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3. 2020

서울 첫눈과 돌로미티 첫눈

#26 돌로미티, 9월에 만난 첫눈

이날을 기다렸다. 서울에 첫눈이 오셨단다!!



어쩌면 자연재해 조차 우리가 만드는 일인지 모를 일이다. 자연이 만든 형상을 참조하면 피해를 겪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어른들이 위험한 장난을 하는 아이를 일러 '물가에 내놓은 듯하다'라고 하는 말씀은 일리가 있다. 돌로미티에 가면 자연스럽게 금수강산 대한민국을 떠올린다. 금실로 수놓은 나라.. 머지않아 그 아름다운 나라에도 자연을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아갈 것이다. 그 초석을 닦아낸 게 불과 이틀 전의 일이다. 사진첩을 열어 그때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니 여전히 그곳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코로나 시대가 끝나고 다시 봄이 오고 여름이 오면 그땐 가 볼 수 있을까..


그 고갯길을 언제 또다시 가 볼 수 있을까..?!!


지난 여정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세상을 사노라면 당신 마음대로 되는 법이 없다. 작은 사건을 도모할 수는 있을지언정 종국에는 수포로 돌라가는 게 세상이다. 세상의 조화로움 앞에서 우리는 매우 제한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라고나 할까.



서울 첫눈과 돌로미티 첫눈 




우리가 빠쏘 디 지아우 고갯마루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고갯마루 근처의 능선을 배호하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다. 그저 돌로미티에 첫눈이 오신 날 트래킹에 나선 사람들 쯤으로 여겼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포토그래퍼 혹은 방송사의 카메라 기자였다. 첫눈이 내린 이곳의 풍경을 담기 위해 멀리서 한 걸음에 달려온 사람들이었다. 처지는 서로 달랐지만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어느 날 치비아나 골짜기에서부터 지남철에 끌린 듯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이다. 첫눈이 안겨준 마법이었던 것이다.



첫눈이 소담스럽게 내린 고갯마루에서 지난여름 우리에게 큰 추억을 남겨준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고갯마루의 능선에서 내려다본 고갯길은 하얀 비단결에 싸인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누군가 이 세상을 다른 곳으로 옮겨다 놓은 듯 지난여름의 흔적은 첫눈 아래 오롯이 남아있었다. 



첫눈의 마법은 돌로미티에서 살아가고 있었던 풀꽃을 살포시 덮으며 시간여행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곳은 9월이 오시면 이미 겨울나라로 접어드는 것인지 짧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꽃을 피웠건만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운명의 날을 맞이한 것이다. 미치도록 아름답고 애잔한 풍경이 돌로미티의 한 고갯마루에 펼쳐지고 있었다.



서기 2020년 12월 13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브런치를 돌아보고 있던 중 서울에 첫눈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 즉시 나는 우리가 맞이했던 돌로미티의 첫눈을 단박에 상기하며 컴 앞에서 자판을 매만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에 내린 첫눈은 여러분들을 설레게 하고 있었다. 



첫눈..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설레는 사람들. 장차 그 눈이 폭설이 되고 빙판길을 만들고 다시 눈이 녹아 질척거릴 망정.. 그건 나중의 일이다. 첫눈이 오시면 그저 천방지축 마구 날뛰던 누렁이처럼 좋아 죽는 것이다. 도곡동에 살 때 우리는 누렁이 보다 더 날뛴 어른이었다. 철부지는 '저리 가라'였다고 나 할까..



거의 매일 청계산이나 대모산 등으로 아침 운동을 떠날 때였다. 어느 날 아침 창문을 열어보니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는 게 아닌가. 첫눈이 아파트 단지를 포근히 감싸던 날 하니는 평소처럼 등산 준비를 하던 중에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다른 때 같으면 따끈하게 끓인 커피를 포트에 담고 간단한 요깃거리를 준비할 텐데 그녀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복도를 내려다봤더니 종종걸음으로 아래층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래서 왜 그런지 큰소리로 물어봤다.


-자동차 열쇠는..?! ㅜ

-나 먼저 주차장에 내려가 있을 게.. 얼릉 와!! ^^

-흠.. 알써, 금방 따라갈 게..ㅋ 

-얼릉..! ^^



그녀는 첫눈에 마음에 빼앗긴 탓에 한시라도 빨리 주차장으로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우리는 운전을 번갈아 하고 있을 때였는데.. 글쎄 그녀는 청계산으로 대려다 줄 자동차 열쇠를 새까맣게 잊고 일단 주차장으로 튀고(?) 있는 것이다. 속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어차피 내가 주차장에 도착해야 어디론가 떠날 게 아닌가. 그녀는 내가 주차장으로 내려갈 때까지 차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자동차 앞 창으로 첫눈을 맞으며 청계산으로 향한 것이다. 그때부터 하니의 걸음은 평소와 완전히 달라진다. 누렁이가 첫눈을 만난 격이랄까.. ㅋ



우리가 어느 날 돌로미티에서 만난 첫눈에도 당시의 습관이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자동차 뒷 트렁크를 열어 등산화를 준비하고 배낭에 간단한 음료와 먹거리를 준비하는 동안 하니는 어느새 저만치 떠나고 있었다. 마무리가 끝나면 금방 따라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잠시 잠깐도 못 기다리고 출발한단 말인가..(웃겨요. 욱껴!!ㅋ)



그녀가 저만치 앞서간 뒤로 지난가을의 흔적과 우리들의 추억이 오롯이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들은 너무 좋아하면서)와 <~~ 아저씨다. 숙모는 금방 지나가쪄요.. 안녕하세요? ^^

-너무 반갑구나. 아이들아..! ^^

-그런데 아저씨.. 우리 다시 만나려면 겨울이 지나고 봄까지 더 지나야 해요. 흑흑  

-그렇구나.. 울지 마라 아가야. 그때 다시 만나면 돼지.. 뚝!


첫눈은 또 다른 별리를 잉태하고 있었다. 첫눈의 마법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왔다가 이번에는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하니와 첫눈의 설렘 속에 아름다운 기다림의 시간이 다가왔다.


La prima neve sulle Dolomiti in Septtembre_Passo Giau
il Nostro Viaggio Italia settentrionale con mia moglie
il 13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