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9. 2020

코로나 물러서면 재연될 풍경

#45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지난여름 우리가 머물렀던 쉼터에서..!!



한국에 머무는 하니는 여전히 돌로미티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중 당신이 마신 물과 공기를 차마 잊지 못하는 것이다. 이곳 돌로미티의 리푸지오 삐쉬아두는 물론 19박 20일 동안 싸돌아 다녀도 피곤을 느끼지 못한 일등공신이 물과 공기로 여기는 것이다. 참 희한한 경험이었다.

벼랑길을 내려올 때 후덜덜 공포에 떨던 하니가 어디서 힘이 솟았는지 저만치 앞서 걷고 있다. 

돌로미티 알타 바디아(Alta badia)의 리푸지오 삐쉬아두(Rifugio Pisciadu')로 가는 2번 루트 표시 아래 앙증맞은 풀꽃들이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든다. 정상으로 오를 때 만나지 못한 녀석들이 하산 길에 나타난 것이다. 

-(고사리 손을 흔들며) ㅋ 삼촌 안녕히 가세요. 그리고 숙모두요..! ^^

-그래, 고맙구나 아가들아.. 너희들도 늘 건강해야 해..!! ^^


지난 여정 그녀가 아름다울 때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힘든 여정을 끝으로 하산길에 접어든 것이다. 곧 우리의 쉼터로 돌아갈 텐데.. 그날이 어느덧 100일이 지나고 있다. 오늘은 하산길에 만난 절경을 뒤로하고 지난여름 우리가 머물었던 쉼터를 잠시 돌아보고자 한다. 그 장면을 영상과 사진에 담았다. 



영상, 지난여름 우리가 머물었던 쉼터




영상에 등장한 젖소들은 돌로미티의 알타 바디아 산기슭에 방목된 소들이다. 녀석들이 풀을 뜯어먹으며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때마다 목에 메단 풍경소리가 댕그렁 댕그렁 거린다. 맨 처음 저 멀리서 들려오던 풍경소리가 우리가 머물고 있는 쉼터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녀석들의 눈은 얼마나 착하고 순한지.. 영상을 편집하다 보니 우리가 머물렀던 지난여름의 추억이 겹치면서 다시 가고 싶은 생각 간절했다. 그러나 당분간은 꿈도 꾸지 못할 곳. 코로나가 저만치 물러가던지 사그라들아야 새로운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코로나 물러서면 재연될 풍경


우리가 머물렀던 쉼터를 잠시 돌아볼까..



자동차가 주차된 곳은 알타 바디아의 입간판이 있는 곳으로 자동차 대여섯 대가 주차될 수 있는 공간이다. 고갯길을 오가면서 가장 적당한 자리가 어딘지 물색하던 중에 이곳에 자리 잡았다. 곁에는 깨끗하게 비어있는 쓰레기통과 장의자가 하나 놓여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맑은 계곡물이 졸졸거리고 있었다. 마실 물과 손빨래는 그곳에서 해결했다. 장의자에 앉으면 연재 글에 실린 리푸지오 삐쉬아두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곳. 



하니는 다음날로 예정된 산행을 위해 작은 배낭을 손질하고 있었다. 바닥에 자리를 펴 놓고 바느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여름 8월 10일 오후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녀 옆에 있는 간이 텐트는 바를레타의 중국인 상점에서 구입한 중국제 싸구려 텐트로 볕과 가는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다. 



그녀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동안 쉼터 주변을 돌아봤다. 쉼터 바로 코 앞에 위치한 산기슭을 살펴보니 그곳에는 야생화들이 조용히 숨죽이며 살아가고 있었다. 맞은편 산기슭에서 내려다본 쉼터에서 그녀는 여전히 바느질에 열중이다. 그녀는 바느질 선수다. 웬만한 건 모조리 다 직접 수선하곤 한다. 새 옷을 해체하여 다시 만들 정도의 보기 드문 실력이다.(아고.. 팔불출 ㅜ)



우리에게 행운을 가져다준 젖소 무리들




이날 아침 쉼터 주변을 어슬렁 거리는 젖소 무리를 보고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참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녀석들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풀을 뜯는데 무진장 먹는 모습이다. 녀석들이 사는 이곳은 천국이나 다름없는 곳. 비록 주변 고갯길에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지만 오염원이 없는 너무 깨끗한 곳이다. 이렇게 자란 녀석들은 생전에 우리에게 젖을 내줄 뿐만 아니라 사후에는 꼬리부터 머리 끝까지 어디 하나 버릴 데없이 다 내어준다. 소가 인간들에게 유익한 동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 있나.. 



하니가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올 내년(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이다. 그냥 소의 해가 아니라 신성한 기운을 지녔다는 '흰 소의 해'이다. 소는 우리나라의 농경 생활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으며 가축의 의미를 넘어 마치 한 식구처럼 생각해 온 동물이다. 우리나라 어느 곳을 돌아다녀 봐도 소를 만날 수 있고 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듬직하며 우직하고 성실한 소의 성격은 끈질기고 온순하고 또 힘이 세다, 그러나 사납지 않고 주인에게 순종하는 영험한 동물이다. 



