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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1. 2020

파타고니아, 치유의 숲길

#8 엘 찰텐, 라구나 또레 가는 길

세상에서 상처 받은 자 다 내게로 오라..?!!



그런 인간들의 욕망은 끝도 없다. 글을 쓰는 현재 조물주가 만들어낸 코로나 19 조차 우리 인간의 행실을 돌아보게 만드는 하나의 시련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작은 정치적 이익 하나를 두고 다수 국민들이 뽑아준 민주정부의 대통령에게 칼을 들이대는 사람과 집단들은 한 번씩 당신들의 위치를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당신들의 눈에는 신의 존재가 무색하겠지만, 인간 최고 가치를 상실하면 부끄러움도 모르는 인면수심의 한 종(種) 일뿐이다. 누군가 아름다움은 신의 그림자라고 말했다. 우리가 걷고 있는 이곳은 시간이 박제된 곳이자 신의 그림자로 충만한 공간이었다. 법 밖에 모르는 헛 똑똑이가 가 봐야 할 곳..!


지난 여정 그가 다녀간 빈자리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세상 사람들은 다 저마다의 생각이 있게 마련이다. 누가 가르쳐 줬기 때문에 이렇게 하고 또 반대의 경우의 수가 등장하기도 한다. 경우의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것 아니면 저것 혹은 흑과 백 등으로 나뉜다. 어떤 때는 보다 구체적으로 세분된다. 마카로니 웨스턴 영화에 등장한 '황야의 무법자'에서는 좋은 놈과 나쁜 놈 그리고 '더러운 놈'으로 나뉘는 것이다. 오래전 이 영화를 보면서 크게 공감했다. 그때 "그렇구나 그런 부류도 있었지.."라며 생각하며 공감했던 것이다. 대자연은 실로 오묘한 조화로움 속에서 각자의 생명체를 보듬곤 했다.



파타고니아, 치유의 숲길




우리는 이른 아침 엘 찰텐의 숙소를 떠나 라구나 또레가 저만치 보이는 언덕 위에 서서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로부터 발원된 피츠로이 강(Rio Fitz Roy)을 굽어보고 있었다. 산중에 드넓은 평원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곳은 한 때 빙하에 묻혀있던 자리였으며, 빙하가 물러간 자리에 숲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었다. 우리는 언덕 위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길을 나설 텐데 언덕을 지나면서 기나긴 숲길을 통과해야 한다. 


곧 우기가 다가오면 마른 풀꽃들과 숲은 생기를 되찾을 것이며, 그동안 숲은 알록달록한 잎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 일들은 억만 겁을 이어왔다.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어쩌면 생로병사의 반복하는 우리도 그중 하나일 뿐인데 대자연과 우리의 모습은 매우 다르다. 우리는 아무 때나 아프면 고통을 말하지만 대자연은 말이 없다. 그저 온몸으로 보여줄 뿐이다. 엘 찰텐의 라구나 또레로 가는 길 옆으로 줄 서있는 나목들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었다. 


세상에서 상처 받은 자 다 내게로 오라..!!





서기 2020년 12월 11일 이른 새벽에 눈을 뜨고 사진첩을 열어보며 당시를 회상하고 있다. 그런 잠시 후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의 한 장소를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곳은 집으로부터 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곳이자 대형마트가 위치한 곳이다. 마트에 가려면 주로 그 길을 이용하는데 그곳에는 지대가 낮은 지역 위로 다리가 놓여있다. 자동차가 다니는 다리 곁으로 인도가 있는 것이다. 



나는 어느덧 이 길을 두 해 동안 다니고 있는 것이다. 봄을 두 차례나 맞이한 것이다. 이 장소가 기억에 남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 때문이었다. 생김새가 음나무(엄나무)를 닮은 이 나무가 새순을 내놓을 때 유혹을 느꼈다. 음나무의 여린 새순을 데쳐먹는 생각이 난 것이다. 



그러나 나의 발칙한 생각을 읽은 나무는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랐으며 팔을 내밀 듯 가지로 성장하여 인도를 침범하였다. 그런 어느 날 다시 마트로 향했는데 이 나무의 줄기가 누군가(시청)에 의해 싹둑 잘린 것이다. 만약 인도를 향해 가지를 뻗지 않았다면 변을 당하지 않았을까.. 나는 속으로 "잘 자라주길 바랬는데.."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며 지나쳤다. 



그리고 잠시 잊고 지냈는데 이 나무는 잘린 줄기에 다시 새순을 내놓은 것이다. 만약 새순이 자라 다시 인도를 침범하면 또 변을 당하겠지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랴서 속으로 "제발 빨리 곧게 자라라"라고 속으로 응원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희한한 일이 일어났다. 



