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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꿈꾸는 그곳 Dec 17. 2020

님아, 그 강을 더디게 건너시오

#12 남미 여행, 또레스 델 파이네 처음부터 끝까지

하늘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여한 것..?!!



-혼밥이 너무 싫어..ㅜ

-그래도 잘 챙겨 먹어야 해..!


딸내미와 함께 밥을 먹을 때는 정량을 넘기면서 과식을 했지만, 막상 집으로 돌아와 혼자 챙겨 먹는 혼밥은 너무 싫은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좁쌀이 된다. 최소한 단백질은 얼마나 챙겨 먹어야 하고 야채와 물 기타 등등.. 그게 씨알이 먹힐 리가 없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좁쌀이 되는 일 밖에 더 있을 수없다. 그녀는 어떤 때 내게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목숨을 걸어야 해..!!"


그 여자 사람이 저만치 앞서 가는 님이다.


지난 여정 저만치 앞서 가는 님 편 끄트머리에 이렇게 썼다. 코로나 19를 피해 이탈리아서 한국으로 피신해 있는 하니와 통화 내용 속에 번번이 끼어드는 게 당신의 안부이며 건강이다. 멀리 떨어져 살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이게 전부일까..



님아, 그 강을 더디게 건너시오




칠레의 파타고니아 땅에 우뚝 솟아있는 또레스 델 빠이네로 가는 길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정상 부근 산기슭까지 이어지는 멀고 먼 길을 걸을 때면 우레와 같은 소리를 듣게 된다. 마치 바로 곁에 폭포가 있는 것처럼 울림이 대단하다.(위 영상 참조) 평범해 보이는 듯 대범해 보이는 계곡을 따라 걷노라면 시름을 잊게 된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한 곳만 보고 걷게 되는 것이다. 



산길 옆 깎아지른 계곡을 바라보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세상의 많은 산 들 중에 이런 모습을 갖춘 것도 이곳뿐이겠지. 정상을 향해 걷는 동안 뷰파인더에 비친 풍경들은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풍광을 보고 죽는 것도 행운이랄까.. 이틀 전 하니와 통화를 하면서 그녀는 놀라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응, 있잖아.. 영화감독.. 김기덕..!

-잘 알지.. 며칠 전에 죽었더군.

-알고 있었네..?!

-며칠 전에 커뮤니티를 돌아보니 라트비아(Lettonia)서 코로나 19에 감염되어 죽었더라고..!

-참, 아깝네 젊은 사람인데..



이렇게 시작된 통화는 끝날 줄 몰랐다. 영화계의 아웃사이더로 알려진 그의 나이는 12월 20일이 되면 만 60세에 이른다. 환갑을 코 앞에 두고 북유럽의 라트비아 공화국에서 코로나 때문에 변을 당한 것이다. 그는 세계 3대 영화제(칸, 베네치아, 베를린)에서 모두 굵직한 상을 거머쥐며 한국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여배우를 성폭행한 혐의로 미투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그의 명성은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지난 11일 오전(현지시간) 라트비아의 한 병원에서 코로나 19에 감염돼 치료를 받다가 상태가 악화돼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지병인 신부전증과 코로나 19가 겹치면서 사망했다는 것. 



1960년 12월 20일 생인 그의 어린 시절은 다소 불우했다고 전한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공장에서 노동자로 근무했고,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면서 영화 공부를 하거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획, 각본, 감독, 촬영, 제작, 투자 등 모든 부분에 직접 참여하면서 남다른 능력을 과시한 보기 드문 천재 영화인이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그가 정규 교육을 받고 제도권에서 활동했더라면, 엄청난 규모의 추모행사가 치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최후는 비극처럼 쓸쓸했다. 



-안 됐네..ㅜ

-그러게 말야..!



세상 일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한국에 가 있는 하니와 통화내용은 주로 건강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런 한편 못다 한 당신의 꿈 이야기와 주변의 가십이 전부이다. 못다 한 당신의 꿈은 중단된 그림 수업이며 어느 여름날 만난 꿈같은 세상의 모습이다. 



세상에 태어난 후 두고두고 잊지 못할 사건이 있다면 파타고니아 여행이었으며 최근에 둘러본 돌로미티의 빼어난 풍광이었다. 억만금을 품고 세상 최고의 명예를 거머쥔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스티브 잡스가 보여주었고 김기덕이 보여주었다. 그들은 가장 평범한 명언을 등한시한 결과 죽음에 이른 것이다. 



세상의 격언 중에는 "돈을 잃으면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많은 것을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런 말은 아무리 바쁘게 살아도 반드시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오늘 포스트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란 독립영화의 제목을 패러디했다. 서로를 너무 사랑한 사람들이 입에 올릴 수 있는 말이자,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운명 앞에 선 나약한 모습이다. 그리고 당신을 따라 세상 끝까지 따라가고 싶은 사람의 절규 같은 말 한마디.. 영화 속의 대사를 소환하면 이랬지..



할아버지..

내가 보고 싶더라도 참아야 돼

나도 할아버지 보고 싶어도 참는 거야

할아버지요.. 나는 집으로 가요..


난 집으로 가니

할아버지는 잘 계셔요

춥더라도 참고..



하니는 어느덧 또레스 델 빠이네 계곡에 걸쳐있는 나무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우리도 언제인가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세상에 태어나 어떤 인연으로 만나고 뜨겁게 사랑하고 지지고 볶고 싸우다가 미운 정 고운 정이 뼛속까지 스며들면.. 사랑이 달라 보이고 사람이 달라 보이지..



님아, 그 강을 더디게 더디게 건너시오..!!


il Nostro viaggio Sudamerica_Torres del Paine, Patagonia  CILE
Scritto_il 16 Dicembre 2020, La Disfid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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