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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4. 2020

머피의 법칙과 손으로 먹는 요리

-지중해 문어 곁들인 삶은 계란과 아싹한 빵 인살라따 

비 오시는 날, 손으로 먹으면 더 맛있다..?!



   서기 2020년 12월 13일, 내가 살고 있는 이탈리아 남부 뿔리아 주 바를레타는 하루 종일 우중충한 날씨를 보였다. 거기에 비와 바람까지 가세했으므로 음산하기 짝이 없는 날씨.. 이날 하루 동안 내겐 머피(Legge di Murphy_머피의 법칙)가 계속 따라다녔다. 그 시작은 날씨 때문이었다. 시내에 볼 일을 보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다가 혹시나 하고 하늘을 봤더니 날씨가 훤해 보였다. 그래서 평소에 늘 작은 배낭에 넣고 다니던 양산을 빼놓았다. 볼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그 빈자리에 우유나 과자 부스러기를 채울 심산이었다. 



집을 나서자마자 나의 동선은 집 뒤편에 위치한 작은 공원을 지나게 됐다. 이곳은 평소에 사람들이 많이 붐비는 곳이며 노천카페가 네 곳이나 있는 곳이다. 날씨가 맑고 볕이 좋은 날은 공원 가득 사람들이 몰려든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도 많은지 커피 한 잔 혹은 맥주 한 병을 놓고 하루 종일 떠들어 댄다. 


이런 풍경을 이탈리아어로 끼아끼아레(Chiacchiere_잡담)라고 말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탈리아어 단어 중에 하나이다. 먼 나라..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잡담에 관한 한 별로 다르지 않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잡담을 하는 모습과 대동소이하다. 무슨 말을 하는지 끼악! 까르르~ 좋아 죽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풍경을 흔히 볼 수 없게 됐다. 코로나 19 때문이며 정부 보건당국의 보건 수칙 때문에 거리두기는 물론 도시 간 이동까지 금지된 곳이 적지 않다. 따라서 우리 동네의 공원은 폐쇄되었으며 빈 공간은 낙엽으로 알록달록 쌓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비는 오시지 않았고 간밤에 내린 비가 낙엽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를레타 기차역까지 진출하면서부터 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비를 쏟기 시작했다. 비를 피해 건물 처마 밑으로 피신한 채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빌어먹을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처마 밑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그제야 침실의 창문을 열어두고 온 것을 알았다. 날씨 좋은 날 환기를 시킬 요량이었는데 하필이면 비가 오시고 있는 것이다. 이런 덴장 비는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비가 멈추는가 싶은 찰나에 바를레타 역으로 향해 달렸다. 그곳은 비를 피하기 좋을 뿐만 아니라 화장실이 있는 곳이다. 바를레타 시내에서 공용 화장실이 유일하게 세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역내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매표소 곁의 의자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다가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은 1번 비나리오(Binario_플랫폼) 곁에 있었는데 말끔히 단장되어 있었다. 그게 문제였다. 아무런 생각 없이 문을 당겼더니 꼼짝도 안는다. 그제야 화장실이 유료(1유로)로 바뀐 것을 알게 됐다. (어라.. 희한하게 꼬이는 날이네. ㅜ ) 1유로짜리 동전도 없었지만, 그럴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다시 매표소 앞으로 돌아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대략 1시간은 흘렀을까.. 



비가 조금씩 잦아드는 것을 목격하고 생각을 바꿨다. 외투를 벗어 배낭에 넣고 모자를 눌러쓰고 건물 처마 밑으로 향해 빠르게 이동할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왜 진작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ㅋ)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달려간 곳은 어느 마트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갑자기 비가 뚝 그친 것이다. (세상에..!!) 이럴 줄 알았다면 기차역에서 좀 더 기다려야 했을 거 아닌가. ㅜ


비에 적당히 촉촉이 젖은 나.. 그때 생각난 게 오늘의 리체타이다. 지중해 문어 곁들인 삶은 계란과 아싹한 빵 인살라따라 명명한 이 요리는, 별거 아닌 것처럼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전채(前菜) 중 하나이다. 매우 간단한 리체타이면서도 식욕을 마침맞게 당기는 것. 촉촉이 젖은 내가 용왕님 나라의 문지기(?) 지중해 문어 다리를 소환한 것이다. 그리고 삶은 계란(반숙 보다 조금 더 삶은)과 아싹 바싹한 빵 한 조각으로 용궁의 풍경을 연출했다. 



이 리체타는 이탈리아 요리에 입문한 후 피렌체의 한 리스또란떼에서 일할 때 주로 만든 요리였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요리는 손으로 집어 먹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아이들이 너무 좋아할 것 같다. 그냥 삶은 계란을 바구니 등에 담아 내놓는 것보다. 요렇게 장식해 놓으면 어린이들이 너무 좋아하지 않겠는가. 어른이도 별 수 없다. 

노른자는 강판에 갈고 흰자는 잘게 다녔다. 장식은 퓌노끼오(Finocchio)로 용궁을 연출하고 치메 디 라파의 앙증맞은 샛노란 꽃으로 장식했다. 하니가 한국에서 공수해온 잣도 흩뿌렸다. 요걸 아싹 바싹한 빵 위에 올려먹으면 시쳇말로 뻑~간다. 어른이는 문어 다리를 잘라 매운 고추 조각을 올려먹으면, 그때부터 식욕이 왕성하게 당기며 아뻬르띠보(Aperitivo_식전주)가 급 당길 것. 



마트에 들러 비노 로쏘 한 병을 구입하고 집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다행히 열린 창으로 비가 들이치진 않았다. 외투를 끄집어내고 옷걸이에 걸고 시작한 전채요리.. 손으로 음식을 집어먹는 문화는 인도를 중심으로 주변 나라에 걸쳐있었다. 피렌체서 함께 일하던 동료는 방글라데시 출신이었는데 그의 집에 초대되어 갔을 때 먹어본 음식이 카레로 만든 닭요리였다. 하지만 손으로 집어먹는데 익숙지 않아서 도구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 문화의 배경은 어떻든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손가락을 쪽쪽 빨면서 먹던 음식이 생각난다. 어쩌면 떼 국물까지 쪽쪽 다 빨았는지 모르겠다만..ㅋ 그게 그렇게 편할 수 없었다. 아마도 더없이 안락했을 어머니의 자궁 속을 그리워하는 행위이자 원초적 욕망이 배인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머피의 법칙은 식전주와 인살라따로 마무리됐다는 거..! ^^


Si mangia antipasto per mano_Tre Ingredienti
il 14 Dicembre 2020, La Disfuda di Barletta PUGLIA
Fo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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