이런 성격 등으로 인해 어떤 나라에서는 신성화시킨 동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의 천성은 은근과 끈기와 여유로움을 지닌 우리 민족의 기질과 잘 부합되어 선조님들은 소의 성품을 아끼고 사랑해 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은 농촌이 홀대를 받는 세상으로 변해서 소는 특정 지역에서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도시에서는 소를 찾아볼 수도 없거니와 식당의 차림표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것. 



그런 동물을 돌로미티 알타 바디아에서 지근거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곁을 떠돈 소의 기운 때문이었는지 우리는 돌로미티 여행을 끝마칠 때까지 무사했으며, 하니를 코로니 19를 피해 한국으로 도피시킬 때까지 늘 행운이 함께 했다. 그리고 계획대로라면 코로나가 사그라들 즈음 하니는 흰소의 해에 흰소 등에 올라타고 이탈리아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가 오시면 우리가 잠시 누렸던 쉼터의 행복을 다시 누리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쉼터 주변에서 만난 야생화




그녀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 동안 산기슭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더니 숲 속 풀숲에 빼꼼히 고개를 내민 아름다운 요정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마치 내가 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곳곳에서 방긋거리는 것이다. 이슬에 촉촉이 젖은 풀숲.. 곧 가을이 오실 텐데 이제야 꽃잎을 내놓는 것이다. 



녀석의 이름을 찾아보니 그냥 돌로미티의 야생화 (Fiori della montagna di Dolomiti) 정도로 표시되고 있었다. 우리네 민초를 닮은 소박한 요정들이다. 그러나 이 마저도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눈에 띄지 않는 매우 귀한 녀석들.. 그리고 숲 속에는 키가 훤칠한 야생화도 눈에 띄었다. 녀석의 이름은 독특했다.



에삐로비오 또는 가로파니노 디 플레이셔(Epilobio o garofanino di Fleischer)




자료를 찾아보니(위 링크) 녀석의 키는 10cm에서 40cm까지 자라는 원통형 줄기를 갖춘 다년생 식물이었다. 꽃들은 분홍색이며 7~8월에 꽃을 피운다고 한다. 주 서식지는 비단 같은 땅 혹은 자갈이 깔린 땅 등 약간은 척박해 보이는 땅에서 자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녀석들을 만난 시기가 끝물이었던 셈일까.. 아마도 이곳을 다녀온 이후로 녀석들은 자취를 감추고 우리가 돌아올 날을 학수고대 하지 않을까.. (너희들을 다시 만나보고 싶단다!! )



쉼터 주변의 자연과 풍광들




그동안 기록, 돌로미티 19박 20일을 응원해 주신 여러분들이 눈여겨볼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쉼터에서 늘 올려다보던 장엄한 바위산이다. 저 산 꼭대기에 삐쉬아두 로지(Rifugio Pisciadu')가 위치해 있으며 하니와 나는 그 정상을 다녀올 꿈을 꾸고 있었던 것이다. 하니가 어느 날 쉼터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풍경은 꿈에 부푼 장면이자, 내일(아침)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연재 글 그녀가 아름다울 때 편에 이어 준비과정을 참고하는 게 바람직할 것 같다는 생각에 산행 이전의 풍경을 담고 있는 것이다. 



아울러 코로나 19가 사그라든 다음 돌로미티를 여행하시려는 분들에게 작은 팁이라도 선물해 주고 싶었다. 한국에서 또는 다른 나라에서 이곳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 쉽지 않다. 그곳도 초행길이라면 광활한 돌로미티 산군을 돌러보다가 길을 잃고 헤매거나 생각보다 어려움이 뛰따르는 걸 경험할 수도 있다. 우리가 19박 20일 여정으로 다녀왔지만 겨우 간만 봤을 뿐이다. 



여행지 선택과 일정에서부터 잠자리와 먹거리 등을 해결해야 할 텐데.. 무턱대고 특정 여행사 등지에 기대면 제한된 시간에 기념사진만 찍고 오게 될 것이다. 준비를 철저히 한다면 이곳에서 자동차를 빌리고 텐트를 지참하면 비자 없이 대략 3개월 동안 평생 동안 가슴에서 지우지 못할 추억을 챙겨 올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19는 그런 의미에서 돌로미티 여행을 준비하시는 분들에게 크나큰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지도를 펴 놓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충분히 하고 명소 주변을 머릿속에 담고 또 담으시라.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각오로 여행에 임하면 돌로미티는 절대로..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가 하루빨리 사그라지기 바라는 마음이자 당시를 재연하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은 계속된다.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2020
Scritto_il 18 Dic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매거진의 이전글 그녀가 아름다울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