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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2. 2020

저만치 앞서 가는 님

#11 남미 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처음부터 끝까지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지 아마..?!!



"하니 <~~!!.. 손 한번 흔들어 봐봐..!!"


그녀는 저만치서 나의 외침을 듣고 가던 길을 멈추고 능선을 올려다보며 손을 흔들어 보인다. 골짜기 한쪽으로 나 있는 산길은 정상을 향해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는 데 그녀의 모습은 눈에 띌까 말까 한다. (확인되시는가..ㅜ) 서기 2020년 12월 9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사진첩을 열고 우리가 다녀온 여정을 살피고 있노라면 상대에 대한 믿음이 절대적이어야 하며 그 힘은 사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생각이 든다. 
속담에 '몸이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는 말도 다 사랑의 농도를 탓하는 게 아닌가.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사랑했다면.. 목숨을 걸고 사랑했다면.. 거리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어느 날, 남자 사람 혹은 여자 사람에게 "다시 태어나도 날 사랑하지?"라고 물어보시던가.. 아니면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뿐입니다"라고 고백해 보시라. 어떤 반응을 보이시는지..ㅋ (이른 아침에 혼자 씩~웃고 만다. ^^) 천태만상의 세상에서 감동이 밀려든 그 골짜기를 여전히 그리워하고 있다.


지난 여정 사랑이 밀려드는 감동의 골짜기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한 지붕 아래 한 침대를 사용하는 두 사람은 오래 살면 살수록 사랑고백이 뜸해지거나 시쳇말로 '오그라든다'는 것. 어떤 때는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또 어떤 때는 헤헤 거리며 그런 일이 언제 있었느냐는 듯 사이좋게 지내곤 한다. 요런 걸 미운 정 고운 정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저 뜨거울 줄만 알았던 청춘 때는 전혀 몰랐던 인생이 '안 청춘' 때가 되면 온돌방 아랫목처럼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아궁이에 군불을 열심히 땐 결과가 나중에 나타나는 것이랄까..



저만치 앞서 가는 님




또레스 델 빠이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순탄했다. 능선 하나를 넘자마자 산길은 거대한 골짜기의 산기슭을 따라 고불고불 길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길 옆으로 내려다보니 천 길 낭떠러지가 있고 멀리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는 천둥소리를 닮았다. 



그리고 파타고니아에서만 주로 볼 수 있는 가시덤불 나무가 몽실몽실 벼랑길을 덮고 있었다. 이 식물의 이름은 물리눔 스피노줌 (Mulinum spinosum)으로 불리는 가시덤불(떨기나무)이었다. 내겐 깔라파테 열매와 더불어 파타고니아를 상기시켜 주는 대표 식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거대한 산자락 아래서 사이좋게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저만치 계곡 사이에 로지가 보였다. 우리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로지까지 한 차례 도전했지만 사정상 실패로 끝난 바 있다. 그래서 다시 또레스 델 빠이네 배후 도시인 뿌에르또 나탈레스의 숙소에서 다시 길을 나선 것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다수는 숙소에 예약을 하거나 야영을 하기 위해 텐트를 빌리는 등의 조치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미처 준비를 못한 것이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선 아침 등 뒤에서 햇살이 앞길을 훤히 비추고 있었다. 다시 고갯마루 하나는 더 넘으니 저만치서 하니가 앞서 가는 게 보였다. 내가 뷰파인더를 들여다 보며 뭉기적 거리고 있는 사이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진 것이다. 전에 같았으면 이렇게 소리쳤겠지..



"머해?! 얼릉 와..!! ㅜ"



서기 2020년 12월 12일 토요일, 코로나 19 때문에 잠시 한국에 가 있는 하니와 통화를 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통화의 시작은 여전히 코로나가 등장했다. 이제 코로나를 빼놓아도 될 만 한데 밥반찬처럼 코로나가 전화기 속에 끼어드는 것이다.


-응, 여기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거 같아. 거긴..?

-응, 여긴 난리가 아냐. 코로나에 홍수에 폭우에 폭설까지..

-심각하네..ㅜ

-감염자 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하루에 7~8백 명씩 목숨을 잃어..ㅜ



이렇게 시작된 통화는 대략 30분에서 1시간 동안 이어진다. 하니는 이때부터 마라톤 중계를 하듯 미주알고주알 사사건건 밑도 끝도 없이 보고서를 써 올린다. 당신의 일거수일투족 전부를 소상히 일러바치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동고동락했던 사람.. 불평 한마디 없이 앞만 보며 달려온 사람.. 자기 몫 이상의 일을 하는 사람.. 등등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즉시 팔불출이 되지만, 그게 무슨 대수인가..



그 사람이 저만치 앞서 가고 있다..!



파타고니아 여행길에서도 웬만하면 '힘이 든다'는 말 한마디 할 텐데 입 밖으로 그런 말을 단 한차례도 내뱉은 적이 없다. 그저 당신 앞에 주어진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것이다. 시방.. 그녀는 한국에 가 있고 나를 이탈리아에 머무는 동안 사진첩에 등장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시려온다. 전화기 너머에서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혼밥이 너무 싫어..ㅜ

-그래도 잘 챙겨 먹어야 해..!




딸내미와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정량을 넘기면서 과식을 했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와 혼자 챙겨 먹는 혼밥은 너무 싫은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좁쌀이 된다. 최소한 단백질은 얼마나 챙겨 먹어야 하고 야채와 물 기타 등등.. 그게 씨알이 먹힐 리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좁쌀이 되는 일 밖에 더 있을 수없다. 그녀는 어떤 때 내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목숨을 걸어야 해..!!"



그 여자 사람이 저만치 앞서 가는 님이다.


il Nostro viaggio Sudamerica_Patagonia Torres del Paine CILE
Scritto_il 09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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