리아에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면서 도망치듯 그녀를 한국으로 떠나보내게 된 것이다. 나는 그걸 별리 여행이라 불렀다. 우리는 잠시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이게 된 것이다. 컴 앞에는 그녀가 남기고 간 까발레또(Cavalletto_이젤)는 물론 대여섯 점의 작품과 생활용품 다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몸은 한국으로 떠났지만 그녀의 흔적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다. 또 사진첩 속에는 첫눈이 내리던 날의 추억까지 흠결 하나 없이 박제되어 있는 것.
이틀 전 바를레타 시내 중심에 위치한 화방에 들러 액자 하나를 구입했다. 하니가 남긴 작품 한 점을 액자에 담아 걸어놓기 위함이었다. 까르본치노(Carboncino_목탄)로 그린 그림을 스프레이로 고정시킨 작품은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했다"라고 말하곤 했다. 대상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그녀는 그림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략 3시간이 지나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
최초 치비아나 골짜기(Il Passo Cibiana (1.530 m))에서부터 시작된 첫눈 여행은, 다시 빠쏘 치비아나 디 까도레(Passo cibiana di cadore)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우론조 디 까도레(Auronzo di Cadore)를 따라 미수리나 호수(Lago Misurina)와 라고 단또르노(Lago d'Antorno)를 거쳐 꼬르띠나 담빼쬬(Cortina d'Ampezzo)까지 진출했다. (돌로미티를 여행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지도를 펴 놓고 여정을 참고하시라고..)
그다음 우리의 목적지가 지금 브런치에 소개되고 있는 빠쏘 디 지아우(Passo di Giau(2 236 m))였으며, 그 고갯길을 따라 천천히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하니가 정밀 소묘를 하며 그림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으로 우리는 점점 더 첫눈 깊숙이 빠져드는 것이다. 아마도 램브란트가 이곳에 서 있었다면 인물 대신 하얀 비단결에 싸인 고갯길을 당신만의 화풍으로 잘 그려내지 않았을까..
고갯마루 능선 위의 점 세개는 첫눈을 맞이하는 여행자들의 모습이다.
아니면 루이지가 동행했다면 그 또한 흑백으로 변한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냈을지 상상이 간다. 르네상스를 거친 바로크 시대를 산 사람들은 그들 가슴에 묻어있는 예술혼을 따라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즐겼을 것이라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코비드-19 시대에 사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잃어버린 시간들이 너무 많지 않을까.. 매일 자고 나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조심해야 하고.. 말 그대로 자유가 구속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니는 전화기 너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을 타면, 출발하기 전에 운행 중에도 그리고 정차를 하면 '마스크 착용하세요'라고 말해..!"
첫눈 오시기 전 빠쏘 디 지아우 고갯길 전경
지난 여름 돌로미티 여행 중에 촬영된 사진이다. 우리는 자료사진 아래에서 고갯마루까지 이동하고 있는 것. 다시 봐도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자 다시 한 번 더 가 보고 싶은 여행지이다. 아래 자료사진은 빠쏘 지아우 고갯마루 정상의 실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코비드-19 시대가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디든지 묻어다니는 것이다. 사정이 대략 이러하므로 하니가 그림 속으로 빠져든 것처럼, 어느 날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 고갯길을 덮은 하얀 비단결처럼 코로나 이 녀석을 꼼짝달싹 못하게 덮어버렸으면 좋겠다는 거.. 지난여름에 다녀온 빠쏘 지아우의 고갯길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금 코로나를 잠시 잊게 된다. 세상을 하얗게 덮은 첫눈 때문이었으며,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들이 집콕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그 고갯길을 언제 또다시 가 볼 수 있을까..?!!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_Passo Giau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07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