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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4. 2020

세상만사 잊게 된다 코로나까지

#43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어떻게 잊을까..?!!




코로나 시대의 밤중은 호수를 쏙 빼닮았다. 그곳에는 액체가 있었지만 지금 이곳은 정적이라는 게 있다. 소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진공상태로 변한 세상에 한 인간이 자판을 두드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달라진 시공 속에서 그리움으로 남은 풍경들.. 저만치서 하니가 가던 길을 되돌아오고 있다. 이때만큼 미안해 본 적도 없다. 나는 호숫가에서 뭉기적 거리고 하니는 다시 내 곁으로 발길을 옮기는 것이다. 
이제 곧 하산할 시간.. 뒤돌아 본 그곳에 나비가 날아다녔다면 나는 장주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야. 몇몇의 여인들은 여전히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대자연 속의 우리는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지난 여정 꿈에서 본 듯한 돌로미티 비경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장주가 어느 날 꿈에서 만난 나비 한 마리는 인생을 덧없음에 비유한 것일까.. 아니면 일장춘몽에 비유했을까. 현실과 꿈이 마구 뒤엉킨 뒤에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가 있었을 것이며 그것은 단지 혼자만의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신을 둘러싼 선경(仙境)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세상만사 잊게 된다 코로나까지




하니와 나는 리푸지오 삐쉬아두(Rifugio Franco Cavazza al Pisciadù) 로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정상에서 내려다본 로지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붐비는 가운데 우리는 하산길에 이른 것이다. 에메랄드 보석을 녹여 만든 듯한 호수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돌아서는 등 뒤로 초록색의 물빛은 여전히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랑의 색으로 알려진 그 빛은 장차 우리에게도 적용될 것인가.. 



산중에는 바람이 적당히 불었으며, 이곳이 해발 2,585미터 정상 부근인지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하산길에 다시 둘러본 정상의 풍경은 세상만사를 다 잊게 만들었다. 언제 다시 와 보려나.. 발길은 피로 때문에 무거운 게 아니라 차마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이랄까.. 



서기 2020년 12월 13일 초저녁,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에서 사진첩을 열어놓고 당시의 모습과 느낌을 회상하니 꿈만 같다. 대략 100일의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크고 작은 일들이 우리 곁을 지나갔다. 그중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코로나 19 때문에 잠시 헤어지게 된 일이다. 당신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시간들이 여전히 돌로미티에 묻혀있는 것이다. 





서울에 첫눈이 오시던 날, 하니와 통화를 하니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한시라도 빨리 이탈리아로 돌아오고 싶지만 현실은 딱한 것이다. 코로나를 피해 한국으로 떠났지만, 코로나 청정지역 대한민국의 보건당국은 겨울이 다가오면서 감염자 수는 1천 명에 육박하고 곧 경계수위를 더 높일지 모르겠다는 발표로 괜히(?) 힘들어하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전혀 한국에 비할 것은 못되지만, 코로나가 창궐하고 있는 국가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오늘(13일, 현지시각) 자 이탈리아의 코로나 성적표는 감염자 수 17,938명에 사망자 수 484명이다. 대략 한 달 전에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면 큰 하향곡선을 긋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코로나는 매일 수백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다. 그들.. 유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려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닐 것이다. 지옥으로 변한 세상에서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고나 할까.. 



하니는 통화를 마치고 단톡방에 올라온 메시지를 내게 보냈다. 내용을 참조하니 매우 무책임하고 무분별하며 정부를 헐뜯는 비상식적인 정치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상략, 링크참조).. <결론> 국가가 국민을 못지켜 주고 그들의 정치적 야욕을 위해 근본적인 수습책 (발병진원지로부터의 원천 봉쇄, 병상,마스크, 방호 장비 등의 미확보 등 사후 조치) 마저도 안 취하는 상황을 보면 이제는 우리의 건강 은 우리 스스로가 지켜야 합니다. 이 정부의 방역과 보건 의료 정책을 믿으시면 안됩니다. 완전히 뚫렸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의료 시설, 의료진, 병원 시설, 장비는 세계 최고 수준 입니다. 이렇듯 경쟁력있는 의료 부문도 보건 행정의 책임자는 그탓을 자국민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이 내용은 자기만 알고 있지 마시고 가능한 많이 알리세요. 그래야 준비를 합니다. 앞으로 3일간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시기입니다.

서울대의 이름을 빌린 이 메시지의 근원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결론부에 드러난 주장사실만 참조하면 어떤 녀석인지 반드시 색출하여 이탈리아 북부로 당장 보내야 마땅할 것이다. 선량한 사람을 우언비어로 선동하는 악의적인 내용을 참조하면 코로나비루스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고나 할까..





잠시 시름을 잊게 해 준 돌로미티의 리푸지오 삐쉬아두 정상은 인간계가 아니라 선계였으며, 조물주가 빚은 최고의 작품 가운데 하나였다. 어느 날 한 인간의 눈에 비친 세상은 아귀다툼의 세상이 아니라 장주의 꿈을 실현한 공간이자 무릉도원이 아니었나 싶다. 



사진첩 속의 비경은 세상만사를 잊게 할 뿐만 아니라 잠시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까지 잊게 만드는 것이다. 하루 종일 구급차의 경적 소리를 들어야 하는 현실 가운데 돌로미티는 시간 저편으로 나를 데려다 놓고 있는 것. 전화기 너머에서 하니가 이탈리아를 그리워하고 있는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산길.. 벼랑 끝에서 바라본 세상은 실로 놀랍다. 누구나 한 번쯤 이곳을 다녀가면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만들게 틀림없다. 깎아지른 벼랑 아래로 우리가 머물던 쉼터가 있었지.. 자동차가 주차된 그곳까지 돌아가는 일을 생각하니 까마득하다. 



그런데 돌아가는 발길은 점점 더 무거워져 오는 게 아닌가.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버려두고 가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돌로미티의 한 곳.. 산은 '더 머물다 가라'라고 애원한다. 더 머물고 싶었다. 오늘자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편의 연재는 43회에 이르렀지만 타임라인은 여전히 사흘에 머물고 있다. 생전 처음 지구촌의 촌놈이 되어 만난 돌로미티의 비경 때문이다. 



하니가 지친 표정으로 저만치서 느린 걸음을 옮기고 있다. (확인되시는가..ㅜ)



사노라면 우리가 원했던 일만 나타나는 게 아니라 전혀 원치 않았던 일이 동시에 일어나기도 한다. 옛사람들은 그러한 일을 세상만사 새옹지마(世上萬事 塞翁之馬)라 불렀다. 오늘 잘 못된 것처럼 보인 일도 언제인가 다시 행운으로 돌아오게 마련이란다. 코로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대자연 속의 우리는 날마다 꿈을 꾼다. 그 꿈들은 사람마다 서로 다를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당신이 돌로미티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대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눈 뜨는 순간부터 세상을 향한 잣대가 달라질 게 분명하다. 



세상은 꿈꾸는 자의 몫이며, 이를 실천하는 자의 천국이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2020
Scritto_il 13 Dic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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