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기록, 돌로미티(Dolomiti) 19박 20일
천상의 도시락, 맛은 어떨까..?!!
천하절경의 돌로미티 리푸지오 삐쉬아두(Rifugio F. Cavazza al Pisciadù Hütte) 정상에 서면 세상이 발아래 보인다. 벼랑 끝에 서서 사람 사는 세상을 내려다보니 오금이 저릴 정도이다. 위 자료사진 좌측으로 다른 루트를 따라 정상으로 오고 있는 트래킹족 두 사람이 보인다. 그 너머로 미니어처처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곳은 장차 장도에 오를 라 빌라(La Villa)라는 곳.
사방에 널린 돌로미티 산군(山群) 전부가 명소이며 여행자들은 당신의 선호도에 따라 각자가 선택한 목적지를 찾아 나선다. 사진첩을 열 때마다 감동의 물결이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누구라도 이곳에 서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을 때 먹은 기내식(機內食)이 생각날 법하다. 우리는 정상 부근의 풍광을 돌아본 후 곧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하니는 저만치 앞서 걷고 있었다. 마치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돌로미티 노란 꽃양귀비처럼 리푸지오 삐쉬아두 정상을 이곳저곳 둘러보고 있는 것이다. 생태 한계선을 넘은 정상에 샛노란 꽃양귀비가 납작하게 엎드려 곧 다가올 9월을 맞이하며 우리를 향해 방긋 웃고 있는 것이다. 메마른 듯 거대한 바위산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면 돌로미티에 생명을 더해주는 심장 같은 존재랄까. 저만치 앞서 나와 동고동락한 한 여자 사람이 지나간다. 그녀는 한 남자 사람의 삶에 존재감과 활력소를 퍼붓고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사람.. 그녀의 뒷모습에 꼬리표를 달아주며 이렇게 적는다.
1. 첫눈에 반한 사람 2. 사랑에 빠뜨린 사람 3. 동고동락한 사람 4. 죽을 때까지 가슴에서 지울 수 없는 사람 5. 매일 보고 싶은 사람.. (흠.. 이렇게 마음 가는 대로 적고 보니 오그라든다. ^^) 그렇지만 사랑은 고백할 때마다 오그라드는 것! 천만번 고백해도 싫지 않은 말이자 사랑의 유효기간을 늘려가는 한 방법이다.
지난 여정 사랑의 유효기간에서 이렇게 썼다. 돌로미티 여행기를 쓰는 동안 자청한 팔불출 이야기는 계속된다.
위 자료사진 좌측에 있는 거대한 바위산은 우리가 알타 바디아의 한 쉼터에서 올려다 보이던 산이다. 그 쉼터에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다. 산 중턱에는 구름이 걸려있다. 우리가 서 있는 장소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풍경처럼 보인다. 그 느낌은 이곳에 서 보신 분들만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발을 들여놓은 곳은 사람들이 말하는 신선들이 노니는 곳이라 할까..
우리는 돌로미티 산군이 잘 조망되는 곳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산행 때 습관처럼 아예 등산화까지 벗어놓았다. 그리고 챙겨 온 도시락을 주섬주섬 펼쳐놓는 것이다. 도시락은 단출했다. 하니가 주로 준비한 도시락은 바를레타의 집에서 만들어 온 쇠고기 장조림과 파지올리니 볶음이 전부였다.
돌로미티 곳곳을 이동할 때는 이곳에서 구입한 과일과 빵 살시차 등이 도시락 역할을 했다. 이날 트래킹에 가져온 도시락은 아래 쉼터에서 렌지를 이용해 강낭콩(바를레타 시장에서 구매) 밥을 지었다. 도시락 뚜껑을 열어보니 아직 온기가 남아있었다. 아마도 우리 독자분들은 아실 것이다.
이탈리아 요리를 공부한 요리사가 있는 집에서는 무슨 음식을 먹을까 싶을 것. 그러나 하니가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온 이후부터 간간히 포스팅하던 요리 포스팅을 볼 수 없거나 설령 있다고 해도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하니는 돌아가신 어머니처럼 주방일은 절대 곁을 주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당신의 남자에게 '당신 손으로 밥을 해 먹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앙증맞은 풀꽃들이 천상의 도시락 곁에서 빤히 올려다 보고 있다. 요런 요정..! ^^
아직도 당신의 가슴속에는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가부장적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주방의 힘든 일을 거들어 달라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절대로 입 밖으로 말을 끄집어내지 않는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 하니의 이런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내가 언제부터인가 당신으로부터 참는 법을 배웠다.
그 방법은 매우 간단했다. 좁쌀(영감)이 되느냐 안 좁쌀이 되느냐를 결정짓는 것. 당신이 책임지고 있는 주방 영역 혹은 음식에 이렇게 혹은 저렇게 군소리를 하면 그 즉시 "에구 좁쌀.."이란다. 여러 번도 아니었다. 단 한 번의 좁쌀을 겪고 난 이후부터 내 마음에 들던 안 들던 나는 입을 다물게 된다. 그리고 "필요하면 언제든지 도와달라고 하라"며 말해 두는 것.
천상에서 먹었던 도시락의 정체.. 강낭콩밥, 송아지고기 장조림, 파지올리니(Fagiolo) 볶음, 매운고추(peperoncino piccante), 빠르마지아노 렛지아노(Parmigiano Reggiano),방울토마토(Ciliegino)
생각해 보나 마나 수십 년 이상을 주방에서 일을 하고 음식을 만든 여자 사람이 잔소리 들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대체로 우리나라 여성들의 음식 솜씨는 매우 뛰어난데 하니도 그중 한 사람이다. 식재료는 최고급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 사람 앞에서 좁쌀이 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게 아닌가. 아마도 하니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흥!!.. 지가 언제부터 요리를 배웠다고..!!
어젯밤(한국시간) 한국에 가 있는 하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낮잠을 잤더니 밤에 잠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날 더러 어쩌라고..ㅋ) 그리고 미주알고주알 널어놓는 수다가 1시간은 더 이어지고 있었다. (듣고.. 또 들아주고.. 그런데 왜 세상에는 좁쌀영감만 있는 거야. 좁쌀 할멈은 없는 겨..ㅋ) 사진첩을 열어 보니 하니와 함께 먹던 도시락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좁아터진 기내에서 먹던 도시락보다 천상에서 먹었던 도시락은 비교가 안 돼..!
Documento di 19 notti nelle Dolomiti_dall'8 al 28 Agosto 2020
il 17 Novembre 2020, Citta' di Barletta PUGLIA
Foto e Scritto di Yookeun CHANG_GEOGRAFIA