이번에 내놓은 새순은 대나무처럼 곧게 위로만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성장 속도는 매우 빨랐다. 마트에 들를 때마다 한 뼘 이상씩 쑥쑥 자라는 것이다. 너무 기특했다. 인도 곁 난간을 기준으로 수평으로 잘린 이 나무는 난간의 키를 훌쩍 넘으며 키 큰 나무로 성장한 것이다. 며칠 전 마트를 다녀오는 길에 다시 본 녀석은 잎을 다 떨구고 다시 봄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나를 내려다봤다. (참 대견하구나..!! ^^)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힐링(healing_치유)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리고 무엇이든 사람에게 유익한 여러 방법을 통해 치유를 말하고 있었다. 치유란, 우리 몸에 난 상처를 치료받는 일이다. 몸과 마음을 다 일컫는 치유 중에는 '치유의 숲길'도 등장한다. 특정 숲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며 마음에 생긴 생채기가 치유된다며 치유 프로그램까지 등장했다. 사람들은 자기 고장을 자랑하는 방편으로 치유의 숲을 소개하기도 하면서 자연치유를 받으라고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참 바람직한 모습이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도시에 살면서 생긴 피부병은 물론 사람들로부터 부대낀 생채기를 치료하는 건 숲이 내주는 넉넉함 때문일까.. 사람들은 한 술 더 떠서 숲 중에서 피톤치드(Phytoncide)를 많이 생산하는 나무를 선호하고 있었다. 숲 속의 식물들이 만들어 내는 살균성을 가진 모든 물질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자 삼림욕을 즐기는 사람들이 콕 집어낸 말이다. 



그들에 따르면 특정 나무가 내뿜는 물질에 근거하여 옷을 벗고 나무 아래 눕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피부에 난 아토피성 피부염이나 지루성 피부염, 건성 피부염, 접촉성 피부염 등을 치료할 수도 있다는 말일까. 아니면 숲이 주는 혜택은 거기까지란 말일까.. 파타고니아를 다녀온 사진첩을 열어놓고 잠시 우리 동네의 한 나무를 떠올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딱히 뭐라 꼬집아 설명할 수 없지만,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식물에도 영혼이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일컬어 인간만이 누리는 특별한 것이라 생각하며 만물의 영장(靈長)을 말한다. 인간이 모든 생물의 우두머리라는 것. 



그러나 파타고니아로 여행을 떠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오래전 이곳에 살던 원주민 인디오들은 '식물에도 영혼이 깃들었다'라고 말한다. 파타고니아를 주유하면서 나는 이들의 전설을 그대로 믿었다. 비록 우리가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만의 소통수단이 내 속의 찌든 때를 말갛게 하는 희한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인간만이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하다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의 이기심의 발로가 무색할 지경이다. 파타고니아의 어느 숲 속을 다녀도 기분이 좋아지고 누군가 곁에서 사랑의 언어로 속삭이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곤 하는 것이다. 그때부터 이심전심(以心傳心)의 오묘한 세계로 빠져드는 것이다.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어느 날 마트로 가면서 목격한 어느 나무에게 내 속 마음을 전했는데 녀석은 어떻게 나의 바람을 알아차렸는지 바람대로 쑥쑥 자라주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우연을 개입하면 우연일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를 대입하면 필연으로 다가올 것이며, 목신(木神) 혹은 천지신명(天地神明)은 늘 우리 곁에 존재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렇지 않다면 단지 사진첩을 열었을 뿐인데 그곳에서 전해지는 기분 좋은 치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태양계의 우리 행성에서 창궐하는 코로나 19도 자연의 일부이다. 그들은 태양계의 조화로움에 따라 잠시 일어났다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들이 우리 곁을 떠날 때까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혹은 집콕 등이다. 그런데 거기에 또 다른 방법이 하나 더 있다. 



주로 외부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정부 보건 당국의 지침에 따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러나 집콕으로 짜증을 더하며 상처 받은 마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때 나의 브런치를 열어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며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치유는 단지 어떤 물질에 기인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잊고 살았던 대자연의 한 모습을 보는 순간 만으로.. 회색 도시 혹은 직선의 도시를 떠나는 순간부터 몸이 거뜬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른 새벽에 컴을 열어 한국의 주말 날씨를 보니 반가운 눈 소식이 있었다. 눈이 오시면 상록수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는 물론..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그때부터 자연과 소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중에 눈이 녹아 질퍽거리거나 교통이 반해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코로나 19 시대에 가장 필요한 치유방법을 찾는 것도 바람직한 일 아니겠는가.. 그게 대자연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상처 받은 자 다 내게로 오라..!!"


l tesoro nascosto di El Chalten in Patagonia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patagonia ARGENTIN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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