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엘 찰텐, 라구나 또레 가는 길
화장을 고치는 나목들, 어디로 떠나시는 것일까..?!!
이른 새벽에 컴을 열어 한국의 주말 날씨를 보니 반가운 눈 소식이 있었다. 눈이 오시면 상록수 위로 떨어지는 눈송이는 물론.. 소복이 쌓인 눈을 바라보는 순간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며 그때부터 자연과 소통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중에 눈이 녹아 질퍽거리거나 교통이 반해되는 것은 나중의 일이다. 코로나 19 시대에 가장 필요한 치유방법을 찾는 것도 바람직한 일 아니겠는가.. 그게 대자연으로부터 발현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상처 받은 자 다 내게로 오라..!!"
지난 여정 파타고니아, 치유의 숲길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삶에 쫓기다 보면 우리가 반드시 누려야 할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잠시 잊게 된다. 어쩌면 그 시간이 길면 길수록 우리의 오감은 무디어지고 어떤 일에도 감동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동안 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주로 그런 모습이었다. 대자연에 대한 불감증이라고나 할까.. 그분들은 사람들이 만든 그림이나 조각 등으로 대리만족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 엘 찰텐의 숙소를 떠난 하니와 나는 라구나 또레가 저만치 멀리 보이는 언덕까지 진출한 후 목적지로 이어지는 꽤 긴 숲 속을 걷고 있었다. 숙소로부터 언덕까지 전체 여정의 1/3 정도라면, 숲길은 2/3 정도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탄한 길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산중에 펼쳐진 펼쳐진 작은 평원은 한 때 빙하로 채워졌을 것이지만 지금은 그 자리를 빼곡한 숲으로 채워진 것이다.
그곳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나목들이 빼곡했다. 곧 우기가 오시면 세찬 바람과 비와 눈이 이 평원을 휩쓸 것이다. 하니가 저만치 앞서 걷는 가운데 나는 파타고니아가 빚어낸 걸작품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고 있었다. 한 때 그림이나 서예에 심취한 적도 있었지만 그 또한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먹고살기 바빴던 이유도 거들었지만 자연을 향한 나의 들끓는 열정을 맞지 못했던 것이다. 그게 나의 브런치에 등장하는 사진들이자 대자연의 풍경들이다.
언제인가 이웃분들에게 글을 쓰는 작가에 대해 잠시 언급한 바 있다. 글은 왜 쓰는가에 대한 내 생각 일부를 '마음의 변비' 때문이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 육신을 지탱하기 위해 음식을 먹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게 만드는 양식이 책이며 지식이며 각종 문화생활이나 예술활동 등일 것이다.
그러니까 음식을 먹었으면 반드시 배설을 해야 할 것이며, 마음의 양식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마음의 양식이 변비로 변하기 전에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것. 그게 글쓰기 등으로 나타나는 것. 육신의 변비도 그렇지만 마음의 변비 조차 해우소(解憂所)가 필요한 것이랄까..
내가 일고 있는 유무명의 화가나 작가들은 당신의 내면의 세계를 글과 그림 등으로 표출하고 있었다. 요즘 나는 나의 브런치에 하루에 두 번씩 글을 쓴다.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 때문이지만 밀린 숙제(?)들 때문에 지금처럼 이른 새벽에 한 차례.. 그리고 저녁을 먹기 전에 한 차례.. 이렇게 두 번의 포스트를 작성하는 것이다. 아마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런 활동은 계속될 것이며 밀린 숙제는 내 마음이 변비와 다름없다.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작가 한 분은 추상화를 그리는데 다른 분들의 작품과 비교가 되며 뛰어났다. 그분의 작품은 난해하지도 않고 한눈에 쏙 들어오고 아름답다. 그녀가 즐겨 쓰는 물감의 색채는 화려하고 붓의 터치는 강렬하고 간결했다. 굳이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당신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어떤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걸린 작품들은 난해하기 이를 데 없고 작가가 그 앞에 서서 이런저런 사유로 이런 작품이 탄생되었노라고 장황한 설명을 한다. 나는 그 즉시 마음을 닫고 만다. 무슨 작품이 설명이 필요할까 싶은 것이다. 시쳇말로 당신의 마음이 꼴리는 대로 혼을 다한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단박에 감동을 일으키게 되는 것.
지금 컴 앞에는 하니기 두고 간 작품 한 점이 액자에 담겨있는데 나는 그녀가 그린 이 작품을 너무도 아끼고 좋아한다. 그녀는 작품 활동을 하는 시간 동안 작품 속으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취미생활 이상의 예술활동은 어느 날 활화산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휴화산으로 변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코로나 19 때문이었으며 이탈리아에 창궐하고 있는 코로나를 피해 한국에 가 있는 것이다.
먼데 있지만 우리를 이어주는 장치는 법적인데 있지 않고 추억을 공유하는 고래심줄 같은 질기디 질긴 인연의 끈에 붙들려있는 것이랄까.. 그 인연 속에는 세상에 실면서 처음 걷게 된 숲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아무 때나 시도 때도 없이 '거기'라고 말하는 즉시 그곳이 어딘지 단박에 알아차리는 것. 그 길 옆에는 조물주가 정성 들여 만든 세상의 걸작품들이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장차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바람의 땅 혹한의 땅으로 변할 이곳은 우리네 삶은 엄살에 불과할 정도의 날씨를 보인다. 어떤 나무들은 혹한에 대항하지 앉고 납작 엎드린 결과 나무 본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분재된 것처럼 머리를 땅에 박고 있는 것이다. 그게 어느덧 억만 겁의 세월 동안 이어져 온 파타고니아의 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라구나 또레로 가는 숲길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수목한계선 밑 산기슭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놓은 작품처럼 생기발랄한 모습으로 뷰파인더를 자극하는 것이다. 어디로 떠나시려는지.. 화장을 고치고 실비단으로 만든 고급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곳. 곧 무대 위로 오르는 댄서들처럼 가벼운 몸짓으로 여행자를 유혹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걸었던 그 숲길..!
그저 마음 가는 데로 발을 옮기면 파타고니아가 연출한 최고의 걸작품 속으로 빠져든다.
l tesoro nascosto di El Chalten in Patagonia
il Nostro viaggio in sudamerica, patagonia ARGENTIN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