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20. 2020

나(自我)를 찾아 떠나는 여행

#13 남미 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처음부터 끝까지

(自我)는 누구란 말인가..?!!



세상의 격언 중에는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은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포스트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독립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한 사람들이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이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선 나약한 모습이다. 그리고 당신을 따라 세상 끝까지 따라가고 싶은 사람의 절규 같은 말 한마디.. 영화 속의 대사를 소환하면 이랬지..


할아버지..

내가 보고 싶더라도 참아야 돼

나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도 참는 거야

할아버지요.. 나는 집으로 가요..


난 집으로 가니

할아버지는 잘 계셔요

춥더라도 참고..


하니는 어느덧 또레스 델 빠이네 계곡에 걸쳐있는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우리도 언제인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어떤 인연으로 만나고 뜨겁게 사랑하고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미운 정 고운 정이 뼛속까지 스며들면.. 사랑이 달라 보이고 사람이 달라 보이지..


님아, 그 강을 더디게 더디게 건너시오..!!


지난 여정 님아, 그 강을 더디게 건너시오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영혼을 말하지만 실상은 육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나 할까..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라 할 수 있을 만큼, 존재감은 '눈 앞에서 멀어질 때 마음도 멀어진다'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나(自我)를 찾아 떠나는 여행




하니와 내가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또레스 델 빠이네 계곡 저만치 멀어져 있다. 아침햇살은 황금빛으로 변해 계곡 위로 쏟아져 내린다. 우리는 계곡에 걸쳐둔 나무다리를 건너며 뇌성처럼 소리를 지르는 계곡물과 함께 시간을 계수할 수 없는 퇴적물을 바라볼 수 있었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나이테가 강으로 변한 물줄기를 이리저리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존재는 그저 티끌만 한 것. 대자연 앞에 서면 무한 작아진다. 반면에 대자연을 통해 나의 존재감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그랬다.




서기 2020년 12월 20일 아침, 나의 하루 일과는 눈 뜨자마자 한국의 뉴스부터 챙긴다. 그리고 커뮤니티를 돌아보게 된다. 옛날에는 조간신문을 펼쳐보는 게 하루의 시작이었지만 지금은 달라도 한참 달라진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곧 5G 세상이 도래할 것이며 대한민국이 그 선두주자란 걸 의심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참 자랑스러운 내 조국이다. 



그런데 어디를 가나 눈 밖에 나는 것들도 있다. 한국이 초일류 국가로 나아가는데 여전히 딴지를 거는 녀석들이 있는 것이다. 그게 요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자 웃기게 만드는 시사문제이다. 서슬 퍼렇던 유신독재 및 군사독재 시절에는 꼼짝도 못 하던 권력의 시녀들이 민주정부가 들어서니 주군의 목에 칼을 겨누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름 조차 부를 가치를 상실한 윤뚱렬이 그 주인공이자 그들과 카르텔을 이루고 있는 국민의 짐 그리고 조중동 등이다. 시쳇말로 겁대가리 상실했거나 실성한 인간들이 아닌가 싶다. 거기에 간밤(현지시각)에 올라온 뉴스를 보고 있자니 즉시 퓹~하며 빵 터졌다. ㅋ 안 떨 수 때문이었다. 그는 조중동과 맞먹는 스브스 뉴스에 "文 정권 폭주 저지. 결자해지 할 것"이라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출사표를 던졌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이 말은 (어떤) 일을 저지른 사람이 그 일을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댓글을 통해 안떨수 파이팅이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며 비아냥 거렸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했다고 위키백과가 전한다. 대한민국의 수제들이 입학할 수 있다는 서울대학교가 이 모양이다. 


또 안떨수 보다 두 살 어린 윤뚱렬은 서울대학교 법학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의 이력을 소유한 자이며 9수 끝에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한마디로 웃기는 짜장들이다. 그들은 당신의 자아를 전혀 발견하지 못한 것이며 자아의 실체가 서울대학교 출신 아무개로 알고 있는 것일까..





또레스 델 빠이네 계곡에 걸쳐둔 나무다리를 건너자마자 숲길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내가 하니 보다 저만치 앞서 걸었다. 그녀의 걸음은 시곗바늘처럼 적당한 간격을 두고 쉼 없이 이동하는 것과 닮았다. 나의 걸음이 빨리진 이유는 다름 아니다. 이때부터 숲길 근처에는 야생화들이 즐비하게 피어있는 것이다. 



이런 풍경들은 나의 유년기를 행복하게 해 준 것들이며 사춘기까지 나의 마음을 다듬은 것들이다. 마음이란, 비물질이자 오감의 결정체라는 것을 사는 동안 깨우쳤으며 불변의 진리나 다름없다. 풀꽃과 육체 및 눈에 보이는 것 모두는 물질로 시들거나 변하지만 마음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 마음은 죽음에 다다라 흐트러질 망정 우리 행성에 고스란히 남아있게 되는 것이다. 



자아의 실체가 통째로 박제된 곳. 우리가 대자연 속에서 행복한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부모님의 몸을 빌어 태어났으며, 장차 돌아갈 본향 또한 그곳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는 코로나 19의 정체도 따지나 마나 자연의 일부이며 그들 또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한다. 다만, 그들 스스로 살아갈 수 없어서 인간의 몸을 숙주로 번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 또한 조물주가 지은 자연의 일부이고 보면, 안떨수나 윤뚱렬도 자연의 일부겠지..ㅋ 





휴일 날 아침 컴을 열어 우리가 다녀온 여행지를 천천히 실 피고 있노라니 만감이 교차된다. 나의 자아 속에 혹은 코로나의 자아(이렇게 불러도 되나..? ㅜ)를 이루고 있는 실체들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교차되어 머리를 스쳐간다.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는 오감을 가져야 가능할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전히 좀 더 많이 차지해야 하는 유아적 발상을 가질지 모르겠지만, 종국에는 그들의 삶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공부는 교실이 전부가 아니며 자연의 이치를 깨닫게 만드는 일에 열중해야 할 것이다. 인성을 바르게 하는 초등교육이 중요한 것도 그러할 것이며, 매우 부족해 보이지만 현장체험학습을 보다 더 늘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한동안 부재한 현실이었으므로 떨수나 뚱렬이 혹은 국민의 짐 같은 불편한 집단들이 생길 게 아닌가. 코로나 19 때문에 코로나를 욕할 게 못된다. 본능적으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은 비슷할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들이 이웃을 못살게 구는 코로나처럼 굴어서는 될 일인가. 지근거리에 있는 성당의 종소리가 요란하다.


*아래 자료 영상은 장차 보시게 될 또레스 델 빠이네의 비경이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il Nostro viaggio Sudamerica_Torres del Paine, Patagonia CILE
Scritto_il 20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